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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Painless Parker를 아시나요?

월요시론

치과의사 Painless Parker는 patient advocate인가, 아니면 outlaw dentist인가? 과연 그의 치과 개원 전략은 환자의 권익을 위해 합리적인 비용의 진료를 제공한 환자의 대변인인가, 아니면 호객 행위와 과대광고를 일삼으며 치과의사의 품격을 훼손한 비윤리적인 치과의사인가? 20세기 미국 사회에 던져진 이 물음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필자는 이 물음에 직접 답하기 보다는 Painless Parker의 일대기를 돌아보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그의 본명은 Edgar Randolph Parker(1872-1952)이고 캐나다 New Brunswick주에서 태어나, 18세에 2년 과정의 미국 Philadelphia Dental College에 입학하여 1892년 치과의사 면허를 취득하였다. 파커는 캐나다로 돌아가 개원을 하였으나 6주동안 환자가 한 명도 없었을 정도로 처참한 상황을 경험하며 첫 개원에서 실패의 쓰라림을 맛봤다. 그래서 파커는 사기에 가까운 뛰어난 상술로 성공한 바넘(Barnum) 서커스단과 치과를 융합하여 Street Dentist로의 변신을 시도하였다.

파커는 마차에 치과진료대를 싣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진료를 하였다. 천재사기꾼 바넘의 속임수를 능가하는 실력을 발휘하며 치과의사로서 성공가도를 달리게 되었지만 뭔가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치과 서커스단은 쇼걸들이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사람들을 모이게 하였고, 악단은 시끄러운 음악을 연주함으로써 치료받는 환자들의 비명 소리가 잘 들리지 않도록 하였다. 또한 발치 환자에게는 독한 위스키 또는 코카인 용액을 마시게 하여 정신이 혼미하게 함으로써 ‘Painless extraction’을 시행하여 명의라는 명칭도 얻었다고 하니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파커는 환자에게 ‘무통발치’를 강조하면서 치아 한 개당 50 Cents를 받고 발치하였다. 만약 환자가 통증을 느끼면 5$를 준다고 호언장담하면서 치료를 하였다고 한다. 1900년대 초의 5달러는 지금 가치로 115$정도 되니 작지 않은 금액이다. 한편 발치 수가는 50센트였는데 지금 대한민국 원화로 환산하면 1만2300원정도 된다.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발치 수가가 백여년 전에 미국의 치과계 이단아로 낙인 찍혔던 파커가 제시한 수가와 거의 비슷하다는 사실에 서글픈 감정이 밀려온다.

파커는 일반인들에게는 무통 발치를 보장하는 약간 독특한 치과의사로 인식되었지만, 많은 동료 치과의사들에게는 치과의사 권위를 추락시키고 불법을 일삼는 골칫덩어리로 손가락질을 받았다. 결국에는 1915년 캘리포니아 치과의사 협회가 파커를 고소하여 ‘Painless Parker’란 호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에 질세라 파커는 법원에 개명을 신청하여 그의 first name인 Edgar를 Painless로 변경하였고, 완전히 합법적으로 ‘Painless Dentist’라는 치과를 미국 전역에 체인점 형식으로 오픈하였다. 또한 파커는 치과의사 협회의 제재를 모략이라 하며 광고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였고 동료 치과의사들이 수입 감소로 인하여 파커를 공격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데 중점을 두었다.

파커의 모교인 템플 치과대학(구 Philadelphia Dental College)에 있는 치과박물관에 가면 그의 흔적들을 지금도 만날 수 있다. 환자들에게 파커의 발치경험을 뽐냈다던 수 천개의 치아들이 담겨진 나무통, 파커가 하루에 발치한 357개의 치아로 엮어 만든 목걸이, 발치할 때 마다 악사들이 소리 높여 불렀던 나팔(Klaxon horn)에는 20세기 치과의사학(齒科醫史學)의 우울했던 산물이 고스란이 남아 있다.

Painless Parker의 사례는 미국 치과계에 ‘윤리’라는 화두를 던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역사는 반복된다는 진리를 대한민국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Dr. Painless Parker를 반면교사로 삼아 환자의 권리와 이익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진료하고, 그에 상응하는 정당한 대가를 보상받으며, 치과의사의 품위와 명예가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서로 함께 가는 길을 모색했으면 한다.


권 훈
미래아동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