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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함께 오는 힘 센 하모 요리

박상대의 푸드 스토리-하모 요리


여름이면 여수 사람들이 입이 마르도록 자랑하는 음식이 있습니다. 일본 이름 ‘하모’를 그대로 부르고 있는 갯장어 요리. 여름 한 철에만 먹을 수 있고, 값이 비싸고, 그래도 맛이 좋으며, 남성들의 힘과 여성들의 미모를 돕는다는 이유로 전국 미식가들을 호객하는 요리 하모유비키. 물론 몇 해 전부터 수도권에서도 하모요리를 먹을 수 있습니다.

몸이 길어서 이름 지어진 장어(長魚)는 종류가 여러 가지 입니다. 장어 중에서도 힘이 최고로 세다는 민물장어(뱀장어), 아나고라고 불리는 붕장어, 포장마차에서 연탄불에 구워 먹는 곰장어(먹장어) 등등. 여기에다 여수 고흥 강진 완도 등 남해안에서 먹을 수 있는‘하모’라는 낯선 이름의 장어가 더해집니다.

‘하모’란 갯장어(참장어)의 일본말이죠. 과거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먹지 않던 종류인데, 1970년대 초 일본에서 여수 일대의 갯장어를 몽땅 수입해가면서 하모라고 부른 것이 오늘날까지 그렇게 불립니다. 뭐든 입에 물면 놓지 않으려 하는 탓에 ‘물다’라는 뜻의 ‘하무(はむ)’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모는 우리나라의 남부 연안을 비롯해 일본 중부 이남, 타이완과 필리핀 연안 등 온열대 바다에서 서식합니다. 낮엔 바위틈에 숨어 지내다가 밤이 되면 활동하는 야행성이죠. 따라서 하모를 잡는 어부들은 야간에 배 위에서 지내야 하고, 그게 힘들어서 하모잡이 선단은 갈수록 줄어드는 실정이랍니다.

여수 하모 거리와 하모요리



여수 사람들이 하모를 즐겨 먹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말입니다. 하모를 수입해가던 일본 수산업자들이 어느 날 여수 어촌계원들을 일본으로 초대했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모 요리를 대접했는데, 겨우 구워 먹거나 탕을 만들어 먹던 어촌계원들에게 갖가지 메뉴를 내놓은 겁니다.




하모 회는 아나고 회와 다를 바 없는데 하모유비키는 처음 본 음식이었습니다. 장어 살점을 한 조각 집어서 팔팔 끓는 육수에 살짝 담궜다가 꺼내서 소스를 발라 상추에 싸먹는 것! 난생 처음 맛본 하모 회와 하모유비키(샤브샤브)는 어촌계원들은 그 맛에 홀딱 반했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한국에 돌아와 하모 요리를 재현해서 선보였는데 어설픈 솜씨였지만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수협직원들과 시청공무원들은 그 맛에 매료됐고, 하모요리에 대해 좋은 입소문을 내주었답니다. 이때부터 점차 육수 맛이 개선되었고, 비린내를 잡을 수 있는 생강이나 부추를 첨가하면서 한국식 하모요리가 정착된 것입니다. 이후 경도를 비롯한 남산동에 하모요리 전문점이 하나둘 문을 열게 되었고, 고흥이나 장흥, 강진 등지에도 전문점들이 생겼습니다.


하모 요리를 먹고자 한다면 크게 두 가지 선택지에서 갈등하게 됩니다. 하나는 회, 다른 하나는 유비키입니다. 회는 싱싱한 하모의 껍질을 벗기고 등뼈를 발라낸 다음 잘게 썰어서 초고추장이나 간장 혹은 된장을 찍어 먹습니다. 살점만 먹어도 고소한 맛이 나는데 씹히는 맛을 느끼고 싶다면 상추에 하모 살점을 두둑하게 올리고, 풋고추와 마늘을 얹어 쌈을 싸 먹으면 됩니다. 파릇파릇한 상추의 식감 사이로 탄탄한 하모의 살점이 입안에서 구르는데 오독오독, 쫄깃쫄깃한 풍미가 예술입니다. 몇 차례 씹으면 혀에 단맛이 고입니다. 창밖으로 보이 바다로 시선을 가져가면 바다향기가 입안에 가득 찹니다.

유비키는 쇠고기 샤브샤브 요리를 먹을 때와 비슷하게 먹습니다. 적당히 끓는 육수에 부추, 버섯, 대파, 양파 따위 채소를 넣고, 조금 더 끓인 후 장어 살점을 살짝 적시듯이 데쳐서 건져냅니다. 상추와 들깻잎에 데친 살점을 놓고, 풋고추와 마늘, 육수에 있는 부추나 파를 같이 올려서 쌈을 싸먹습니다. 적당히 익은 하모는 육질이 아주 부드러워 입안에서 부드럽게 굴러다닙니다.

살점을 다 먹고 나면 죽을 만들어 줍니다. 혹시라도 그 죽을 먹지 않으면 무조건 손해입니다. 하모 국물로 만든 죽은 어떤 죽보다 고소하고 은근합니다.

하모 거리의 전문점 중에서도 서비스가 좋은 집은 하모 머리와 뼈 등을 달인 즙을 한 잔씩 서비스로 내주기도 합니다. 또 하모 쓸개를 넣어 담근 쓸개주를 주는 집도 있습니다.

여수를 대표하는 하모 요리 전문점은 두 군데에 모여 있습니다. 하나는 돌산대교 북단 해안 길의 당머리 동네(남산동)로 세련된 분위기는 아니지만 허름한 도시의 뒷골목처럼 옛 분위기를 간직한 모습입니다. 여수의 명소 돌산대교가 바라보이는 이 하모 거리는 ‘거리’라는 칭호가 민망하게 달랑 여섯 집이 모여 있습니다. 하지만 하모가 제철인 여름에는 전국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기 때문에 당당하게 ‘하모 거리’라는 이름을 달고 있습니다. 여수 사람들에게 하모 거리가 어디냐 물으면 대개 이곳을 알려줍니다. 또 다른 하나는 근래에 골프장과 리조트가 들어서 매무새를 새로이 다듬은 대경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하모 요리는 대부분 1kg 8만원(2인분) 정도 합니다.

·남산동 ·하얀집 : 061-641-8478 ·선창가횟집 : 061-642-0811 ·당머리횟집 : 061-641-4602 ·대경도 ·바다웽이 : 061-651-4112 ·경도회관 : 061-666-0044

박상대
글·사진 월간 ‘여행스케치’ 발행인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가는 여행>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