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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0일 장애인의 날 “우리는 치과 유목민입니다”

“아직 부족해요” 뇌병변 장애인 치과 치료 현주소
행동조절 가능한 경우도 대형병원 전원 사례 빈번
장애인 치과주치의제 수가 현실화 전국 확대 필요
치과 참여 촉진 위한 다양한 정책 실현 속도내야

 

중증중복뇌병변 장애인 이하윤 씨(25·가명)의 어머니 김정아 씨(가명). 그녀는 20년 전 그날의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당시 5살이었던 하윤 씨가 충격으로 치아에 외상을 입었던 것. 놀란 그녀는 하윤 씨의 손을 잡고 인근 치과의원의 문을 다급히 두드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치과를 되돌아 나와야 했다. 그녀가 하윤 씨의 장애를 밝히자, 의료진이 즉시 대학병원 내원을 권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대학병원에서 늦지 않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지만,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김 씨에게 상처로 남아 있다.

 

김 씨는 “출혈도 없었고 치아가 흔들려서 상태만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당시 의료진은 아이의 장애를 밝히자 대학병원 내원부터 권했다”며 “이후 대학병원에서 2시간을 대기해 접수 및 진료를 마쳤다. 행동 조절이 다소 힘들다곤 하지만 고작 5살 아이였는데 너무 야속했다”고 토로했다.

 

# 장애인구강진료센터 도움 크지만?

보건복지부와 중앙장애인구강진료센터가 공동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기준 전국 14개 장애인구강진료센터를 이용한 중증 장애인 수는 5만6083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중증 뇌병변 장애인 환자 수는 전체 25%를 차지하는 1만4105명이었다.

 

이처럼 많은 장애인 환자를 장애인구강진료센터가 감당하고 있지만, 수요를 완전히 충족하긴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지난해 10월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바에 따르면, 중앙장애인구강진료센터의 초진 대기 시간은 약 100일, 전신마취를 활용한 진료 시에는 155일가량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1회 진료를 받기 위해 최소 3개월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실태에 많은 장애인들은 이른바 ‘치과 유목민’과 같은 생활을 피할 수 없다고 말한다. 특히 중증중복뇌병변 장애인의 경우, 지적·지체·시각·청각·언어·자폐·섭식 등 희귀·난치 질환을 2~4가지 또는 그 이상을 중복으로 가진 장애인이기에 이러한 실태는 더욱 심각하다.

 

중증뇌병변장애와 와상장애를 겪고 있는 최서진 씨(25·가명)의 어머니 박수애(가명) 씨는 장애인구강진료센터가 확대되기 전까지 보건소와 대학병원은 물론이고 의료봉사팀이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복지관을 찾아가는 등 발품을 팔았다. 대학병원도 여러 곳을 전전했으며, 응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인근 치과의원을 수소문해야 했다.

 

박 씨는 “지금은 중앙장애인구강진료센터에 정착하며, 진료를 받기 한층 수월해졌다”며 “이전까지는 수소문을 해도 진료가 난감하다는 답변을 듣기 일쑤였다”고 토로했다.

 

때문에 중증중복뇌병변 장애인들은 일선 치과의원에 참여 요인을 제공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정책과 제도를 정부가 마련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모든 중증중복뇌병변 장애인들이 행동 조절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므로, 적어도 검진이나 치석 제거 등의 진료는 인근 치과의원에서 받을 수 있도록 국가가 나서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장애인 치과 진료에 특화된 유니트체어 등 시설·설비 구축을 위한 지원 필요성도 전했다.

이에 대해 이정욱 한국중증중복뇌병변 장애인부모회 회장은 “치과가 무작정 장애인 진료에 나서달라는 것은 아니며, 현실적 어려움이 존재한다는 것은 공감한다”며 “이에 정부가 나서서 동기 부여를 해줬으면 한다. 예를 들어 장애인 진료를 연간 몇 차례 이상 수행하면, 우수 시설로 지정하고 현행보다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등의 방안을 마련해주면 어떨까 한다”고 말했다.

 

# 치과계 노력 불구 실효성 있는 제도 부족

이 같은 장애인 실태 개선을 위해 정부에서는 장애인 치과주치의 시범사업을 부산광역시, 대구 남구, 제주 제주시의 3곳에서 우선 시행 중이다. 하지만 비현실적인 수가, 코로나19 대유행 등으로 사업 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또 장애인 진료 시 치주 치료, 치석제거 등 일부 항목에 가산 수가를 적용하고 있지만, 이 또한 장애인의 구강 건강 실태를 실질적으로 개선하기엔 부족하다는 의견이 앞선다.

 

이에 치과계에서는 지속적으로 장애인 치과 진료 별도 급여화, 진료비 감면 제도 확대, 치과적 중증 장애인 범위 확대, 장애인 치과주치의제 수가 현실화 및 전국 확대 등을 제언하고 있다. 또 복지부 구강정책과를 중심으로 관련 정부 기관 업무 체계를 통합·강화해, 장애인 구강 건강 관리 및 증진에 특화된 사업을 추진해줄 것을 요청하는 중이다.

 

아울러 전국 각 장애인구강진료센터를 중심으로 이동진료버스를 운영하고 재단법인 스마일 등 장애인 구강건강증진 단체를 통한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밖에도 전국 각지의 여러 치과의사들이 자발적으로 장애인 진료에 나서, 치과의료사각지대를 최대한 해소코자 노력 중이다.

 

김동현 대한장애인치과학회 부회장은 “장애인 구강정책은 국가가 마스터 플랜을 수립해 적절한 수가를 책정하고 가중치를 제시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또 복지부에서는 장애인 정책과와 구강정책과의 긴밀한 협업 시스템을 구축해, 치과에 대한 배려와 특수성이 반영된 제도가 추진돼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또 김영재 대한장애인치과학회 회장은 “장애인 치과 진료 실태 개선을 위해서는 지역 단위의 촘촘한 진료센터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다”며 “최근 정부가 장애인 의료지원 확대를 대통령 공약 사항으로 추진 중인 만큼 가시적인 성과와 발전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