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통일이여 어서오라, 통일이여 오라.” 마지막 불러본 게 수십년이 되었을 텐데도 토시 하나 틀리지 않게 외우고 있는 노래입니다. 정치적인 이유에서인지 어떠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요즘에는 잘 들을 수 없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두괄식으로 시작하자면 우리의 소원은 아닐지 몰라도 저의 소원은 통일입니다. 대한민국의 알수 없는 미래에 통일이 탈출구가 될 것이라는 짧은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원은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그보다 나은 해결책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17년 9월 3일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한반도 정세는 언제 무슨 일이 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6자 회담은 10년전 6차 회담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우리나라를 뺀 6개국의 수장이 김정은, 트럼프, 시진핑, 푸틴, 아베라는 점만 생각해도 참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 같습니다. 정치에는 그닥 관심도 없고, 흥미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지정학적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아니면 국제적으로 전혀 불가능한 말이라고 할 지라도 “통일”이
4차 산업혁명이 세간에 화두입니다. 그 방면에 전혀 전문가가 아닌 그저 평범한 사랑니 뽑는 치과의사일 뿐이지만, 보통사람의 관점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저는 아직 4차 산업혁명에 대해 부정적인 글을 보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한껏 부정적인 자세를 취한 채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사실 미래의 일을 예측한다는 것이 크게 의미있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예측이라는 것이 즉석 복권을 긁듯이 그것만으로 끝나 버리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 2차 산업혁명이 현대인의 삶의 근간이 되었다면, 3차 산업혁명은 아직도 진행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이 이루어낸 변화를 무선 인터넷으로 날개를 단 모양이 되었습니다. 1, 2차 산업혁명에 많은 닮은 꼴이 있는 것 처럼, 3, 4차 산업혁명도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논란의 여지는 있을 수 있겠지만,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 빅데이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빅 데이터를 이용한
“백세시대”라고 합니다. 노화는 여러가지 어려움을 만들지만, 그 중에 청력의 저하 만큼 답답한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잘 듣지 못하게 되면, 이해가 어렵게 되고, 오히려 말소리가 커지고, 자신의 말만 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노년층의 청력저하는 치매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합니다. 공자께서는 칠십세를 고희라고 하셨는데, 불혹의 나이가 되었음에도 유혹은 여전히 유효한걸로 보아, 나이만 먹는다고해서 고희에 이를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건강한 우리들은 잘 듣고 있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듣고 싶은 것만 듣습니다. 자신의 경험, 지식에 비추어서 남의 말을 들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러하기도 하지만, 고정관념이라는 중력과 같은 강한 힘이 시나브로 자신의 생각으로 끌어들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대화에서 조금만 빗겨나서 대화를 들어보면 서로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가끔 듣는 직원들 간의 대화에서도 상식 선에서는 도저히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는데 서로 자기 말만 하고 있는 상황이 재미있기도 하고 조금 씁쓸하기도 합니다. 삼계탕 집에서 닭볶음탕에 공기밥이 나오는지 안나오는지에 대한 대화였지만, 침소봉대라고 생
태어날 때 몇 킬로그램으로 태어나는지. 백일전에 뒤집기를 하는지. 몇 개월에 걸음마를 하는지. 두돌에는 몇 단어나 말을 할 수 있는지. 유치원에서는 달리기를 몇 등을 하는지. 한글은 몇 살에 읽고 쓸 수 있는지. 초등학교에 가서는 줄넘기를 몇 개나 할 수 있는지. 중학교에 가서는 반에서 몇 등이나 하는지 고등학교에 가서는 수능 점수를 몇 점이나 받는지. 대학교에서는 학점을 몇 점이나 받는지, 토익 점수는 몇 점이나 받는지. 결혼 적령기에는 배우자 조건으로 몇 점이나 되는지. 신혼집은 몇 평이나 얻는지. 연봉은 얼마나 받는지. 체지방은 얼마인지. 몇 살까지 살 것인지. 우리는 숫자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아니 적어도 저는 위와 같은 숫자 나라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런 숫자들이 우리에게 도대체 얼마나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오랜만에 다녀온 산행 후 허기에 주유소에서 받은 건빵을 집어들었습니다. 보리 건빵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보리가루는 2%가 들어있다고 합니다. 대부분이 “바나나 우유” 라고 알고 있는 어릴적 최고의 간식거리도 사실은 “바나나 맛 우유”일 뿐 아니라, 1%의 바나나 농축과즙만이 들어있습니다. 식품 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든지 평
얼마전 부탁받은 강연의 제목입니다. 주제가 성공한 치과인들에 대한 이야기이길래 제가 감히 성공에 대해서 논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서 행복에 대한 저의 생각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위해 정한 제목 입니다. 이러한 제목을 보고 벌써 성공한 것이냐 하는 질문을 받곤 했습니다. 성공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일반적인 기준에서 보았을 때에 성공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공이라는 가치 보다 행복이라는 가치가 더 위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물질만능주의라는 단어조차도 식상해진 이 시대에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할 지는 깊게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제 삶 속에서 보이는 것 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는 믿음이 생기면서 이러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었습니다. “속도 보다 방향” 가장 먼저 언급한 주제(?) 입니다. 반포대교를 건너다보면 최경주 선수가 샷을 하고 있는 광고판에 써져있던 문구입니다. 제 자신이 방향 보다는 속도를 엄청나게 중요하게 생각하고 살았었기에 더욱 가
2016년 2월 20일 토요일 새벽 6시 24분.등산 약속이 있는 토요일 아침이었지만, 생각보다 일찍 깨운다.아니 연기가 들어온다고 한다.이미 양쪽으로 연기가 들어오고 있다. 전기가 나간다.수건에 물을 적셔 가족 모두 코와 입을 막게 하고 연기가 가장 적은 방에 있게 한다.밖은 이미 아수라장인 듯 하다.출입문을 열려고 하나 열리지 않는다. 문도 이미 뜨거워져 있다. 복도로는 나갈 수 없을 듯 하다.사다리차가 오려나… 모여있던 안방에도 연기가 들어오는 것 같다. 연기가 가장 덜 들어오는 방으로 옮긴다.눈이 아프다 한다. 물안경을 찾는다. 스노클링 물안경을 모두 쓰고 입을 막고 있는다.이웃에게 전화하여 밖의 상황을 물어본다. 2층에서 시작된 불은 점점 잡히는 듯 하다고 한다.크게 불이 번질 상황은 아닌듯 하지만 연기 때문에 탈출해야 할 것 같다. 사다리차를 기다려야 하나… 이미 소방차는 여러대 출동하여 있다.소방관님들이 출입문을 두드리며 다닌다. 불길은 잡힌듯 하다. 안에 있다고 문을 두드리며 이야기 하니, 문을 열라고 한다. 한 분 들어오신다.아이들까지 5명이 있는 걸 확인하시고 대원들이 더 들어오신다. 아이들에게는 보조 마스크를 씌워 산소를 공급해 준다.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