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이즘(-ism)에 지배 받는 것을 경계

스펙트럼

이번에 소개할 책은 ‘미나토 가나에’ 작가의 데뷔작 “고백”이다. 이질적이고 기이한 일본 토속신앙이 주는 위화감 때문에 나는 이전까지 서점만 가면 일본 소설을 피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로 접하게 된 이 책은 나에게 일본 소설의 작품성에 대한 또다른, 어쩌면 매우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해 주었다.

비교적 잔잔한 제목을 가진 이 소설은 여러 인물의 주관적인 시각을 통해 계속되는 반전을 보여준다. 사고로 죽은 줄로만 알았던 어린 딸이 사실 자신이 맡고 있는 학급 내 학생들에게 살해당했다는 여교사의 고백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다섯 인물의 시선으로 사건 전후 상황을 바라보며 마지막은 여교사의 시선으로 소설이 마무리되는데, 피해자와 가해자 2명이 속한 세 가정은 빠른 전개 속에 참혹하게 망가진다. 개인의 심리묘사를 간결한 문체로 풀어내어 읽는 데 큰 무리는 없지만 중간중간 많은 생각이 들게 해주는 책이었다.

책을 읽는 도중 가해자의 심리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상태에서 저런 말을 들으면… 살인을 할 수도 있겠는데…?’ 비상식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말은 때때로 하는 쪽이 아니라 듣는 쪽의 감수성에 그 모든 것이 내맡겨진다고 했던가. 객관적 사실이 투영된 하나의 사건을 다양한 관점으로 쪼개면 단지 5개가 아닌 수백, 수천개의 진실이 존재한다. 현실과 불협화를 이루는 진실마저 명확한 사실로 자리잡고, 하나의 ‘입장’이 생겨나는 것이다.

관점(觀點). 직역하면 하나의 점을 본다는 뜻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보고 생각하는 태도나 방향을 의미한다. 하지만 수많은 선입견, 이즘(-ism)은 특정 관점을 권고하며 편파적인 시각을 요구한다.

이 세상에 같은 처지를 갖고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다시 말해 같은 입장을 지니는 사람 역시 없다. 그러나 현실에 만연한 이즘은 자신의 존재를 구속하고, 타인의 입장을 강요하며 일률적인 기준을 지정해버린다.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라.’ 누구나 자주 듣는 말일 것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나 환자를 관리하는 의사들 중 많은 이들은 치우친 시각을 경계하며 다양한 관점을 가지려 노력한다. 하지만 과연 그 다양함은 특수성을 띠지 않는지, 이즘에 지배 받고 있지 않는지, 어쩌면 더 편협한 시각을 제공하고 있지 않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특수성을 가진 개체의 집합의 개념을 광대한 우주로 적용하지 않는 한, 다른 사람의 입장에 대한 완전한 공감과 일체화를 이루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가 이즘에 지배 받는 것을 경계하고, 완전한 공감보다는 이해의 수준에서 상대방의 입장을 인지하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더 겸손하고 합리적인 자세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택규 학생
단국치대 본과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