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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탄핵에 대한 소고

스펙트럼

믿었던 이의 배신은 고통스럽다. 열과 성을 다하여 믿었던 경우 더욱 그렇다. 그렇게 박근혜 전 대통령은 내게 고통을 안겨줬다.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헌법수호의 막중한 의무를 걷어차 버리고 아직도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조차도 모르고 있는 모습을 보며 배신감은 허탈감으로 뒤바뀐다.

엄연한 법치체계를 무시하고 최순실이라는 한 개인에게 국정농단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분명한 잘못이다. 최순실이라는 개인이 자신의 딸을 부정한 방법으로 대학에 입학시키는 속물이라서가 아니다.
국무총리와 각 부처의 장관 등 국정 운영의 정당한 체계를 무시하고 소위 ‘강남 아줌마’라고 일컫는 한 자연인과 국정 운영 과정을 공유하고 또 실지로 이 과정을 거쳐서 중차대한 국가 과제가 결정되고 실행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또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문에도 적시되어 있는 바와 같이 그 이후의 과정에서도 성실히 검찰 조사에 임하겠다는 국민과의 약속도 지속적으로 지켜나가지 아니한 점 등 후속 조치에 있어서도 헌법수호의 의지를 읽을 수 없었던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미르 재단 출연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착복한 돈은 한 푼도 없으므로 탄핵은 지나치다는 논리도 내가 보기에는 빈약하다. 횡령이나 개인 착복 등 비리에 관한 양적 문제보다도 더 엄중한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의 자격 여부에 관한 질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바탕 온 나라를 휩쓸고 지나간 탄핵의 와중에 위와 같이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나서 생각이 조금 다른 방향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내가 애초에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왜 찍었지? 물론 대통령으로서 잘 하리라는 믿음이 있었으니까 찍었었다.

과거 대통령들이 임기 후 고초를 치르게 되는 이유가 아들이나 측근들의 비리 문제였었던 기억이 미혼의 박근혜를 대통령으로서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 탓도 있으리라.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과도 따져보아야 할 역사적 과제이지만 부하의 총탄에 비명에 간 독재자의 딸이라는 양가감정도 분명 작용하였으리라. 더구나 어머니 육영수 여사는 진정한 퍼스트레이디의 면모를 가진 몇 안되는 전직 대통령의 부인으로서 국가 공식 행사에서 엉뚱한 총탄에 억울한 희생을 치른 불쌍한 인물이 아닌가?

게다가 박근혜는 이명박과의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 실패하자 곧바로 결과에 승복하고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줬고 이후에도 자기 입으로 뱉은 말은 반드시 지켜내는, 언행이 일치하는 몇 안 되는 정치인 중의 한 사람 아니었던가? 이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박근혜에게 신뢰의 이미지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나도 이러한 ‘이미지’ 때문에 박근혜에게 투표했었다.

민주주의는 이념이 아니라고 한다. 민주주의는 영어로 자본주의(capitalism)나 공산주의(communism)처럼 -ism으로 끝나지 않고 democracy라 표기한다. 민중(demo)의 통치(cracy), 이념이라기보다는 다수의 선택이라는 방식, 혹은 수단이다. 이렇게 수단으로서 민주주의를 생각할 때 잠재적 우려 점은 다수의 선택이 반드시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문제점을 극명하게 느끼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개인의 선택 방식이 문제이다. ‘이미지’를 보고 선택하는 점이 문제가 된다. 나는 이 글의 서두에 사랑하는 이의 배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적어도 나는 박근혜를 사랑해서 박근혜에게 투표했다. 그리고 지금은 그의 무능함에 나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다. 나의 선택은 전적으로 틀렸다. 가슴으로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투표해야 한다. 앞으로의 나의 선택은 올바른 선택이기를 기원해본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