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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하우젠 증후군

편집인 칼럼

초등학교 2학년쯤 되었을까?
구구단을 외우라는 아버지 지시에 열심히 구구단을 외웠으나 모두 외우지 못했던 나는 아버지가 퇴근해 들어오시는 소리가 나자 금세 자는 척 연기를 한 적이 있었다.

어린 생각이지만 설마 아버지가 자는 아이를 일부러 깨워 구구단을 외워보라고 채근하지는 않으실 것이라 속셈을 했으나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아버지 앞에서 구구단을 더듬더듬 외우는 나를 혼 내시기는커녕 오히려 귀엽다며 안아주셨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오랫동안 남는다.

그 이후로도 부모님, 선생님께 두통, 복통 등 이런저런 꾀병을 부려 위기를 벗어난 적도 여러 번 있었는데, 어렸을 때 흔하게 써먹었던 꾀병의 요령이 누구에게나 무용(武勇)의 추억으로 아련히 남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꾀병을 부리게 되면, 일단 상대방의 말투가 부드러워지고 징벌이 유예되며, 맛있는 음식을 입에 넣을 수가 있고, 운이 좋으면 용돈이 쥐어지기도 한다. 훗날 나의 꾀병조차 안아주는 누군가의 따뜻한 품이 나에게는 소속감이 되어지고 진한 사랑의 감정을 재확인하는 기회가 되어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는 것이다.

비록 꾀병이지만, 내가 아프다는 데 안아줄 줄 알았던 사람으로부터 내팽개쳐진 실망감 또한 이루 말할 수 없는 섭섭함으로 오랜 세월 기억하는 것 또한 우리가 공유하는 꾀병의 문화가 아닐까?

그렇지만, 이 꾀병의 빈도가 잦아지거나, 강도가 강해지고 꾀병의 양상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 버리면 더 이상 추억이라 에두를 명분이 사라지며 정신질환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를 정신과에서는 ‘뮌하우젠 증후군(Munchausen syndrome)’이라고 한다.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 아프다는 거짓을 수시로 연출하거나 심지어 자해를 실행하는 정신질환을 일컫는 것으로 타인의 마음을 인위적으로 얻고자 하는 위험한 병이다.

이보다 더 끔찍한 증후군으로 ‘대리인에 의한 뮌하우젠 증후군(Munchausen syndrome by proxy, 이하 MBP)’이라는 것이 있다.
 뮌하우젠 증후군의 대상이 본인이라면, MBP의 아픈 대상은 본인이 아니라 자신의 주변인물, 애완동물 등을 제물로 삼는 것이 특징이다. 이 제물들을 고의로 아프게 한 뒤 헌신적으로 간호하는 자신의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줌으로써 주위사람들이 자신을 동정하고 격려하는 시선을 즐기는 사람을 말한다.

MBP의 대표적인 예로,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박사의 둘째부인 일레인이다.

일레인은 일부러 호킹박사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고의로 휠체어를 넘어뜨려 다치게 한 뒤 지극히 정성을 다해 간호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 다른 사람들의 동정을 받고 싶어하는 상해지향형 정신질환으로 나타나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이보다 더 막장으로 치닫는 사회적인 병리가 있는데, 바로 ‘사회적 뮌하우젠 증후군’이다.
직장과 단체, 개인간의 사회적인 네트워크 속에서 동료나 상사, 부하들 사이를 이간질시켜 놓고 문제를 발생시킨 후 자신을 해결사로 등장시켜 극적인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특성을 갖고 있는 환자를 일컫는다.

이러한 환자 한 두 명으로 인해 조직은 사기저하, 결속력 약화, 생산성 저하는 물론이고 궁극적으로 조직을 천천히 죽어가게 만드는 무서운 질병인 것이다.

당장은 나부터 사회적 뮌하우젠 증후군, 대리인에 의한 뮌하우젠 증후군 증상이 없는지 돌이켜 볼 일이고, 그 다음에 사회 저변 도처에 깔려 있는 이러한 환자들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치과의사이자 한가족이다.
누구나 갖는 꾀병에 대해서는 넓은 아량과 포용을 베풀어 주면서 정성들여 하나씩 둘씩 차곡차곡 탑을 쌓는 마음으로 내일을 준비하였으면 한다.
최치원 공보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