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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장애?

Relay Essay 제2215번째

얼마 전 즐겨보는 예능프로그램에서 개그맨 김수용씨가 외국공항에서 있었던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면서 ‘공항장애’라는 표현이 우스갯소리로 나왔던 것을 보았다. 이 방송을 보고 문득 예전에 내가 겪었던 일이 떠올랐다.

2006년 본과 2학년 겨울 방학 때 외국 치과대학과 교환학생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캐나다 UBC 치과대학을 4박 5일 일정으로 방문한 적이 있었다. 교수님 두 분과 나를 포함한 동기 5~6명이 함께 가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첫 해외여행이라는 설렘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평소 영어울렁증이 심한편이라 두려운 마음도 가진 채 비행기에 올랐다.

10시간이 넘는 긴 시간의 비행 후 벤쿠버 공항에 도착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입국심사였다. 당시 나는 장시간의 비행으로 떡진 머리를 감추고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캐나다 여행기간 동안 애용할 컵라면으로 가득 찬 빨간 비닐 봉다리를 들고 입국심사라인에서 내 차례만 오기를 설렘 반 두려움 반의 심정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내 차례. 푸른 눈의 입국심사관이 나에게 빠른 말투로 뭐라고 솰라솰라하고 정신없이 말하는데 감으로 캐나다에 온 목적이 뭐냐고 묻는 것 같았다. 다른 일행들은 교환학생으로 온 거라고 대답했겠지만 나는 그렇게 말했다가 대화가 길어질 거 같아서 심사를 간단히 끝낼 요량으로 벤쿠버 지역에 유명스키리조트가 있다는 것을 착안해 “For ski” 라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푸른 눈의 심사관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이해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그래서 난 다시 용기를 내어 ”For enjoying ski”라고 또박또박 대답하였다. 그러자 궁금증이 풀린 듯 이해하겠다는 표정을 내비친 심사관은 스키 타러 어디로 가느냐는 뉘앙스의 질문을 나에게 던졌다. 원어민의 질문을 이해한 것에 대해 스스로 뿌듯해하며 나는 자신 있게 힘찬 목소리로 “휘슬러 마운틴!!”이라고 대답을 하였고 심사관은 내 힘찬 목소리에 화답하듯 입국심사 서류에 빨간 도장을 쾅 찍고 나를 통과시켜 주었다.

내 자신의 아이디어로 생각보다 짧은 시간에 수월하게 입국심사를 끝냈다는 뿌듯함과 안도감에 의기양양하게 공항출입구를 나서려는데 이게 웬걸. 갑자기 나타난 듬직한 체구의 공항경찰관 두 명이 양 옆에서 내 팔짱을 끼더니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는 것이다. 내가 끌려간 곳은 꽤 넓어 보이는 광장 같은 큰 방이었는데 그곳엔 누가 봐도 테러리스트들 같아 보이는 외모의 외국인들과 영화에서 많이 보았던 멕시코 전통 꼬깔모자 솜브레로를 쓴 멕시코난민들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줄지어 자리 잡고 있었다. 눈을 씻고 돌아봐도 동양인은 나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 사실에 나는 한순간 무인도에 혼자 남겨진 것과 같은 막막함을 느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이유도 모른 채,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인지 불안감 속에 두 시간 정도가 지난 후, 우리 팀의 연락을 받은 UBC 치과대학의 교수님이 공항에 직접 전화를 걸어 해명을 해주시는 바람에 난 그 지옥 같은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때 생긴 공항장애(?)로 인해 해외여행은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몇 년 뒤 있었던 신혼여행도 제주도로 가게 되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때 입국심사에서 걸린 이유가 내 용모에서 비롯되지 않았나싶다. 푹 눌러쓴 모자에 정체모를 빨간 봉다리, 그리고 자신에 찬 표정과는 동떨어진 세련되지 못한 영어회화 실력. 푸른 눈의 전사들에게는 충분히 오해할 만한 소지가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청춘의 단편영화 한 편 찍은 기분이고 가끔씩 미소 짓게 만드는 경험이었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처럼 성급하게 빨리 일을 마치려다 보면 자칫 일을 더디게 할 수 있다는 값진 교훈 하나 얻은 추억이기도 하다. 5분 이내에 마칠 입국심사를 미숙한 수준으로 꾀를 내다가 2시간의 혼쭐난 경험으로 끝냈으니 말이다.

P.S 그 당시 공항에서 두 시간이 넘는 시간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신 교수님들과 동기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서 죄송하다는 말씀과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강병현 대구지부 정보통신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