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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외국어 공부 도전기

Relay Essay 제2556번째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저는 결코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며 재능도 있지 않습니다. 새로운 지식에 호기심을 가지고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당장의 성과가 없어도 오랜 기간 꾸준히 도전하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이긴 한 것 같습니다. 저는 30대에 일본 여행 때 방문했던 서점에서 빼곡히 꽂혀 있던 치의학 전문 서적과 재미있어 보이는 여러 일반 서적을 꺼내어 들추어 보면서 내가 이 책을 읽을 수 있으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일본어 공부를 해보아야겠다고 결심했는데 막연하게 공부하면 정리가 잘 안될 것 같아 차라리 어학시험을 준비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Japanese Language Proficiency Test(JLPT)라는 일본어 공인 능력 시험이 있는데 제가 준비할 당시에는 초급인 4급부터 고급인 1급까지 선택할 수 있는 시험이었고 지금은 5단계로 확장되어 N5급부터 N1급까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는 독학으로 공부를 시작하여 처음에는 2급 시험에 도전하여 합격하였고 좀 더 공부하여 1급 시험에 가까스로 합격했습니다. 그런 다음 일본의 치의학 전문 서적 두 권을 온전한 제 힘으로 번역하여 출판하였습니다. 본업인 전공과목에 집중해야 했으므로 일본어 공부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야 했고 그것도 매일 적은 시간만을 할애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공부하였던 것 같습니다. 주로 일본어 어학 서적, 라디오 어학 방송, 전화 일본어 등을 이용했던 것 같습니다. 점차 일본어 방송, 뉴스,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볼 때 자막의 도움 없이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우리가 평소 한국 문화에 익숙하고 일상에서 잘 향유하며 즐기고 있는 것처럼 일본 문화도 즐길 수 있는 기초 능력을 얻게 된 것 같아 앞으로의 인생이 재미있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외국어를 마스터할 수는 없지만 최소 10년마다 새로운 외국어에 도전한다면 남은 인생을 지루해할 틈 없이 다양한 문화를 재미있게 즐길 수 있게 해주는 토대를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40대 중반에는 중국어 공부를 시작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일본어 공부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어학시험을 준비하기로 했고 汉语水平考试(hànyǔ shuǐpíng kǎoshì, HSK)라는 공인어학시험에 도전하였습니다. HSK는 초급인 1급부터 고급인 6급까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늘 하던 대로 독학으로 공부하여 단계별로 시험을 보기로 하였습니다. 2급부터 시험을 보았는데 2급 시험장에는 어머니 손에 이끌려 온 초등학생들이 많았습니다. 당시의 저보다 중국어 실력이 더 나았던 대한민국 초등학생들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HSK 3급 시험 볼 때는 주로 중학생들이 왔고, 4급 시험장에는 고등학생들이 왔습니다. 이들 시험을 차례로 합격한 후 도전한 고급 시험인 5급부터는 중국어 전공 대학생들 사이에서 시험을 보게 되었고 결국 아주 힘겹게 6급까지 합격하였습니다. 중국어 글로 쓰여진 것은 간신히 이해할 수 있지만 아직도 회화가 원활한 상태는 아닙니다. 하지만 기본기를 다졌으니 조금은 자신감을 가지고 앞으로도 오랜 기간 계속 공부한다면 언젠가는 중국어도 편안해지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50세가 넘은 지금, 저는 또 다른 외국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 역시 해당 어학시험을 단계별로 도전할 생각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영어, 일본어와 중국어를 포함해 계속 공부 중인 외국어만 있고 실제로 마스터한 외국어는 하나도 없지만, 사실상 외국어를 마스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확신하며, 또한 결코 원어민처럼 될 수는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외국어 실력을 남에게 검증받을 필요가 없기에 저 자신 인생의 재미와 제 만족감을 위해 행복하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60대가 되면 또 다른 외국어 공부를 새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해 봅니다.

 

공부해 보니 일본어와 중국어, 그리고 한국어 간에는 공통적인 한자를 쓰는 단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들도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부작용(side effect)은 삼국 전부 같은 한자어 副作用(ふくさよう, fùzuòyòng)을 씁니다. 하지만, 우리가 쓰는 공부라는 단어를 일본어 工夫(くふう)는 궁리하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으며 勉強(べんきょう)가 공부의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반면에 중국어 工夫(gōngfu)는 시간이라는 의미를 가지며 学习(xuéxí)가 공부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치과의사는 일본에서는 주로 歯医者(はいしゃ)로 불리우고 있고 중국에서는 牙医(yáyī), 牙医生(yáyīshēng), 牙科医生(yákēyīshēng)으로 부르는 것 같습니다. 학생 때 무턱대고 외웠던 의학용어 중 미만성(diffuse)이라는 단어는 일본어와 중국어에도 나오는데 각각 瀰漫性(びまんせい), 弥漫性(mímànxìng)으로 중국어의 뜻으로는 점점 넘치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현재 사용하는 용어인 확산성이라는 의미를 이해하기에 좋았습니다. 한편, 중국어로 뇌에 있는 근육이라는 의미의 脑筋(nǎojīn)은 머리, 두뇌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신기했고, 일본어로 남편을 主人(しゅじん)이라고 부르는 것이라든지, NHK가 영어가 아닌 일본어 にほんほうそうきょうかい(일본방송협회, 日本放送協会)의 앞 글자를 따온 것이라는 것을 알고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을 일부 엿볼 수 있었습니다.

 

저의 이런 비밀스러운 취미활동을 알고 있는 소수의 지인은 저에게 어학에 재능이 있어서 좋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저 자신이 어학 능력이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요새는 단어 하나를 외우면 다음날 두 개를 잊어먹는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저는 이과에 매우 특화되어 있어서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으면 해당 지식이 제 머릿속에서 정리되어 남지 않는 타입의 사람입니다. 외국어는 고유의 문법이 있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암기 과목이고 과학적인 학문이 아니며 반복을 통해 익숙해지는 운동과 같은 특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외국어 공부를 클래식 악기 배우는 것과 같다고 규정하였습니다. 대학 들어와서 치대 오케스트라에 가입하여 난생처음 플루트라는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노력한다고는 했지만, 실력이 나아지는 정도가 더디고 아직도 여전히 잘 연주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어차피 우리가 클래식 전공자도 아니고 여전히 전공자 같은 실력이 될 수는 없겠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잘 연주할 수준이 되지 않아도 되므로, 오래 걸릴 수 있겠지만 언젠가는 개인적으로 즐길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는 낙관적 생각으로 지금도 틈틈이 연습해 보곤 합니다. 그래서 결코 단기간에 외국어 실력이 나아질 리 없다고 생각하여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았고, 어차피 평생에 걸쳐 조금씩 취미생활로서 공부하려고 했던 외국어였고, 남은 인생에서 시간은 내 편일 터이니 절대 조바심 느끼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혹시라도 오랜 기간 자기 스스로를 다스리고도 닦는 방법을 찾고 계신다면 저는 그중 최고의 선택지로 외국어 공부를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공부하는 과정은 길고 지루하겠지만 언젠가는 남은 인생을 재미있게 만들어줄 자신만의 새로운 놀이터가 마련될 것이어서 결국 그간의 노력이 보상받게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