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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물주 위에 건물주

한 자리서 오래 개원 갈수록 줄어드는데
원상복구·인테리어 등 둘러싼 갈등 고조


개원가의 경영난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건물주와 분쟁을 겪는 사례들이 최근 다시 늘고 있다.

이른바 ‘개원 사이클’이 갈수록 짧아지는 추세가 뚜렷해지면서 시설 원상복구나 인테리어 공사 시공 여부 등을 두고 양자 간 갈등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것이다.

개원 3년 차인 A 원장은 출근 후 물바다가 된 치과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노후 배수관이 터진 것인데 문제는 아래층 안과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하면서 과연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같은 건물 1층 약사가 건물주인 만큼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하루하루가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B 치과의 건물주는 치과 에어컨 실외기 문이 열려 동파 사고가 발생하자 타 점포의 동파사고까지 묶어 최대 5000만원 수준의 연대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수년째 개원 중인 C 원장은 최근 치과에 천장형 시스템 에어컨을 설치하려다 ‘할머니 건물주’의 제지를 받았다. 천장에 에어컨을 설치할 경우 배관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에 황당했지만 건물주와 언쟁을 하기 싫어 결국 설치를 포기했다.

# 원상복구비 동의 없이 보증금서 공제

심지어 지방 대도시 개원 중인 D 원장은 갑자기 삶의 터전을 뺏겼다. 치과의 임대기간이 2년 이상 남아 있었지만 다른 임차인들과 갈등을 빚던 건물주가 주말 기습적인 철거로 건물 외벽을 허물어 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치과 이전 시 원상 복구를 둘러싼 해묵은 논쟁도 빠르게 재점화 되고 있다. 최근 옆 건물로 이전하기로 한 E 원장은 계약기간이 지났는데도 전 주인이 보증금의 일부만을 순차적으로 돌려주는 행태에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치과 시설 철거 시 건물이 파손됐다며 E 원장의 동의 없이 천장과 바닥을 시공한 후 비용을 일방적으로 청구하며, ‘시위 중’이라는 것이다.

F 원장 역시 건물 원상 복구비라는 명목으로 보증금의 40% 가량만을 돌려받고 얼굴을 붉혔다. 낮이나 주말에는 시끄럽다고 복구를 못하게 하고, 시공 업체도 건물주 본인이 직접 선정하는 기준으로 이 같은 공제 액수가 나왔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후 1년 넘게 원상복구도 안 한 상태였다는 게 F 원장 측의 항변이다.

# 건물주 아들 직업도 알아야 하나 ‘한숨’

이 같은 건물주와의 갈등은 평균 개원 지속 기간이 점차 짧아지면서 같이 심화되는 동조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녹록지 않은 개원 환경의 한 단면으로 읽히기도 한다.

개원 초기의 ‘세팅 스테이지(Setting Stage)’라는 개념자체가 아예 무너져 버리면서 양도양수나 개·폐업 과정에서의 분쟁이 양적·질적으로 늘어났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최근 대한치과의사협회지에 실린 ‘공공데이터를 활용한 치과병의원 운영실태 연구 : 광역자치단체와 특별자치단체의 인구를 중심으로’논문에 따르면 치과병의원의 인허가수가 급증한 1986년~1990년부터 분석 기준 시점인 2016년에 가까울수록 평균 운영기간과 평균 5년 단위 운영기간의 차이가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즉, 치과병의원의 운영기간이 실제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인허가를 받은 기간별로 폐업 치과들의 평균운영 기간을 살펴보면 이 같은 경향이 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20년 전인 1996년~2000년(인허가 시점 기준)에 8.0년이던 폐업 치과들의 평균 운영기간은 2000년~2005년 5.7년, 2006년~2010년 3.1년 등으로 점차 줄어들다가 최근 5년(2011년~2015년) 기간 중에는 아예 1.3년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치과가 잘 돼도 문제다. 수도권 지역에서 개원 중인 G 원장의 경우 건물주가 한의사인 자기 아들이 곧 개원한다며 자리를 내 줄 것을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그는 “환자들의 불편과 혼란 뿐 아니라 다시 인테리어나 각종 기자재를 세팅할 생각에 한숨부터 나온다”며 “건물주 아들이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는 선배들의 조언이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됐다”고 씁쓸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