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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치과’ 검색하는 우리가 진상 환자인가요?

창간 51주년 특집1-‘다시, 환자를 생각한다’
총괄기사 | 환자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치과의사의 다짐


한동안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먹튀 치과들, 그리고 좀처럼 적정 치료비의 진실을 알 수 없도록 천차만별 수가를 내건 허위과장 광고. 여기에 더한 양심치과 논란. 환자를 혼란에 빠트리는 것은 우리 치과계 스스로일 수도 있다. 치과를, 치과의사를 바라보는 환자의 시선을 철저히 국민의 입장에서 담아본다.

Contents
총괄기사 | 환자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치과의사의 다짐
좌담회  | ‘환자가 묻고, 치과의사가 답한다’
인터뷰  | 장애인·노인·외국인 노동자 등 사회취약계층
환자분쟁 솔루션  | ‘파란불·노란불·빨간불’


“충치가 생긴 것 같아 집 인근 치과에 갔더니 자세한 설명 없이 신경치료 후 금으로 씌우자고 하더군요. 과잉진료가 의심돼 다른 치과에도 가봤는데, 설명이 충분치 않기는 마찬가지였어요. 그래서 인터넷을 찾던 중 알게 된 양심치과에 진료를 받으러 왔는데, 신뢰감이 가요. 치과 환자 입장에서는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최대한 환자 입장에서 바라봐주는 치과의사에게 진료 받고 싶은데, 양심치과는 그런 점에 부합하는 것 같아요.”

이른바 ‘양심치과’로 매스컴을 탄 치과에 진료 받으러 온 20대 환자 A씨는 이같이 말했다. 치과에 대해 갖고 있던 기존 불신감에 실제 진료현장에서 느낀 의료진의 성의 없는 응대가 더해져 양심치과를 검색하기에까지 이른 것이다.  

같은 곳에서 만난 70대(여) B씨의 말은 더 격렬했다. 그는 기자에게 치아를 보여주며 자신에게 14개의 임플란트를 식립한 동네치과를 격하게 성토했다.

“잇몸이 튼튼하다면서 1개를 공짜로 해주기로 하고 임플란트 14개를 심었는데, 나중에 다른 치과에 가니 잇몸이 거의 없다고 했어요. 심은 다음 날부터 아파 죽을 뻔했고, 얼굴 비뚤어지고 턱까지 돌아갔어요. 아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놨어요. 임플란트 심은 치과에서는 이를 다 망가뜨려놓고도 소송에 자신 있다고 배짱부리고 있네요.”

“일부 치과만 그렇다”는 항변으론 대중 생각 안 바뀌어
  피해 본 환자들은 ‘부분이 곧 전체’라는 생각 각인

 환자가 아프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아프다. 믿고 위탁했던 내 신체가 물건 취급당하는 데 화가 나고, 이런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원장님이 야속하다.

‘저렴한 진료비, 최신 술식, 선착순 한정’이라는 광고를 보고 찾아갔던 치과는 진료비만 받고 문을 닫았다. 몇 군데 들른 치과에선 같은 증상에 대해 진료비가 수십에서 수백만 원 이상 차이가 난다.

SNS에 올라온 ‘양심적인’ 치과의사의 영상을 보며 박수를 치고 해당치과에 새벽부터 줄을 서는 환자들의 모습은 분명 현 치과계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지난해 말 치과계를 충격에 빠뜨린 ‘강남 먹튀치과 사건’의 피해자 모임 간부를 맡고 있는 C씨는(20대 남성) “사실 의료소비자 입장에서는 실력이 비슷하다는 전제하에 가장 싼 곳을 찾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일처럼 피해를 보게 되면, 따로 떼어서 ‘이 원장만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전체 치과의사에 대해 불신하게 된다. 피해자 모임에서 해결을 위해 다양한 사례를 수집할수록 치과에 대한 불신감이 깊어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칭찬은 발로 걸어 다니고, 흉은 말을 타고 날아다닌다. 일부의 일탈과 비위는 잔잔한 전체 치과계에 큰 파문을 그린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일부 의사의 몰염치함, 형편없는 술기, 공감능력의 부재, 박리다매식 영리 행위, 위임진료.’ 이 모두가 답이 될 수도 있고 어떤 것도 답이 아닐 수도 있다. 분명히 이 모두에 해당하는 치과의사가 존재하고, 이들로 인해 다수의 선량한 치과의사가 함께 욕을 먹는다. “우리는 안 그렇다고, 일부만이 그런다”는 항변으로 대중의 생각은 바뀌지 않는다. 피해를 본 환자에게는 ‘부분이 곧 전체’라는 생각이 맞는 말이다. 이들의 특징을 이해하고 지적하는 바를 숙고할 필요가 있다. 

