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그들의 밤

Relay Essay 제2130번째

구강외과 의사와 당직은 뗄 수 없는 사이다. 매일 밤 부산 경남 시내의 곳곳에서는 생각도 못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상상도 못할 이유로 다쳐서 응급실을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몽롱하고 희뿌연, 그러나 때로는 숨넘어가도록 급박한 병원의 밤을 당직의는 지켜야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양산 시내에 공단이 많아서일까. 유달리 작업 중 발생한 사고로 골절상을 입어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많았다. 쇠파이프에 얼굴을 부딪혀 하악골이 골절된 아저씨, 삽량축제를 위한 준비 작업 중 사다리에서 떨어져 상악골이 골절된 아줌마, 작업장에서 거대한 쇠사슬이 안면부를 정면으로 강타하여 상하악골 복합 골절상을 입은 21살 청년 등 실로 다양한 이유로 다친 다양한 환자들을 보아왔다. 먹고 살기 위하여 고령의 나이에도 일터에 나아가 작업을 하시다 다쳐서 오시는 분들을 볼 때면 그들을 덮치고 있는 삶의 무게가, 사회의 각박함이 느껴져 마음 한 켠이 먹먹해온다.

2015년 6월 29일. 한평생 잊을 수 없는 밤이다. 2년차로 신분상승(?)이 이루어져 Back duty였던 날이었다. 1년차 당직의의 전화를 받았다. 작업 도중 낙하하는 돌에 얼굴을 다쳐 출혈이 지속되는 환자에 대한 보고였다. CT를 보니 중안면부의 함몰이 심하며 이로 인해 중요 혈관의 손상이 예상되는 환자였다. 단순한 지혈제의 사용으로는 출혈을 잡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이미 실혈로 인한 shock가 발생하여 CPR도 몇 차례 시행한 상태였다. 응급수술이 거론되었다. 수술실에서 출혈부 혈관을 찾아 지혈을 하기로 하였다.

지속적인 상황 보고와 내려오는 오더의 정리 및 실행. 한 사람의 생명이 눈앞에서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그 급박한 상황에서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 무한정 대기만 하는 그 막막함은 절대 익숙해 질 수 없다. 능력이 없는 내 자신이 한심해지고, 끊임없이 해결책을 머릿속으로 갈구해도 뚜렷이 떠오르는 해답이 없어 답답해진다. 마음만 급해져 환자의 머리맡에 고여 바닥으로 떨어지는 피를 닦아내었다.

환자가 수술실로 드디어 옮겨졌다. 무영등이 켜지고 안과, 이비인후과, 구강외과 교수님들이 수술 글러브를 끼고 환자 옆으로 섰다. 환자의 바이탈이 심하게 흔들려 마취과 교수님도 긴장상태였다. 어지러운 상황만큼 환자의 팔다리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주사줄도 잔뜩 엉켜있었다. 수술이 시작되었고, 무영등 아래의 공간은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한 번에 여러 개의 수혈팩을 담아 환자의 몸 안으로 넣어주는 수혈기는 바쁘게 돌아가 백 개에 가까운 전혈을 사용하였다. 수술방 안의 모든 사람이 환자의 출혈이 멎기를 바라며 혼신을 다해 수술에 임했다. 그러나 허무하게도 수혈하는 것과 같은 속도로 환자의 머리에서 피가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암담해지고 울고 싶어졌다.

전쟁같은 시간이었다. 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5시간이 흘렀다. 더 이상 수술을 지속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지혈은 완벽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환부를 닫을 수밖에 없었다. 환자는 다시 응급실로 옮겨졌다. 수술 전에는 보지 못했던 환자의 아내와 초등학교 저학년의 아이들이 응급실에 와 있었다. 갑작스런 남편의 사고에 차마 울음소리도 내지 못하고 넋이 날아간 듯 아들이 손을 잡고 서 있는 아내의 얼굴을 보는 순간 한없이 미안해졌다. 수술 경과에 대해 설명하는 와중에도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그 허망함이 계속 가슴을 찔렀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할 수 없어 미안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응급실을 나섰다. 아침이 되어 차트를 확인하니 그 분은 응급실로 옮겨진 1시간 후 사망하셨다.

그 날의 일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내가 구강외과의가 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하게 하였고,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생각하게 하였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생각하게 하였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부산 곳곳, 경남 곳곳에서는 살기위해 위험과 마주하며 힘겹게 버티는 삼라만상의 인생들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모두 아프고, 따뜻하고, 슬프며, 행복하다. 그들이 오래오래 가족들과 지지고 볶고 살며 다양한 이야기를 써낼 수 있도록, 결국엔 해피엔딩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 나는 구강외과의가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몽롱하고, 희뿌연, 그리고 급박한 병원의 밤을 나는 지킬 것이다.

최나래 부산대치과병원 구강외과 전공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