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T를 타고 내려가는 오늘의 나의 목적지는 광주송정역이다. 주변 지인들 부모님들의 부고 소식에 장례식장에 가는 날이 많아지면서 문득 나의 부모님의 연세가 생각되었다. 팔순을 바라보시는 부모님! 급한 마음이 생겼고, 언제 내 곁을 떠나실 지 모르는 부모님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그래서 한가지 다짐한 건 아무리 바쁘더라도 가급적 한 달에 한번씩은 얼굴 뵈러 가자는 것이었다. 가끔 오프를 내어 아침에 가서 얼굴 뵈면서 점심을 같이 먹고 저녁에 올라오는 하루 일정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이젠 많이 익숙해졌고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배우기 시작한 게 카메라이다.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현재 가장 젊으신 부모님의 얼굴을 담아놔야지’ 하는 생각에. 두 분이 사시는 동네는 장성. KTX가 장성역에 정차할 때는 참 좋았는데. 아쉽긴 하지만 요즘은 SRT 수서역에서 출발하여 광주송정역으로 간다. 택시를 타고 점심 먹을 장소로 가서 함께 즐겁게 식사한다. 그리고 주변 커피숍에서 부모님께서 좋아하시는 캬라멜 마키아토를 시켜 드린다. 그러면서 카메라의 셔터를 누른다. 세월과 삶이 담긴 부모님의 얼굴. 54년을 함께 살아오신 세월로 인해 서로를 향해 한없는 신
인생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세월이 갈수록 더욱 느껴지는 것은 존경받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고, 존경하는 분들을 곁에 두고 만나뵐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라 생각한다.오오야마 선생님을 처음 만나 뵌 것은 1996년 1월 동경의과치과대학 악안면보철학 교수실에서이다. 당시 진주에 개원해 있던 나는 남편의 유학기간이 길어져서, 함께 공부하는 길을 찾았었다. 그때 소개받아 만나 뵌 분이 오오야마 교수님이시고, 처음 교수실에서 만나 뵈었을 때 자그마한 체구이시지만 뭔가 압도하는 분위기가 있으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고교 때 배웠던 일본어 실력으론 인사 외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옆에서 통역해 주신 최 선생님의 도움으로 그해 4월부터 공부하러 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유학생활이 시작되었다.기대 반 설렘 반으로 시작된 일본 생활은 생각만큼 간단치가 않았다. 3살이던 딸애도 환경이 바뀐 탓에 매일 아침 우는 아이를 놔두고 뒤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거웠었지만, 학교에 가면 주변 선생님들이 친절하게 잘 대해 주어 어려웠던 시간을 잘 보냈던 것 같다. 이런 의국 환경이 주어진 건 오오야마 선생님의 배려 덕분이었다. “나도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했기 때문에 유학생들의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