# 젊고, 능동적이고, 빨라진 환자들

환자가 변했다. 변해버린 환자의 의식과 관련 제도를 의료인이 따라잡지 못하는 시대가 왔다. 전문가인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설명할 때 거론되는 전통적인 개념인 ‘정보의 비대칭성’이 무너졌다. 예전처럼 고개를 조아리고 원장의 말을 듣는 환자가 아니다. 환자들은 젊고, 능동적이고, 빨라졌다. 스마트를 넘어서 ‘브릴리언트(brilliant)’하다.

이명진 의료윤리연구회 초대 회장은 “고전적 환자가 고통(suffering)을 벗어나기 위해 의사를 찾았다면 요새는 그것을 넘어 기능, 미용을 위해 의사를 찾는다. 이른바 Enhanced medicine(강화의학) 개념처럼    환자들의 니즈가 다변화하고 명확하기 때문에 의사들이 예전과 같은 접근방식을 고수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를 뜻하는 ‘메디컬(medical)’과 소비자를 뜻하는 ‘컨슈머(consumer)’를 결합한 일명 ‘메디슈머(medisumer)’라 불리는 이 의료소비자들은 인터넷이나 전문서적, 관련 전문가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며 의사가 독점하고 있던 의료정보의 벽을 허물고 있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환자의 40%가 치과를 방문하기 전 온라인 정보검색을 통해 치과의 평판이나 자신이 받고자 하는 진료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며, 이는 30대를 전후한 연령층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범람하는 치과광고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어디로 가야할까?


‘페이션트’(patient) 는 가고  ‘메디슈머’(medisumer)가 왔다
              

환자의 시대
치과 평판 검색은 기본,
치아번호 외우고 술식 학습까지



# 분쟁 발생시 언론 제보 등 공격 대처

경기도 하남에 거주하는 D씨(35세)는 “치과치료를 위해 치아의 번호나 치료의 영어명기 등 기초정보를 공부한 적이 있다. 그 후에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서 우리 지역 치과의 평판을 검색해보고, 고심해서 치과를 선택했다. 내 상태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으로 말하니 치과의사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환자들의 학력이 높아지고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가치를 두는 것은 의료서비스의 질, 신속성, 심미성 등이며 이것이 충족된다면 진료비는 후순위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새로운 환자군은 진료과정에서 분쟁 발생 시 과거처럼 읍소하기보다 소송이나 언론제보 등 공격적인 대처를 망설이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최근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자료에 따르면 치과의 연도별 의료분쟁 조정 신청 현황은 2014년 145건, 2015년 163건, 2016년 177건으로 증가추세에 있으며, 보존, 보철, 발치 순으로 분쟁이 많고 임플란트 관련 분쟁이 1~2년 새 대폭 늘고 있는 경향을 보인다. 2017년 9월 30일까지를 기준으로 치과분야는 의료분쟁조정 중재대상 3위로, 의료분쟁조정 부동의율이 가장 높다.

서울의 E원장은 “한 환자는 어떻게 알았는지 일본산 재료 또는 일본에서 생산되는 성분이 들어있는 재료는 사용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방사능 오염이 우려된다는 이유였다”며 “이런 환자들을 보면 요즈음 TV 광고를 보고 특정 임플란트를 시술해 달라는 환자는 애교수준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 임플란트 업체 관계자 F씨는 “아직 국내에 출시되지 않았고 우리도 본 적 없는 임플란트를 구할 수 있냐는 문의를 받은 적이 있다. 또 캐드캠을 이용한 기공물과 일반 기공물과의 차이점을 묻는 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 요즘 환자들의 정보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조영갑·전수환·정연태 기자



환자는 늘 ‘을’이라는 이해심으로
치과의료인 폐단 자정 노력 기울여야

#고삐 풀린 자율성에 모두 상처

물론 문제 환자도 많다. 일부는 법률적 지식을 바탕으로 의료현장에서의 사소한 실수를 의도적으로 악용하거나 자신의 불만을 폭력적인 방식으로 표출하기도 하고,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지나친 요구를 하는 등 도를 넘어서는 행동으로 많은 치과의사들을 괴롭힌다. 

