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의사들 앞에서 내 진료와 경험을 소개하는 강연을 한 지도 3년쯤 됐다. 이제는 연단에 서는 일이 제법 익숙해졌고 초보 티도 벗어났다. 처음엔 국내 동료들 앞에 섰고 지난해부터는 일본과 미국으로 날아가 현지 의사들에게 강연하고 실습도 지도한다. 강연이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될 거라고는 개원할 땐 상상하지 못했다. 부족한 내 임상에 꾸준히 귀를 기울여주는 동료들이 있다는 건 감사하고 기분 좋은 일이다. 돌이켜보면 강연 활동은 진료실 안팎의 나를 바꿔놓았다. 진료실 안에서의 변화는 ‘설명할 수 있는 진료’를 한다는 점이다. 혼자 진료할 때는 내 판단과 직관에 따라 진료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수십 명의 동료 의사 앞에서 ‘내가 왜 이렇게 치료했는가’를 풀어내려면 그저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머릿속에서 직관적으로 내리던 결정들을 학문적 근거와 함께 말로 정리해 두어야 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진료실에서 내리는 결정 하나하나에는 전보다 설득력 있는 이유가 따라붙게 됐다. 진료실 밖에서의 변화는 ‘기록의 일상화’다. 로컬에서 임상을 시작해 박사 과정만 따로 밟은 나에게는 진료 전 과정을 기록하는 일이 처음부터 익숙하진 않았다. 강연
비행기 이륙 전, 승무원은 늘 같은 안내를 반복합니다. “기내 압력이 떨어지면 산소마스크를 본인이 먼저 착용한 후, 옆의 아이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주십시오.” 이 말이 비정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여기엔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내가 숨을 쉬지 못하면, 그 누구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문득 치과의사들의 삶을 돌아봅니다. 우리는 환자의 통증과 불편감을 해결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숨을 참아온 것은 아닐까요? 환자를 돕기 위해 정작 본인의 산소마스크는 뒷전으로 미뤄두었던 것은 아닐까요? 나를 지우고 환자에게만 몰입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은 이미 실습실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국가고시 실기 시험장, 프렙 과정 중 인접치를 1mm 건드리는 것은 치명적인 결격 사유가 되지만, 치과의사의 허리가 몇 도로 굽었는지, 목이 얼마나 비틀렸는지는 당락에 큰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학생 시절 자세를 포기하면서 시야를 확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간접 시야(Indirect vision)를 통한 바른 자세는 치과의사가 평생 건강하게 일하기 위한 생존 기술임에도, 눈앞의 결과물을 위해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결국 환자의 치아를 살리는 법을 배우는 대가로
해외 봉사에 관심이 많아 서울대 치과대학에서 진행하는 캄보디아 진료 봉사도 몇 번 가봤지만, 이번에 대한여성치과의사회(이하 대여치)에서 진행한 필리핀 세부 치과 진료 봉사는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봉사활동이라 함은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내가 가진 기술과 지식을 제공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세부의 밝고 맑은 아이들과 함께하며 오히려 내가 더 충만하고 긍정적인 기운을 많이 얻을 수 있었던 감사한 시간이었다. 처음 보는 우리가 낯설 만도 한데, 조금은 피곤한 모습으로 도착한 우리들을 세부의 현지 학교 아이들과 수녀님들이 정말 반갑게 우리를 환대해 주셨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과 환영에 몇 시간 여정의 피로를 모두 잊을 수 있었다. 대여치 치과의사 선생님들이 체어에서 치과 진료를 진행하시는 동안, 나를 포함한 치과대학 본과 학생들(제2기 학생홍보기자)은 현지 아이들에게 TBI 교육을 진행했다. 다들 능숙한 영어로 TBI 교육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이 잘 이해했는지 직접 시켜보기도 하면서 각자 위치에서 봉사에 최선을 다했다. 일하고 먹는 밥은 특히 정말 맛있었다! 혹시 나중에 대여치 세부 의료 봉사에 참여할지 고민하는 분
주변 덤핑치과에서 치아가 아픈데 신경관이 막혀 치료가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소개로 우리 치과에 내원하신 40대 후반의 여성 환자분입니다. 이미 4개의 임플란트가 심어져 있었고 곧 이 치아도 임플란트로 치료가 되겠지요. 그렇게 잘 하는 분야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면 치료를 못할 것도 아닐 것 같아서 열심히 치료를 해보았습니다. 사실 이 케이스는 꽤나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근관의 석회화가 심해서 근관입구 조차 찾기 어려운 상황... 근관의 입구를 간신히 찾았지만 도대체 파일이 들어가지 않는 상황...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세 번의 내원 만에 간신히 협측의 두 개의 근관을 치료하고 기쁜 마음으로 X-ray를 찍어 보니 아뿔사! 근심협측에 근관이 하나 더 있는 케이스. 이 것 역시 많은 시간과 무수히 많은 기구와 재료를 허비하며 간신히 치료를 완료하였습니다. long shank round bur로 깨작거리며 치수강 바닥을 삭제하고 하염없이 endodontic explorer로 찍고 또 X-ray를 찍으며 치료하며 든 생각... 이럴 동안에 임플란트 10개는 심겠네.... 파레토 법칙(80:20 법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상위 20%의 제품군이 전체 매출의
