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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룰루의 추억

Relay Essay 제2364번째

일본으로 치대 유학을 오기 전, 호주 골드코스트(Gold Coast, Queensland)에서 1년간 지낸 적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새출발을 하고 싶었던 나는 졸업식이 있던 다음날 무작정 비행기 티켓을 끊고 호주로 건너갔다. 특별한 목표나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친한 고향 친구 J가 골드코스트에 살고 있었고 어릴 적 영국에서 학교를 다녔기에 영어권 나라가 아무래도 익숙했었다. 무엇보다 꽉꽉 막힌 것 같았던 내 청춘의 돌파구가 필요했었다.
 

골드코스트에 도착한 나는 J의 소개로 홈스테이를 하게 되었는데 홈스테이 가족은 친구 J가 호주에서 초중고를 다닐 때 줄곧 케어 해주신 분들이었다. 대단히 활동적인 가족이었는데, 그 덕분에 틈만 나면 야외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었다. 바베큐부터 시작하여 캠핑, 낚시, 해안 조깅, 야간등산, 각종 해양스포츠 등 안해본 것이 없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을 꼽으라면 도요타 미니밴에 트레일러를 연결해 짐을 한가득 싣고 골드코스트에서 울룰루까지 왕복 7200km가 넘는 거리를 자동차로 여행한 일이다.
 

사막을 가로질러 가는 여정이라 준비해야될 것이 상당히 많았다. 호주 땅덩어리가 워낙 크다 보니 주유소나 슈퍼마켓이 몇 백km를 달려야 겨우 하나 있을까 말까한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자동차 연료도 여비로 실어가야했으며, 식료품부터 캠핑용품까지 다 실어보니 거의 이삿짐 수준이었다.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이 시작되고 골드코스트에서 출발하여 한참을 가다보니(Gold Coast에서 Townsville 거쳐가는 경로를 택했었다) 끝없는 지평선이 눈앞에 펼쳐졌다. 끝없는 하늘과 끝없는 지평선. 가끔가다 마주치는 캥거루 무리들. 6시간 교대로 하는 운전은 정말 지루했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거대한 지구’를 체험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는데, 운전을 하다 새벽에 배가 출출해진 우리는 라면이라도 끓여 먹자고 사막 한 가운데에 차를 세우게 되었다.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을 때,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머리 위를 올려다 보았는데 수천 수만개의 별들이 밤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토록 아름답게 별들로 촘촘히 채워진 밤하늘은 본 적이 없었기에 그 경이로움에 몇 분이고 그 자리에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었다.
 

그 후로 몇 백km씩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지루한 도로를 끊임없이 달렸고 타운스빌과 엘리스 스프링스를 거쳐 우리의 목적지 울룰루에 도착하기까지 거의 사흘이 걸렸다. 거대한 울룰루를 내 눈 앞에 두었을 때의 성취감과 감동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며칠간 울룰루 근처에서 캠핑을 한 후 다시 그 거리(3600km)를 달려 골드코스트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단한 여정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울룰루의 감동은 희미해졌지만 밤하늘의 수많은 별을 보며 떠올렸던 생각들, 사막을 가로지르는 차 안에서 신나게 반복해서 듣던 ‘John Denver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의 멜로디, 불완전한 20살의 감성과 꿈들은 아직까지 애잔하게 내 안에 남아서 청춘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얼마전 친구 J에게 ‘언젠가 울룰루 한 번 더 가자’라는 연락을 보내보았다. 뜬금없는 말에 당황했을 법도 한데 ‘좋지’라고 흔쾌히 답장이 왔다.  쳇바퀴처럼 바쁘게 돌아가는 삶 속에서도 아름다운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먼 훗날, 꼭 다시 가보겠노라 다짐하며, 호주의 광활한 사막 한 가운데에 서서 바라보는 밤하늘은 어른이 된 내게 또 어떤 감동을 선사해줄 지 기대하며… 이 글을 마친다.


석원길
쇼난치과나고야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