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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다움의 상실 시대, 스마트 기버 철학

Relay Essay 제2565번째

코로나 시기를 지나면서 우리 사회에는 많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비대면의 시기를 겪으면서 사람들은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는 ‘선택적 비대면’의 좋은 점을 알아버렸다. 또한 진료에 바빠 모르는 사이에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고, 어느새 우리 주위에는 ‘인공지능(전자챠트, 구강스캐너 등)’이 너무나 익숙한 현실로 들어와 있다. 최근 소개된 챗 GPT는 인간과 거의 흡사하도록 놀라운 창작 능력까지 보이고 있어 앞으로 많은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걱정스런 예상도 한다.

 

편한 것에 익숙해지면 절대 불편한 상황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스마트폰이 일상화되고 카톡이 대중화되면서 사람들은 문자로 소통하는 것에 더 편안함을 느끼며 직접 통화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전화 공포증’이란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심지어 사랑하는 연인들끼리도 마주 앉아서 얼굴이 아닌 휴대폰을 보며 소통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이 요즘 세대의 당연한 모습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정보화 시대의 편리함과 익숙함 속에서 우리는 ‘사람다움’을 점차 잃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대 철학과 김기현 교수는 특강에서 ‘사람답다’는 것은 ‘공감능력을 원료로, 이성을 엔진으로 하여 공존할 사회를 자율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모습’이라 정의했다. SNS를 통한 소통의 편리함 속에 공감능력은 감소되며, 또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자신의 가치관과 취향에 따라 분석하고 선택하기보다는 유튜브의 알고리즘처럼 AI가 제안하는 것을 본인도 모르게 선택하며 자율성이 상실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에게 과연 어떠한 미래를 가져다 줄 것인가?

 

서울공대 연구팀의 2090년 대한민국 사회 계급 예측이 안타깝게도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려서부터 스마트폰과 함께 성장해온 요즘 아이들은 책을 읽는 것을 어려워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말과 글로 표현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생각하며 읽어야 하는 두꺼운 책보다는 짧은 웹툰과 쇼츠 영상에 익숙하고 당장 신나고 재미있는 인터넷 세상에서 ‘ㅎㅎㅎ, ㅋㅋㅋ’만 표현하며 살아온 결과가 아닐까? 세상의 큰 흐름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사람다움을 잃어가는 상황은 점차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들고, 이는 사람들과 직접 접촉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임상 상황에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 예측되어 걱정이 앞선다.

 

해리 할로우의 새끼 원숭이 실험은 임상 현장의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배가 고플 때만 차가운 철제 어미 원숭이에게 가서 젖만 먹고는 포근한 봉제 어미에게 되돌아오는 모습을 보며 병원에서 일하는 우리가 변해야 할 방향을 생각해 본다. 그저 진료만 잘 해준다고, 저렴하게만 해 준다고 환자가 병원을 찾지는 않는다. 병원을 찾아온 환자도 사람이고 AI 의사가 정답을 준다고 해도 결국 따듯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의사를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 인공지능 의사 ‘왓슨’의 실패 경험으로 밝혀졌다. 현직 판사 친구에게 ‘판사가 아마도 인공지능에 의해 가장 먼저 대체되는 직업 중 하나가 아닐까?’라는 질문을 했더니 ‘다른 사람의 일에는 AI 판사가 공정하게 판결해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실제 자신의 판결에는 인간적인 고려를 기대하기에 판사 전체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되지는 않을 것이라 본다’는 답을 들었다. 법대로, 원칙대로가 기본일 것 같은 법조 분야에서도 보통 사람들은 인간적인 모습을 기대한다. 결국 사람은 따듯한 사람에게 끌리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걱정스러운 큰 변화의 흐름에서 사람다움을 지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감사하게도 나는 그 답을 경영학을 비롯한 인문학을 공부하며 찾을 수 있었다. 예전엔 2~30대 직원들이 손해 보기를 극히 싫어하고 공정을 외치는 모습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경쟁에 내몰린 그들의 성장 배경과 우리 사회의 변화, 또한 그들의 심리 기저에 자리한 풍요 속 상대적인 공허함과 박탈감에 대한 설명을 듣고 보니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려운 문제를 풀려면 답을 밖에서 찾지 말고 안에서 찾으라는 말이 현명한 지혜임을 느낀다. 그렇다면 나부터 변화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개원의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직원들이 우리 병원을 찾아준 환자분들께 이성적인 진료 서비스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따듯함까지 제공하길 희망한다. 그러자면 나부터 직원들에게 그저 월급만 주는 원장이 아닌 직원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며 자율성을 가지고 우리 병원을 함께 만들어가도록 이끌어 가는 사람다운 매력이 느껴지는 원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은 좋은데 그런 만나고 싶은 원장이 되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미 직원들에게 많이 투자해 보았지만 결국 떠나가는 것을 반복하며 이젠 포기했다는 많은 원장님들의 생각을 바꿔줄 나만의 삶의 지혜를 나누고자 한다.

 

애덤 그랜트의 ‘Give and Take’를 읽어 보니 내가 생각했던 모범답안이 그 안에 있었다. 주기만 하고 받지 못하는 호구가 되진 말아야 하겠지만, 결국 많이 나누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나한테서 뭔가를 자꾸 받아가려는 사람보다 나를 챙겨주고 키워주며 성장시켜주는 원장을 만나고 일하고 싶다는 것은 직원들의 당연한 생각이다. 페이닥터(또는 전공의) 시절 함께 일했던 대표 원장님(은사님)의 모습을 떠올려 보고 다시 찾는 분은 어떤 분인가를 생각해 보면 된다. 누구나 자신에게 잘해주는 사람과 또 만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50대에 들어선 인생 경험에서 스마트 기버가 될 수 있었던 나만의 철학을 소개한다. 주위 친구들은 재능기부로 강의를 10여 년째 하고 있다는 내 얘길 들으면 이용만 당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해 준다. 그러나 본인의 시간과 돈을 써 가며 의료봉사를 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다녀오면 얻는 것이 더 많다. 나의 경우도 재능기부, 의료봉사 활동을 통해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음을 경험했다. 그 과정에 병원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위해 내가 만든 철학은 간단하다.

 

‘교육하면서 투자한 직원들, 페이닥터들은 어차피 떠난다. 그 10명 중 한 사람만 좋은 인연이 되어 함께 일해도 성공이다.’ 세계적인 투자가인 워렌 버핏도 투자 성공률이 21.6%밖에 안된다는데, 평범한 투자자라면 10%도 큰 것 아닐까? 비록 실제론 5%나 될까 싶지만 그런 철학으로 투자하는 과정에 만나 함께 병원을 성장시키는데 진심인 훌륭한 원장들, 알아서 스스로 잘 해내는 직원들과 함께 일하는 나는 행복한 치과의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