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주신 재능을 불꽃처럼 방전하고 2, 30대에 생을 마감한 모차르트 푸슈킨, 가깝게는 이상... 천재는 요절한다. 그러나 역도 진리는 아니어서 장수한다고 둔재는 아니다. 뉴턴 괴테 위고... 물론 의학지식과 농업생산성이 턱없이 낮던 옛날에 나온 얘기다. 다행히(?) 30대를 넘겨 나이 든 천재는 괴롭다. 내 눈에도 경이로운 나 자신의 업적을 어떻게 넘어설까? 치받고 올라오는 후배도 조바심을 부추긴다. 쫓기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렇지만 생각을 바꿔보자. 잔챙이 중에서 준척(準尺)은 폼이야 나겠지만, 월척과 어울려야 오래 살고 씨알이 굵어야 낚시꾼도 몰린다. 영화계 황금기는 문희ㆍ남정임ㆍ윤정희의 1세대와 장미희ㆍ정윤희ㆍ유지인의 2세대 트로이카 시대였고, 소설도 조정래ㆍ황석영ㆍ최인호의 선 굵은 서사(敍事) 삼총사 시절에 인기를 끌고 책도 많이 팔렸다. 흔히 일인천하 독주를 꿈꾸지만, 열띤 경쟁은 판을 키우고 격을 높이니, 작가에게는 생필품이요 고마운 존재다. 치열한 경쟁의 스트레스를 벗어나는 방법. 첫째는, 초반 점수 차를 확실히 벌려 놓는 프로골퍼 방식이다. 마지막 라운드에 여유 있게 우승을 하지만, 모든 자료가 열려 있고 만인이 똑똑한 오늘날,
초딩 때 윤백남의 소설 <흑두건>을 읽었다. 배경이 인조반정 전후였던가? 천하장사들이 만나 힘을 겨루는데, 갑이 손가락으로 굵은 호두알을 아작 깨뜨리자 을은 두툼한 엽전을 종이처럼 접는다. 부엌에서 따닥 소리가 나서 가보니 한 총각이 아궁이 앞에 앉아 팔뚝만 한 참나무를 가볍게 분질러가며 불을 땐다. 과장인 줄 알면서도 지붕 위를 훨훨 날아다니는 영웅호걸들의 활극에 가슴이 뛰었다. 일제의 강압 하에서 개화기를 맞은 선배들은 역사극처럼 제한된 소재로 흥미 위주의 글을 많이 썼고, 이런 풍조는 극한적인 대립과 전쟁으로 멍들었던 해방 후로 이어졌다. 어려운 시절일수록 사람들은 영웅호걸에 열광한다. 주인공은 영어로 히어로ㆍ히로인 아닌가? 어쨌든 이광수의 <단종애사> 김동인의 <젊은 그들> 박종화의 <금산의피>는 우리의 역사관에도 큰 영향을 주었고, 소재가 무궁무진한 세계적인 문화재 《이조실록》 덕분에, 사극은 여전히 소설ㆍ드라마의 노다지판이다. 사극 DNA는 7-80년대 3대 구라 황석영, 조정래, 최인호로 꽃을 피우는데, 출세작 <장길산>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던 탓인지, 황 작가는 스스로를 얘기꾼(Story
김상기 전 대전 MBC 사장이 타계한 지 어언 3년인데, 가끔 그 얼굴이 떠오른다. 얼굴은 전부터 알았지만 파탈하고(신흥초등 대전중ㆍ고 서울대 모두 4년 후배) 자주 만난 건 2010년경 부터다. 상배(喪配: 2007)한 후 매주 한 번도 빠짐없이 대전공원 아내 묘를 찾던 열부(烈夫)가, 가까운 동기 월례모임에 필자를 초청한 것이다. <삼국지>하면 적벽대전 때 양측사상자 숫자까지 뚜르르 꿰는 기인(奇人)인데, 뭐에 필이 꽂혔는지 올 때마다 필자를 꼭 불렀고 술 한 방울 못하면서 좋은 포도주를 서너 병씩 들고 왔다. 모임에 얽힌 추억 중에, 게스트로 초청한 미국인 교수와 필자가 카페 ‘팔로미나’에서 벌인 팝송 따라 부르기 대결(?)을 기억한다. 하루는 아내를 향한 절절한 그리움을 담은 시집 《아내의 묘비명(銘)》을 몇 권 가져왔다. 읽으면서 몇 번이나 가슴이 먹먹했는데 이튿날 집사람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육십 넘은 아마추어의 첫 시집이 이토록 감동을…. 그래서 시의 생명은 ‘진정성’에 있다던가? 얼마 뒤 4천 권 넘게 팔렸다면서 아마추어 시집으로서는 베스트셀러요 기적이란다. 곁들여 보도국장 시절에 들은 ‘사재기’ 관행을 얘기한다. 많은 출판사
