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원장이라는 직위는 참으로 어려운 자리라고 생각한다. 기업에서 말하는 경영자와 근로자가 모두 원장이다. 즉 치과의원에서 경영의 고용주와 생산의 중요한 근로자가 원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젊은 원장들에게 강의를 할 때, 의원을 창업하는 일은 “종합예술”이라고 설명을 한다. 투자자, 감독, 작가, 섭외 그리고 주인공이 모두 원장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아침에 폼나게 출근을 하고 커피를 한 잔 마시고는 YTN 뉴스를 보며 최저임금 42% 인상과 주 52시간제의 시행을 잠깐 생각해 본다. 오전 10시에 맞추어 환자를 본다. 그러다 점심시간에 시간을 내어 협력업체의 밀린 잔금을 이체하고 오후 2시에 맞추어 다시 환자를 본다. 오후 6시 30분, 막내 직원 한 명이 원장실을 두드린다. 우리 치과와 맞지 않아 퇴사를 한다고 통보를 받는다. 고맙게도 카톡으로 퇴사를 전하지는 않았다. 피곤하지만 퇴직연금과 실업급여 등이 머리를 스쳐간다. 드디어 집이다. 피곤함은 샤워로 달래고 저녁을 먹고는 알게 모르게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한다. 다음 날 아침, 구인광고를 알아보고 정부가 말한 최저임금이 막내 직원의 급여를 가볍게 넘어간 사실을 알고는 놀라고 걱정하기를 반복한다. 직원이 화
오자병법에 “다섯 번 이긴 자는 큰 해를 입고, 네 번 이긴 자는 피폐해지며, 세 번 이긴 자는 패자(覇者)가 되고, 두 번 이긴 자는 왕이 되지만 한 번 이긴 자는 황제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전쟁은 이기는 자에게도 엄청난 손실을 입히기 때문에 가급적 싸움을 피하되 정말 불가피할 경우 결정적인 한 번의 전쟁에 전력을 다해 승리해야 한다는 의미이죠. 이 말은 승자나 패자 모두에게 상당한 스트레스와 손해를 남길 수 있는 소송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평생 그런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일선에서 진료활동을 하다보면 한번쯤은 피하기 어려운 경험이 치료 결과를 두고 환자와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이 때 의사들이 초기 대응을 잘해야 한다는 의미로 한 때 많이 회자되던 “Sorry Works”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거짓말과 변명으로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지 말고, 처음부터 솔직하게 환자 측에게 “미안하다, 유감이다”라는 말로 공감하여 주면 심각한 분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너무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만 대처하거나 환자 측과 감정적으로 대립하지 말고 그들의 아픔과 상실감에 공감하여 주면 분쟁을
어느새 저는 60살이 되었습니다. 29살 때, 1990년 4월 하얀 목련이 필 때, 저는 태어난 고향 인천 중구에서 이규원치과를 개원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임플란트가 아직 일반화되지 않아서, 상실된 제2대구치 보철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것이 항상 저의 숙제였습니다. 지금은 CT를 찍어서 치조골 상태와 악골조직을 확인하고 나름 실력이 있으신 대부분 치과원장님들은 손쉽게 임플란트 식립을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임플란트 치료술식을 배우지를 못해서 못하고, 대신 저의 치과에서 같이 근무하시는 치주전공하신 봉직의 선생님께서 임플란트 하시는 것을 곁눈으로 슬쩍 볼 뿐입니다. 저는 근관치료시에 핸드 파일로 ‘H’파일을 이용했는데, 대구치 3근관을 한번 발수(Pulp Extirpation)하고 나면, 손가락이 얼얼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근관 길이 측정을 위해서 치과용 표준필름을 사용하여 방사선 촬영을 하면, 평소에는 치근단 부분이 잘 찍혀 나오다가, 바쁜 날은 2~3장을 찍어도 콘 컷으로 치근단을 못 보게 되어 속으로만 화가 나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 때는 제가 30대여서 조그마한 일에도 화를 자주 냈던 것으로 기억이 나고,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런
‘누가 밀어줘서 그 자리에 앉았나요?’ 여자가 임원이 되면 주변에서 쉽게 듣게 되는 질문이다. 심지어 진실을 추구하는 직업을 가진 기자들까지도 그렇게 묻는 것을 보면, ‘누가 밀어주지 않으면 여자는 임원이 되기 어렵다’는 것이 정설인가 보다. 여자 임원 비중이 가장 높은 산업군은 ‘제약 의료 바이오’이다. 여성 임원 비중이 63%이다. 가장 낮은 산업군이 ‘금융업’으로 0.6%이다. 외국계 제약회사는 70% 이상의 회사 CEO가 여성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매번 사장이 바뀌고, 그 사람의 성별이 여자이면, 각종 소설 같은 이야기들이 떠돌게 마련이다. 치과재료 업계에서 20년 넘게 제조와 수출을 하며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초기 회사 설립에 기여한 사람들, 어려운 순간에도 회사와 함께한 사람들, 본인의 개인사를 포기하고 회사에서 생활한 사람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신기한 사람’ 바라보듯 나를 맞았다. 조직에서 초기에 적응하는 데에는 필살기가 있다. ‘3개월 안에 거칠게 살아남기’이다. 오늘 그 비법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초기 3개월’의 법칙이 제 1원칙이다. 일반적으로 ‘조직을 파악한 이
