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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또 다른 시작

Relay Essay 제2236번째

한살 한해 나이가 들어가면서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일들은 횟수가 거듭될수록 아주 특별한 이벤트 등 기억할 만한 일이 있지 않고서는 그저 일상과 특별히 다르지 않은 그런 날이 되어가고 있다. 결혼기념일, 생일, 명절 등등….

일상에 유독 올해는 모든 것들이 특별해지고 있다. 아마 처음이 아니라 한사람을 보내는 마지막이라는 의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한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미고 엄마가 되면서 아주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부모님이 내게 선물해 주셨던 집처럼 최선을 다하고, 가족들이 울타리 안에서 서로가 이해하고 편안한 가정을 꾸려보고자 노력하였다.

아이들은 돌이 되기 전부터 우리 집 여행 역사의 구성원으로 편성되어 험난한 시절을 보냈다. 그 험난한 첫 나들이는 1월에 태어난 딸아이가 맞이했던 첫 번째 어린이 날이었다. 갓 백일을 지낸 딸에게 어린이날을 기념해 주고 싶은 아주 아주 초짜 부모는 사람은 많고, 볼거리는 별로 없는 복잡했던, 놀이동산 그것도 어린이날의 놀이동산을 찾아 갔다. 아마도 그날 딸은 먼지와 소음을 선물로 받았고 기억도 하지 못하겠지만 우리 부부는 너무 너무 뿌듯했다. “아! 우린 좋은 부모야. 어린이날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동산에 딸을 데리고 와서 놀이기구도 태워주고, 부모란 이래야해. 앞으로 이렇게 하자.” 라면서… 정작 회전목마는 아빠가 타고 아이는 목아 위 아빠 품속에서 잠들었고, 웃는 모습이 아닌 잠든 모습을 촬영하던 엄마는 속상했던 그런 날이었다. 그렇게 초보 부모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둘째 아들 아이가 9개월 되던 첫여름에 충청도 계곡에 텐트를 쳤다. 여름휴가니까 아이 목에 땀띠도 치유하고, 아이에게 첫 휴가를 시원한 곳에서 보내게 해 주기 위해서 이유식도 준비하고, 기저귀도 꾸리고 아이를 위한 짐만 한 보따리를 둘러메고 계곡을 찾아  텐트 생활을 시작했다. 이제 겨우 혼자 앉기를 하는 아이를 튜브 속에 넣어 계곡 바위틈 흐르는 물속에서 땀띠를 가라 앉혀 주겠다는 노력을 했다. 나를 포함하는 부모들은 아이에게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부모 생각으로 이렇게 살았던 거 같다.

올봄 생일 날 딸아이가 밥상을 차려 주겠단다. 가끔 밥을 해주기도 하고 생일날 특별 요리도 해 준적은 있지만 갑자기 왜? 일상처럼 반복되던 그렇고 그런 기념일이 아닌 기억에 남는 기념일이 될 거 같아 이유를 묻자. “마지막 상이잖아. 시집가서도 하겠지만 그건 그거고.” 한다. 그제야 항상 건넛방 문을 열고 엄마를 부르던 딸이 내년 생일에는 건넛방 문이 아닌 현관문을 통해 들어오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지금부터 하는 모든 일들이 마지막임을 떠올리게 되었고, 갑자기 이 모든 시간들이 소중하게 다가왔다.

남편과 여름휴가를 기획하고 있다. 두 아이가 중학교 진학 전까지 매주 금요일에 떠나 월요일 늦은 시간에 도착하는 국토순례와 다름없는 시간을 함께 했었다. 낚시터에서 때로는 겨울 얼음판에서…. 그런데 정작 비행기를 타고 나라 밖으로는 온 가족이 동행했던 것은 단 한 번뿐이라 미안함과 아쉬움에 멋진 여행을 기획하였으나 시간과 직장이라는 현실여건의 제약에 협상하여 “함께 즐기기”라는 단어에 최적화된 여행을 위해 딸아이가 태아로 동행했던 우리부부의 첫 휴가지로 결정했다. 시작과 마지막을 함께 하기 위해서….  

딸아이가 또 아들아이가 기억은 하지 못하나 경험했던 첫 나들이가 초보 부모의 엉뚱하고 부모 중심의 사랑이었고, 같이 사는 동안 그 사랑 방식이 옳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이 들어 되돌아보니 부모님께서 내게 주신 사랑이 모두 옳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사랑 덕에 오늘의 내가 타인을 따뜻하게 바라보기 위해 노력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 애쓰는 마음을 얻었듯이 아이들 마음에도 서툰 부모의 사랑이 냄새처럼 스며들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주길 바랄 뿐이다.
 
내년부터는 지금의 모든 마지막이 처음으로 다가올 것이다. 사위와 함께 하는 첫 생일, 사위가 동행하는 첫 휴가 등등….

끝과 시작은 구분 지어지지 않는 연결선에 있는데 우리의 마음이 항상 처음과 마지막 이란 단어로 구분을 지어 이야기한다. 

마지막이 또 다른 시작의 설렘을 예고하고 있는데….

황윤숙 한양여자대학교 치위생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