1995년 디트로이트의 2년제 지역대학(Community College)에 들렸다. 구강위생과를 비롯한 20개과 중에, 지금은 미국 드라마를 통하여 많이 알려진 CSI(Crime Scene Investigator; 범죄 현장 조사)과가 신기했다. 지역주민은 등록금이 무료이고, 4년제 정규대학에 진학하면 취득한 학점을 그대로 인정해준다. 1988년 방학 중에 대학 문창과가 시민을 위한 강좌를 열었다. 글쓰기에 문외한인 아내가 친구 따라 등록하더니 기승전결에 주제가 뚜렷한 콩트 세 편을 써내고, 홍보이사로서 대전광역시 약사회지를 창간하여 3년을 꾸려갔다. <외갓집 풍경>은 필자의 <할아버님댁>과 짝을 이루어, 서정 태선희의 그림으로 꽃단장한 뒤 대전문학관 ‘명사 시화전’에 걸렸다가, 이제는 우리 거실에 와 있다. 치인문학(齒仁文學) 동인인 윤양하 원장의 주선으로 멜로디까지 얻었다(CD). 이제 상설강좌로 자리 잡은 문창과 강의는, 학부로서는 물론 노후 시민들에게 생의 의미를 다시 살려 사회통합에도 기여하는 ‘제2의 문맹퇴치 운동’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제1이 읽기라면, 제2는 쓰기다. 걸출한 이야기꾼(Story Teller) 황석영 씨의
미국은 대영제국에 이겨 독립하고 남북전쟁으로 국론을 통일했으며 양차의 세계대전을 주도하였다. 전쟁 직후 한꺼번에 전역하는 제대군인의 관리는 큰 문제인데, 전쟁경험이 풍부한 미 육군은 ‘보너스 아미’ 사건 등 시행착오를 거쳐, 합리적인 관리체제를 만들었다. 해방 당시 미 군정청은 위생국에 치무과를 신설하고(1945), 이듬해에 위생국을 보건후생부로, 치무과는 치의무국으로 격상시켰다. 선진 미국의 의료관리 특히 구강보건에 대한 전향적인 시각을 읽을 수 있다. 걸음마 수준의 정부수립 과정에서 치의무국은 폐지되어, 독자적인 구강보건조직이 없어진다(1947). 이후 부침을 반복하다가 5·16 때 담당관실로 부활했으나 유신 때 다시 사라진다. 협회의 끈질긴 노력과 손학규·우근민 제씨의 성원으로 보건국 산하에 구강보건과가 부활하지만(1997), 10년 뒤 유시민 장관은 구강보건 팀을 폐지하여 ‘생활위생 팀’에 통폐합한다(2007. 5. 17). 치과의사들에게는‘치욕’의 날이요, 의사협회의 의료법개정 반대투쟁에 동조한, “협회의 배신(?)에 대한 보복행정”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지난 8일 국무회의를 통과하고 10일에는 박능후 장관이 서명함으로써, 장장 12년 만에 구강보건
안녕하십니까? 제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관여하던 어느 날 스포츠 의학의 선구자인 고 하권익 박사가, 은퇴란 re-tire 즉 ‘타이어를 바꾸어 끼고 다시 달리라’는 뜻이라는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사실은 몇 개월 전 나에게서 들은 것을 깜빡 잊고 되돌려준 말이었습니다. 1998년 서정훈 교수 은퇴식에서 이카시카 미우라 선생이, “Welcome to Retired Club!”하면서 쓴 말이었습니다. 나는 그저 픽 웃고 우리말에 “감발을 고쳐 맨다”라는 좋은 말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우리 조상님들은 원행(遠行)을 할 때 백리 쯤 마다 짚신을 조이는 감발을 단단히 고쳐 묶었다고 합니다. 이 역시 이문열씨가 글에서 사용한 말로, 개화기의 어느 시에 나온다고 했습니다. 고 민관식 장관은 고령화시대를 내다보고, 오늘날 자주 쓰이는 ‘9988234’라는 말을 썼습니다. 저에게 금연(禁煙) 내기를 제안하며 들려준 말입니다. “99세까지 88하게 살고 2~3일 앓다가 4(死)하라”는 당시로는 귀한 덕담인데, 정작 본인은 88세가 천수이셨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생각(思考)은 주위에서 듣고 보며 자랍니다. 견문(見聞)이지요. 어디에서 읽고 누구에게서 들었는지 대부분 잊어버릴지라
