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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의 건강주간에 참여하다!

스펙트럼

한 한달 쯤 되었을까, 학교에서 진행하는 행사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에서는 매년 “건강주간”이라는 타이틀로 여러 부스를 운영하는 미니 축제를 열어오고 있다. 그 역사가 얼마나 긴지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관악 캠퍼스로 학교를 다니던 때에도 있었으니 최소 8년은 된, 나름의 역사를 가진 행사이다. 건강주간 부스가 열리는 때면 가끔 동기들과 그 앞을 지나가다가 몇 번 재미로 참여해보곤 했는데 이게 웬걸, 이번에는 내가 그 행사의 일원으로서 부스를 지키게 되다니, 사람일 참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동기들과 다같이 차에 타고 관악을 가는 길부터 벌써 여행을 떠나는 것만 같았다. 각자의 캠퍼스 라이프를 누리다가 혜화에서 만나게 됐는데 다시 그 각자의 공통 분모인 관악으로 간다는 게 기분이 묘하기도 하고 말이다.

 

건강주간 행사에는 우리 치의학과 뿐만 아니라 약학과, 체육교육과, 의과 등 건강과 관련된 다양한 과들이 모여서 각종 부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 부스는 체어를 2대 놓은 뒤 간단한 검진을 진행하였고, 감사하게도 메가젠의 협조를 받아 덴탈아바타 만들기 등의 재미있는 컨텐츠들도 진행할 수 있었다.

 

내가 참여한 금요일은 날씨도 유독 춥고 언제 한바탕 쏟아질 것만 같은 우중충한 날씨였다. 아, 오늘은 사람도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부스를 시작하자마자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찾아왔다. 심지어 어제 왔었는데 시간이 안 되어 검진을 못 받았다며 일부러 이르게 찾아오신 분들도 많았다. 이렇게 많은 환자들을 마주하게 된 건 거의 처음이었다.

 

그러다 보니 재미있는 경험도 많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게 있다면, 바로 교환학생이다. 이날 부스를 찾아온 환자들에는 교환학생의 비율이 제법 높았다. 대륙도 다양했다.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를 가리지 않았다. 교환학생의 검진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구강 내를 보고 그 문화를 마주할 수 있다는 거였다. 발치하는 것 자체를 아주 불신성하게 생각해서 온갖 치아가 깨지고 뿌리만 남아있음에도 발치하지 못하고 있던 환자도 있었고, 금속물질을 치아에 넣는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분도 계셨다. 몸이 아픈 건 똑같은데 문화가 다르다고 이렇게 그 대응방식이 다를 수 있다니, 문화의 위력을 느꼈다.

 

사실 치과에서 보게 되는 환자들은 이미 문제가 심해진 환자들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동네 치과병원이 아니라 대학 치과병원이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 환자들을 주로 봐오던 내게 이 구강검진 부스에서 마주한 환자들은 그 반대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느껴졌다. 한번도 치과에 가보지 않았다는 환자도 있었고, 치과치료 자체를 원하지 않는 환자도 있었으며 (이날은 단순히 구강 상태가 어떤지 궁금해서 와 보셨다했던 걸로 기억한다), 문화적 차이로 발치를 신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거나, 치과치료를 받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환자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게 답답하다기보다 이 다양성의 세상이 그저 새롭게 다가왔다. 면허를 딴 뒤에 내가 만나게 될 환자들도 이렇게 한명 한명이 다 다르겠구나, 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치과의사가 되면 너무 쳇바퀴 굴러가듯이 똑같은 진료, 똑같은 생활이 반복되진 않을까 생각했던 내가 우스워진다.

 

학교에서 언뜻 배우기로, 의원, 치과의원, 한의원 중 하루 평균 외래 환자수가 제일 많은 의료기관은 치과의원이라는 통계를 봤던 기억이 있다. (환자로서) 치과를 열심히 다니지 않는 나로서는 신뢰하기 어려운 수치였지만 이렇게 경험해보니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많은 환자들을 검진해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신나고도 재미있었는지, 내년에도 또 가고싶다고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곧 점수인 원내생에게 이런 행사에 참여하는게 사치일까 걱정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 그럼에도 참여하기로 마음먹은 그때의 나에게 칭찬해주고 싶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