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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매일 연습하는 치과의사 되기

시론

몇 주전만 해도 아직도 추운 겨울인가 싶더니 이제는 따뜻해진 봄 기운이 완연합니다. 여의도에는 벚꽃이 한 가득 펴서 나들이객 들로 거리가 붐비고 한강 다리에 차량 정체가 생겨납니다. 가수 장범준을 평생 먹여 살려줄 ‘벚꽃 엔딩’은 오늘도 열심히 여기 저기서 흘러나옵니다. 아마 응급실에 후배 선생님들은 요즘 같은 주말이면, 공원에서 신나게 뛰놀다 넘어지고 굴러서 이나 입술을 다친 어린이들 울음 달래느라 진땀 빼고 있을 겁니다.

지난 주말은 날도 따뜻해지고 하여 저도 간만에 교수님, 선배 원장님들과 기분 좋게 골프장에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실력이 미천하여 치고 왔다고는 못하겠습니다. 오랜만에 잡힌 골프 모임에 꽤 설레었는지 수 주전부터 일주일에 사나흘을 연습장에 가서 열심히 골프채를 휘둘러 댔습니다. 그날도 역시 연습장에서 골프채를 휘두르고 있었습니다. 몸이 피곤해서 인지 팔다리가 유난히 뻣뻣합니다. 다른 날보다 공이 더 이상하게 날아다녔던 것 같습니다. 맘대로 안 되는 연습에 조금씩 화가 날 때쯤, 문득 나는 왜 골프 선수도 아닌데 밤늦게 집에 눈치까지 봐가면서 이리 열심히 이 짓을 하고 있는지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시에 내가 치과의사로서 발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살고 있는지 반성을 해보았습니다. 골프선수도 아니면서 골프연습은 열심히 하고, 치과의사이면서 발전을 위한 아무런 노력을 안 하다니요.

치과의사는 프로입니다. 프로 운동 선수들이 죽어라 훈련하는 것처럼, 프로는 자신 스스로를 개발하고 능력을 향상시킬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뿐만 아니라 많은 치과의사들은 임상 후에 따로 치과의사로서의 훈련을 하지 않습니다. 노력을 멈춘 것은 지금 저의 임상 능력이 탁월해서 일까요? 아니면 이제 웬만큼 배웠다고 착각해서 일까요?

요즘 신경치료가 맘처럼 잘 안됩니다. 길도 잘 안 뚫리고, 충전 해놓고 나서 방사선 사진을 찍어보면 짧게 충전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진료 중에는 신경치료를 할 때마다 왠지 예민해지고 소심해집니다. 도와주는 스탭에게 짜증을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잃어버린 감각을 찾기 위해 별다른 노력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막연하게 내일은 오늘보다 잘 되겠지 라고 스스로를 속이고 집으로 향합니다. 그런 제가 골프공이 안 맞는 것은 속상해서 될 때가지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자세를 확인하며 채를 휘두릅니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진료는 재미가 없고 골프는 재미 있어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골프 연습이 정말 지루합니다. 축구 농구처럼 땀을 흘리며 신나게 뛰어다니는 운동은 아니니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떠 올랐지만, 가장 큰 이유는 경쟁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단 골프는 다른 사람과 같이 하는 운동이다 보니 경쟁심이 생깁니다. 짓궂은 친구 중에는 일부러 약을 살살 올리는 친구도 있습니다. 안 그래도 열이 올라있는데 그런 속을 살살 긁으면 큰 소리도 못 내고 속이 부글부글 끓지요. 그런 경험이 한번 두 번 쌓이다 보면 게임 중에 남에게 민망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지기 싫어서, 귀찮은 걸 참아가며 바쁜 시간 쪼개서 연습을 합니다. 그런데 진료는 남과 경쟁할 일이 잘 없습니다. 오랫동안 그렇게 지내다 보면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뒤쳐진 건지도 잘 모릅니다. 자연스럽게 연습도 공부도 등한시 하게 되었고요.

저는 아직 10년도 안된 초짜 치과의사이지만 치과라는 직업이 그런 것 같습니다. 매일 매일이 비슷한 상황과 환자의 반복이다 보니, 언제부터인가는 특별한 환자가 없습니다. 원내생 때는 모든 환자가 특별했습니다. 스케일링 환자마저 특별했죠. 모든 것이 새로웠으니까요. 처음으로 신경치료를 하게 되었을 때 석고 캐스트에 발치 된 치아들을 구해다 심어놓고, 치수강 개방 연습을 하던 기억이 납니다. 혼자 몰래 실습실에 숨어서 치아 몇 개를 뚫어보고 걸리기 전에 급하게 나오느라 핸드피스를 안 챙긴 줄도 몰랐습니다. 결국 핸드피스는 없어졌고 꽤 큰 돈을 물어내기도 했었습니다. 처음으로 했던 인레이 환자, 크라운 환자는 몇 시간에 걸쳐 환자를 고생시켜가며 치아삭제를 해놓고 결국에는 프렙이 맘에 들지 않아 자존심이 상해서 한참 동안 캐스트를 요리조리 쳐다보고 했었습니다. 환자를 보기 위해 고민하고 물어보고 연습하고 그랬던 그 청년은 어디로 갔을까요?

나는 이 정도면 치과치료 잘한다며 스스로를 속이고 혼자서 멋에 빠져있다 보니, 따듯한 날씨 때문인지 정신을 놓았었나 봅니다. 혹시 저 아시는 선생님들은 저를 보시면 정신 번쩍 차리게 “이원장. 정신줄 놓지 말고 신경치료 연습 좀 해. 넌 골프로 치면 이제 백돌이야!!” 라고 한마디씩 해주십시오. 속이 부글부글 하게요.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강희 연세해담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