한 농부가 소를 몰고 고개를 넘다가 호랑이와 마주쳤다. 겁에 질려 얼어붙은 황소를 버려둔 채 농부는 냅다 달아났다. 한식경쯤 지나 이상한 기척에 나가보니, 사립문 앞에 피를 뒤집어 쓴 황소가 노려보고 있다. 반가워 다가서는 순간 주인은 뿔에 받혀 공중에 뜨고, 황소는 무릎을 꿇고 쓰러져 죽는다. “주인이 뒤에서 부추겨주면, 누렁이는 호랑이하고도 맞장을 뜨지.” 어렸을 때 할아버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다. 3·1 만세운동 때 인동시장에서 일경의 총에 맞은 할아버님은, 다리를 절며 농부로 30여년을 더 사시고 1954년에 돌아가셨다. 필자가 근 300만 관객의 대기록을 세운 다큐영화 ‘워낭소리(2009)’를 보면서 몇 번씩 눈물을 삼킨 이유다. 3·11 치협 임총은 129 /157의 압도적인 지지로 전임 집행부를 재신임하고, 이어 마경화 부회장을 회장 직무대행으로 만장일치로 추인하였다. 케네디정부의 피그만 쿠바침공이 어이없이 박살난 이래, ‘집단 지성(知性)’이라는 용어는 주로 부정적으로만 쓰였지만, 이번 임시총회에서는 실로 신선하고 아름다운 원 뜻을 복원했다. 1999년 임총과 2000년 총회를 거쳐 반대의견과 절충을 거듭하면서, 거의 40년간의 숙원이었던 치과
재판장 피소가 살인범 A에게 사형을 언도했으나, 죽었다던 B가 살아있음을 확인한 집행관 C가, 집행을 중단하고 피소에게 보고한다. 새 판결은 ABC 모두 사형.A는 이미 언도를 내렸고, B는 무고한 A를 죽게 했으며, C는 집행에 태만한 죄다. 세네카가 ‘법 만능주의’를 경계한 일화로, ‘헌법소원과 설문조사’라는 칼럼에 소개한 바 있고(1996), 소송은 되도록 피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판결이 적시한 선거무효 원인은 ‘투표방식 오류’이므로, 당시 세 후보를 두고 재투표만 실시하면 좋겠지만, 법에 따르면 선거 전 과정을 되풀이해야 한다. 이 과정마저 문제를 삼아 걸면, 민사·형사소송이 꼬리를 물어 몇 년씩 끌듯이 자꾸만 꼬인다. 따라서 법원은 형사재판에서 구속을 삼가는 것처럼, 업무를 마비시키는 정지 가처분보다, 가급적 숨통을 열어 둠이 원활한 소송 진행에도 바람직하다. 지부장회의·대의원총회 의장단·전임 의장단, 세 모임이 한결같이 회무연속성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요, 치과계를 아끼는 회원이라면 모두가 한 마음일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는 4류 라하고, 여야가 치고받는 ‘막말’은 초딩에게도 민망하다. “진상규명·책임자 처벌·재발방지” 다 좋으나, 정치
“가카새끼 짬뽕”이라는 글을 현역 부장판사가 썼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는데, 그가 아파트 층간 소음(層間騷音)에 열 받아 주차 중인 위층 집 자동차 열쇠구멍에 이물질을 넣었다는 뉴스에 재차 놀랐다.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말에 공감하며, 우리보다 별로 나아보이지 않는 일본이 세계 어디를 가나 대접받는 이유를 새삼 깨닫는다. 인간의 됨됨이는 고등교육 여부와는 사실상 무관하다는 뜻이다. 지난 22년간 고등법원 민사조정위원으로 일하며 알게 된 사실은, 대한민국의 소송건수가 인구대비 일본의 16배가 넘고, 최종심까지 가는 비율도 그만큼 높다는 것이다. 관청에 계속 민원을 넣어 119 구급대원을 포함한 소방서원이나 아파트 경비원을 괴롭히는 일도 비슷한 맥락이다. 심지어 법률을 초월하여 타협과 조정으로 국민화합을 이루어달라고 표를 찍어준 정당·정치인마저 사법부에 제소를 일삼는 ‘소송공화국’, 이것이 바로 학력과 대학진학률이 세계 제일이라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지난 1월 말 인터넷신문 ‘Dentin’의 고정칼럼 ‘거꾸로 보는 세상’에 ‘직접민주주의와 당선무효소송’ 이라는 글을 썼다. 평생 반대해온 회장직선제의 폐해가 ‘소송’의 형태로 나타