‘따르르르릉’ 아침 6시 반 졸린 눈을 비비면서 아침 운동을 나간다.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때의 설렘이나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것은 이제 없지만, 어느 정도 습관이 되어 이제 운동하는 것이 그리 힘들진 않다. 깜찍한 마음과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몸이 실랑이를 마무리해갈 때쯤이면 그런 것은 사치라는 듯 어김없이 출근시간이 가까워온다. 처음 공중보건의로 발령받았을 때부터 매일 아침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다른 공중보건의 선생님들과 다른 점은 유닛 체어가 있는 치과진료실로 출근해 진료 가운을 입는 대신 차들이 줄을 지어 서 있는 선별진료소로 출근해 방호복을 입는다는 것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세종특별자치시 보건소에서는 작년 말부터 공중보건의들이 진료하는 대신 코로나19 대응 업무에 힘쓰고 있다. 진료실에서 시간이 나면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다가, 검사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선별진료소에서 긴장된 상태로 정신없이 검사하게 되니 처음 선별검사를 맡았을 때는 원내생 실습을 할 때처럼 하루가 금방 지나가 버렸다. 방호복을 입은 채 주차된 차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자가용 안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상체를 숙여 쉴 새 없이 검사
요즘은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소확행)’. ‘워크-라이프 밸런스(워라밸)’, ‘Quality of Life’ 등 행복과 관련된 키워드가 많다. 그만큼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필자도 ‘소확행’을 삶의 중요한 요소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데, 그만큼 행복의 역치가 낮은 편에 속한다. 맛있는 것을 먹거나, 자신에게 작은 선물을 주는 것과 같이 ‘소확행’이라는 단어의 뜻 그대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한다. 이런 삶의 방식은 인생을 살아가며 스트레스를 줄이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 행복에 대해 말할 때 항상 ‘어바웃 타임’이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이 작품은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를 사용해 행복에 대한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주인공은 ‘시간여행능력’을 통해 행복이란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서 주인공은 아버지가 알려준 행복의 공식을 통해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찾는다. 무엇보다 주인공은 시간여행을 통해 하루를 한 번씩 더 살아가는데, 일상의 긴장과 걱정으로 미처 보지 못했던 세상의 아름다움을 두 번째 하루에서 발견한다. 더 나아가 주인공은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데, 그것은 시간여행을 하지 않
작년 초인 2020년 1월, 동기들과 동남아 여행을 준비하던 나는 비행기가 취소되고 나서야 코로나19(COVID-19)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많이 고대하던 여행을 못가게 되어 무료해진 나는 본가에 있기보다는 동기들과 마지막 예과 방학을 즐기고 싶어 개강 3주 미리 대구에서 강릉으로 이동하였다. 개강일이 일주일도 안 남았을 때 개강 2주 연기 소식을 들었고, 다시 2주 후 이번 학기가 전면 비대면 수업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20년 한 해 동안 몇몇 실습을 제외한 거의 모든 수업과 시험이 온라인으로 진행되었고, 동기들과는 물론 선·후배간의 교류도 단절되었다. 매년 ‘전국치과대학(원)생 축제(이하 전치제)’를 준비하며 동아리별로 선후배간의 친목을 다질 기회가 많았었는데, 코로나19의 악화로 행사 취소는 물론 동아리 활동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활발하던 학교생활이 그리웠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다. 올해 강릉원주대학교 치과대학 학생회장에 당선되고 전국치과대학(원)생연합(이하 전치련)의 의장으로 역할을 맡게 되었다. 코로나19가 금방 종식 될 것이라 생각해 강릉원주대학교에서 1년 더 의장 역할을 하고 주최를 맡기로 했지만