치협 회원고충처리위원회에 접수된 자료에 따르면, 보철치료를 받은 환자가 치료에 대한 불만족을 “스케일링 치료의 본인 부담금을 면제받았다”며 건보공단에 신고해 해당 치과로 하여금 자격정지 처분을 받게 한 사례가 있다.

또 여자치과의사에게 진료받은 환자가 치과위생사 또는 간호조무사에게 위임진료를 받았다고 협박해온 황당한 경우도 있다.

수도권에 개원한 G원장은 “한 환자의 경우 자신의 구강 내 사진을 찍어 치료에 따른 이미지 변화 양상을 분석해 왔더라. 모 대학 공대에 의뢰해 제작했다고 한다. 물론 전문가 관점에서 전혀 고려할 가치가 없는 자료였다”며 “또 다른 환자는 교정환자였는데 A포인트를 자신이 원하는 선까지 앞으로 당겨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다. 아마 성형외과를 많이 돌아다니며 들었을 거로 생각한다. 나보다 더 많이 아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66만원 교정 이벤트’ 같은 광고를 보고 몰리는 환자들의 가치 지향성도 정상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 의견이다. 

이명진 회장은 이를 ‘고삐 풀린 자율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그는 “환자의 결정권(autonomy)이 확대되면서 의사가 충분한 정보를 환자에게 제공하고 환자는 결정권을 확보하게 됐지만, 그것이 늘 최선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고삐 풀린 자율성이 의료의 전문성과 환자의 안전을 해할 위험도 그만큼 커졌다”고 분석했다.

제도적 상황도 메디슈머의 등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강화된 설명의무법(의료법 제24조의 2). 이제 의사는 진료의 책임과 더불어 말의 책임까지 지게 됐다. 물론 의사윤리에 적시된 대로 설명은 의사의 소명이지만, 이제는 법의 처벌을 염두에 두고 ‘소상한 설명’을 제공하고 기록까지 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됐다.  

최근 의료분쟁과 관련한 저서를 집필한 H원장은 “이 법의 취지는 일단 환자의 자기 결정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법으로 환자에 대한 설명의 의무와 환자의 자기 결정권이 훨씬 강화되었다고 봐야 한다. 마찬가지로 설명의무와 관련해 사법부의 판단 역시 더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I원장은 “어쨌든 사회제도가 이렇게 흘러가는 부분이 시사는 것에 치과의사들이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환자를 약자로 놓는 것은 어느 국가, 어느 사회나 기본이니까”라고 말했다.

#가장 바라는 것은 ‘믿음’주는 치과의사
  치과의사는 ‘믿음’ 주기가 가장 어려워

이 같은 치과환자와 치과의사의 다른 입장 속에 두 주체를 한데 불러 모아놓고 벌인 이야기 자리에서는 중요한 키워드가 나왔다. 환자가 치과의사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믿음’을 주는 태도라는 것. 무섭게 다그치고 진료비가 비싸도, 믿음을 주는 치과라면 선택하겠다는 것이다. 반대로 치과의사는 그 ‘믿음’을 주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얘기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치과의사는 “환자와 의사간 여러 갈등 속에서 결국은 환자가 을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환자 개개인에 있어 자신의 건강한 치아는 한번 잃어버리면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라며 “치과의사를 의심하고 불신하는 환자를 결국 우리 스스로가 만든 건 아닌지 돌이켜 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환자에게 ‘믿음’을 어떻게 줘야할지 더 많이 고민해 봐야겠다”고 밝혔다.

이에 환자는 “병원 밖에서 치과의사와 이렇게 대화해 본 것은 처음인데, 평소 치과의사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이 달라지는 느낌이다. 치과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으면 또 연락할테니 답변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영갑·전수환·정연태 기자
일러스트 = 닥터드라(조성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