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를 녹이자 미제 검은 안경을 끼고 온 세상을 바라보았다 사막은 온통 금가루 욕심이 날 법도 하더라 점령군이 메고 있는 총알은 알사탕으로 보이더라 그것을 받아들고 떠난 영혼들 약자의 한을 품고 가더라 색안경을 벗자, 온통 핏자국 “총질은 이제 끝장내자” “무기를 녹여 다리를 놓자” “오아시스에 손을 씻자” 악몽의 이명증에 시달리던 전상자들은 저렇게 소리치고 이 세상에 평화의 눈길이 쏟아져 전쟁의 불길은 꺼져 가고 있다. 김영훈 -《월간문학》으로 등단(1984) -시집으로 《꿈으로 날으는 새》, 《가시덤불에 맺힌 이슬》, 《바람 타고 크는 나무》, 《꽃이 별이 될 때》, 《모두가 바랍니다》, 《通仁詩》 등 -대한치과의사 문인회 초대 회장
싱싱한 것들 해와 달과 별들이 싱싱한 것은 시시때때로 구름으로 닦으며 밤과 낮을 분명하게 가르고 모두에게 봉사하기 때문이다 바람이 싱싱한 것은 산과 들과 바다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스쳐도 맑게 보이기 때문이다. 눈뜨면 들어온 탐욕 가슴에서 쓸어내리고 눈물로 참회하는 일 흘린 만큼 싱싱하다 내 마음 흐물거릴 때 남들이 던진 돌덩이로 내 가슴이 철렁이는 순간 그 풍파도 싱싱했다. 김영훈 -《월간문학》으로 등단(1984) -시집으로 《꿈으로 날으는 새》, 《가시덤불에 맺힌 이슬》, 《바람 타고 크는 나무》, 《꽃이 별이 될 때》, 《모두가 바랍니다》, 《通仁詩》 등 -대한치과의사 문인회 초대 회장
나무들의 편지 별들이 은하수에 몸을 씻고 우리들의 머리에 빛날 때 나무들은 맑은 정신으로 세상 다독이는 편지를 쓴다 심장에서 우러나오는 빛깔로 꽃 피워 열매를 맺던 일 그간의 사연을 이파리에 물들인 아름다운 엽서를 지상에 띄운다 모두 다 헌신적으로 이 땅을 가꾸자는 뜻 한 장씩 띄워 보낼 때마다 나무는 더 곧아진다 바람 타고 오는 낙엽들 자연을 사랑하는 편지 나무는 그대로 세워두자고 가랑잎 소리로 속삭인다. 김영훈 -《월간문학》으로 등단(1984) -시집으로 《꿈으로 날으는 새》, 《가시덤불에 맺힌 이슬》, 《바람 타고 크는 나무》, 《꽃이 별이 될 때》, 《모두가 바랍니다》, 《通仁詩》 등 -대한치과의사 문인회 초대 회장
무인도 보는 사람이 외롭지 무인도가 외로운가 새들이 춤을 추며 놀아 주고 늘 파도와 함께 속삭인다 뱃고동 소리 되받아 주고 폭풍이 와도 감싸 주는 당찬 나무들이 가득 찬 섬 사람 없는 곳이 무공해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육지나 새들이 모여 사는 무인도나 떠들어 시끄럽기는 마찬가지 어느 곳이 더 요지경 속인가 잠깐 살다가는 생명들 육지도 외롭기는 마찬가지 이따금 눈길이 쏟아지는 섬 무인도는 외롭게 보일 뿐. 김영훈 -《월간문학》으로 등단(1984) -시집으로 《꿈으로 날으는 새》, 《가시덤불에 맺힌 이슬》, 《바람 타고 크는 나무》, 《꽃이 별이 될 때》, 《모두가 바랍니다》, 《通仁詩》 등 -대한치과의사 문인회 초대 회장
등굽은나무 길가에 서서 한평생 흘려보낸 등 구부린 우람한 정자나무 검푸른 잎마다 활짝 펴 잠시 쉬어가라 한다 가지 끝으로 뻗어나는 여름 새들과 이름 모를 벌레까지 모여 맨몸으로 노래하며 악단 이룬 이 나무 그늘에 내 땀은 잦아든다 곧은 나무들은 다 어디로 가고 긴 세월 혼자 지켜온 이 자리 등 굽은 정자나무 아래 다가서면 모두가 허물 가린 길손이 된다 나는 이제까지 멀쩡한 몸으로 누구에게 즐거움 주었으랴 수많은 사연 등에 건 이 정자나무 우러러보고 다시 떠난다. 김영훈 -《월간문학》으로 등단(1984) -시집으로 《꿈으로 날으는 새》, 《가시덤불에 맺힌 이슬》, 《바람 타고 크는 나무》, 《꽃이 별이 될 때》, 《모두가 바랍니다》, 《通仁詩》 등 -대한치과의사 문인회 초대 회장
내왕국에 마당에 새떼가 날아와서 빛나는 눈빛과 알 수 없는 언어로 이 땅의 주인처럼 나의 존재에 끼어들고 있다 구름 속에 숨어 산을 넘고 바람 타고 강 건너온 무리 내가 왕이고 싶은 내 땅과 내 나태를 잽싸게 낚아챈다 새들이 짝지어 부르는 노래 사랑의 연극같이 보이지만 시시때때로 지쳐 울부짖는 내 속내보다 즐거워 보인다 나를 점령하고 깃발을 높이 펄럭이며 식민지가 된 내 마음에 사랑의 등불 켜놓고 간다. 김영훈 -《월간문학》으로 등단(1984) -시집으로 《꿈으로 날으는 새》, 《가시덤불에 맺힌 이슬》, 《바람 타고 크는 나무》, 《꽃이 별이 될 때》, 《모두가 바랍니다》, 《通仁詩》 등 -대한치과의사 문인회 초대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