1987년 2월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서울에 홀로 대학에 입학을 하기 위해서 서울에 올라왔다. 입학식에서 부산 사투리를 쓰는 친구가 혹시 치의예과 신입생이냐고 해서 그렇다고 했더니, 본인도 같은 학과 신입생이라고 잘 지내보자고 했다. 물론 고등학교 동기가 27명이 서울대에 같이 입학을 하여 친하게 지낼 사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치과대학은 혼자여서 잘되었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 친구는 브니엘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부산의 동아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 하나 더 섭외하고 학습동아리를 만들었다. 우리는 나중에 치과의사가 되었을 때, 무슨 도움이 될지 모르는 미적분학과 물리학 학습 동아리가 되어 매일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였다. 그런데 그 유명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6월 민주화 투쟁이 터진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시위를 위해 거리를 헤매일 때, 우리는 도서관에 있었다. 1학기 기말고사를 학과 차원에서 거부하기로 하고 시험장 입구를 일부 학생들이 지키고 있었는데, 나는 그 와중에 시험을 보러 들어갔다. 나중에 치과교정학을 전공한 친구가 입구에서 나에게 했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나중에 친구들을 어떻게 보려고 이렇게 하느냐?” 사실 부친이 사업에 망하고 월
생명체의 모습, 동물의 모습이 지금과 같이 진화한 이유에 대해 분석하고자 할 때 우선 풀어보아야 할 문제가 있다. “우리의 감각기관은 어째서 대부분 얼굴에 몰려 있는가?”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의 육근(六根), 다시 말해 ‘눈, 귀, 코, 혀, 몸, 생각’의 여섯 가지 지각기관(根) 가운데 눈, 귀, 코, 혀가 모두 얼굴에 몰려 있다. 얼굴에 분포한 신근(身根)까지 합하면 모두 다섯 가지 지각기관이 좁디좁은 얼굴에 오밀조밀하게 몰려 있다. 어린 아이든, 어른이든, 노인이든…. 사람도 그렇지만 강아지도 그렇고, 개구리도 그렇고, 물고기도 그렇고, 새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메뚜기도 그렇다. 왜 그럴까? 왜 이렇게 진화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까? 그 답은 간단하다. ‘먹기 위해서’다. 인간을 포함하여 그 어떤 동물이든 ‘입 구멍’에 먹이를 넣어야 신체가 보전되는데, 아무것이나 다 먹이가 될 수는 없다. 눈으로 탐지하여 ‘먹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면, 가까이 접근하여 코로 냄새를 맡아서 그것이 먹이인지 확인한다. 부패하거나 해로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입 구멍 속으로 넣어서 혀를 대어 먼저 표면의 맛을 본다. 그
치과란 분야가 외과의 영역에 속하는 이상 손기술이 좋아야한다는 것이 상식적인 이야기입니다. 실질적으로는 치과대학에 들어오기 전에 본인의 손기술이 좋은지에 대한 생각보다는 일단 시험성적에 맞춰서 치과대학에 들어오긴 하지만 6년동안 혹은 인턴, 레지던트 포함 10년의 수련 기간동안 손기술은 점점 발전하여 예술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동료치과의사들의 모습을 SNS의 케이스 리포트를 통해 매일 접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딱딱하게 느껴지는 학회에서의 케이스 리포트보다 SNS를 통해 동네치과의사들의 수술 실력과 보철, 보존(충전) 실력을 매일 들여다보며, 세상에 숨은 고수들이 많음, 특히 대한민국에 이렇게 손기술이 좋은 사람들이 많음을 아주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예술이라는 것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인간이 미적 작품을 형성하는 창조활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치과는 다른 외과적 술식과는 다르게 눈에 보이는 작업을 많이 하는 분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치과진료 자체가 예술의 한 분야로 분류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창조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고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전공하는 화가가 처음부터 원근감, 공간배치, 색감 등이 풍부한 완벽한 그림을 그릴 수는
처음 신문 기고를 부탁 받았을 때, 고민을 하다가 나 자신의 이야기를 해봐야 겠다고 생각했다. 원내생 생활을 한 지도 9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원내생 생활 자체에는 익숙해졌지만 Minimum requirement를 채우기가 쉽지 않다. 학교 총대표 및 KDSA 총대표 업무 또한 하나도 허투루 할 수 없기 때문에 항상 긴장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원내생이 끝나도 남아있는 실적고사, 국가고시, 특히 우리 학번부터 시행되는 국가고시 실기시험도 큰 걱정이다. 돌이켜보면 치대 생활은 한 순간도 쉬운 적이 없었다. 나는 종종 선배들에게 학년이 올라가면 조금은 편해지는지 희망 섞인 질문을 하곤 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항상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힘들다는 말이었다. 그 당시에는 괜히 겁도 주고 장난치는거라 생각하며 웃고 넘겼는데, 본과 4학년이 되어보니 선배들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다. 학년을 진급할수록 새로운 환경이 주어지고, 이에 적응하고 졸업요건을 이수해 나가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요즘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내가 추구했던 목적의식과 방향성에 대해 잊고 살아가는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나는 과거의 나에게 내가 겪었던 길을 똑같이 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