협회장 직선제 반대는 필자의 지론이었다(프렉톨과 직선제: 치의신보 1995. 3). 민주주의 발전의 꽃인 대의 민주주의에 역행하고, 직선제를 택한 많은 유사단체가 투표율 저조에 따른 대표성 부족과 격렬한 비방·고발 등 선거과열로, 회장의 형사 입건 같은 후유증을 낳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총이 결정한 직선제를 대세로 받아들인다. 첫째 서구 자유민주주의에 비하여, 벼락공부로 압축성장한 대한민국 정치사회가 보여주는 현실이, “민주주의 정치성장에 월반(越班)은 없다”는 명제의 산 증거이기 때문이다. 겪을 일 겪고 고생 좀 해봐야 면역도 생기고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3만 회원, 특히 젊은 회원들의, “이대로는 견딜 수 없다”는 변화 열망이다. 셋째 임명직보다 선출직을, 간선제보다 직선제 출신의 대표성·조직 장악력을 더 높게 평가하는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의 선입견 때문이다. 대학총장 호선(치과타임스 1993. 1)이나 협회장 직선제는 우리사회가 한 세대쯤 더 성장해야 비로소 개선될지 모른다.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빅뱅의 변수가 있지만…. 경제력 최우선 시대에 들어와 미용·건강·행복추구, 다른 말로 복지안녕 증진(Promoting well-bei
국민투표와 브렉시트 영국이 국민투표 결과 EU 탈퇴를 선택하였다. 투표율 72%에 탈퇴 52.1%라는 의외의 결과로 캐머런 총리의 정치생명은 사실상 끝났다. 과거 독재자들이 국민투표를 즐겨 이용한 이유는, 현직 프리미엄으로 통상 긍정적인 반응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전례를 보더라도(1975년 EC 잔류 찬성표가 67.2%), 설마 탈퇴는 없으리라고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 국가 신용등급이 추락하고 세계1위의 금융업이 휘청거리며 외국기업이 떠날 기미가 보이자, 젊은 층을 중심으로 뒤늦게 후회하며 재투표를 요구하는(Regrexit) 목소리가 높다. 노인들이 자신의 미래결정권은 훼손했다고 원망하지만, 25~34세의 38%는 탈퇴(Brexit)를 찬성했고, 65세 이상에서 39%는 잔류(Bremain)를 택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청년·노인을 막론하고 모두 분노의 폭발(Breakout of Wrath), 막말로 “홧김에 서방질한 꼴”인데, 폭발시점만 투표 전과 후로 달랐을 뿐이다. 노인들은 화려했던 대영제국(British Empire)의 황혼을 지켜본 향수(鄕愁)와, 영국이 자존심을 굽히고 ‘유럽경제공동체’에 가입 신청을 했을 때(EU 前身, 1961) 오만한 프랑스
알렉산더의 보병부대와 징기스칸 기마대는 어느 편이 강할까? 이렇게 치기어린 질문에는 답이 없다. 시대부터 다르니까. 이제는 IT 기술의 발달로 모든 자료를 입력한 가상현실에서 게임처럼 즐기거나 승부를 점칠 수 있다. 그러나 흥미본위의 이벤트일 뿐 당시 조건을 100% 재현할 수도 없고, 애초부터 역사에 ‘if’란 없지 않은가? 이와 달리 사람이 규칙을 만든 게임은 비교적 단순하니까, 바둑으로 특화(特化)된 인공지능 알파고와 프로 정상 이세돌의 대결이 이루어진 것이다. 바둑의 발상지는 중국이지만 현대바둑의 종주국은 일본이다. 알파고의 ‘고’는 일본말로 바둑이다. 역사상 최고의 고수는 ‘기성(棋聖)’ 도사쿠(道策: 1670년대)요, 현대바둑 정립의 영웅은 세고에(瀨越) 9단이다. 세고에의 제자는 관서기원 창립자 하시모토와 중국 오청원 두 사람인데, 기타니 도장에 초청유학 온 조훈현을 탐내어, 마지막 제자로 데려갔다(1963). 한창 물 오른 제자가 군복무로 귀국하자 세고에는 비탄에 빠졌고, 설상가상으로 절친인 노벨상의 가와바타가 자살하자 자신도 목을 매어 자살한다(1972, 83세!). 애견(愛犬) 벤케이도 그 뒤를 따랐다. 가와바타를 존경한 미시마 유키오의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