12시간의 긴 비행 끝에 도착한 미국 입국 과정은 예상치 못한 경험으로 시작되었다. 입국 심사 과정에서 별도의 심층 인터뷰 공간인 secondary inspection으로 안내되어, 혼자 입국한 이유, 방문 목적, 직업 등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학회 초청장, 숙소 예약 내역, 치과의사 면허증 등 관련 서류를 미리 준비해둔 덕분에 큰 문제없이 입국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다소 당황스럽고 긴장되는 순간이었지만, 최근 국제 정세로 인해 입국 절차가 엄격해졌다는 점을 실감할 수 있었고, 사전에 철저히 준비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되었다. 공항을 나서자마자 마주한 따뜻한 캘리포니아의 날씨와 처음 느껴보는 미국의 분위기는 긴장감을 금세 설렘으로 바꾸어 주었다. 이번 2026 IADR/AADOCR/CADR General Session & Exhibition은 2026년 3월 25일부터 28일까지 샌디에고 컨벤션 센터에서 개최되었다. 첫날 학회장에 도착했을 때, 생각보다 훨씬 넓은 규모에 놀랐다. 학회장을 둘러보는 데만 1시간 이상이 걸릴 정도로 다양한 세션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고, 그만큼 볼거리도 많았다. 임상뿐 아니라 기초 연구 분야까지 폭넓은 강의가
1996년 4월에 첫 진료를 시작한 이래도 어느던 시간이 30년이나 흘렀습니다. 중간에 우여곡절도 많았고, 재작년에 공동개원은 아름답게 마무리해서 독립적인 병원운영을 시작했지만 소아치과 진료의 역사는 하나로 이어져왔습니다. 고민을 하다가 결국 30주년 기념행사를 가지기로 결정했는데 그러다보니 준비하면서 마음 한편에는 작은 걱정이 있었습니다. 과거에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직원들을 초대하고, 또 협력업체 대표님들과 현재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서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일 수 있는데 한자리에 모이게 되면 과연 그 분위기가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직원들과 진행과정을 하나하나 점검해가면서 준비하는데 그것 자체가 기쁨이고 소소한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행사날, 시간은 되어서 참석의사를 밝혔던 분들이 한, 두분씩 입장을 하면서 인사를 나누는데 가졌던 그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드림분당예치과병원이라는 이름 아래 자연스럽게 서로 대화가 오고갔고, 10분도 안되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본 행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자리마다 웃음꽃을 피웠습니다. 이것을 보며 문득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시기에 이 병원에 몸담았
내가 치과대학을 졸업할 때 가졌던 생각은 단순했다. “이제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했으니 사회에 나가면 꽤 괜찮게 살겠지.” 지금 생각하면 다소 순진한 기대였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이런 분위기가 분명히 존재했다. 부모들은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다. “서울대 가서 치과대학만 졸업하면 인생 편하다” “딴 생각 말고 공부만 해라” 심지어 “예쁜 여자들이 줄 설 거다”라는 농담 같은 이야기도 공부의 동기부여가 되던 시대였다. 당시 이런 말이 완전히 허황된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사법고시와 같은 시험을 통과하면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안정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문직이라는 직업 자체가 희소했고, 그 희소성은 곧 사회적 보상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전문직이라는 타이틀만으로 안정된 삶이 보장되는 시대는 지나갔다. 대학 이름이나 직업만으로 자동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따라오는 시대도 함께 끝났다. 서울대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세상이 특별하게 대우해 주는 일은 없다. 사람들은 그저 “저 사람은 성실하고 공부를 잘했겠구나” 정도로 생각할 뿐이다. 그것이 전부다. 어떤 사람은 농담처럼 말한다. “서울대 나오면 연애도 잘 되지
대한민국은 이제 단순히 오래 사는 사회를 넘어, 얼마나 건강하게 오래 사느냐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기대수명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지만 건강수명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그 격차는 개인의 삶의 질 저하는 물론 국가적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치과계의 역할 역시 분명히 달라져야 한다. 구강건강은 더 이상 단순히 입안의 문제가 아니라 영양, 전신질환, 인지기능, 그리고 돌봄과 직결되는 건강수명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실을 돌아보면 치과계의 메시지는 국민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6월 9일 구강보건의 날은 의미 있는 기념일이지만, 일반 국민들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어렵게 느껴진다. 기념일의 존재와 국민 행동의 변화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있다. 이제는 보다 직관적이고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구강건강의 중요성을 전달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필자는 두 개의 날을 제안하고 만들어왔다. 2월 2일 ‘이치백세의 날’과 5월 2일 ‘오복데이’다. 이치백세의 날은‘이(2)·치(2)’라는 상징을 통해 20개 치아를 100세까지 유지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는 단순한 치아 보존을 넘어 치매 예
오늘 소개할 나무는 크리스마스트리로 유명한 주목(朱木)이다. 봄이 되어 만물이 새롭게 될 때 긴 겨울에서 의연히 살아남은(?) 친구들이 있으니 바로 소나무 전나무 등 침엽수(針葉樹)라 불리는 이들이다. 고난을 통해 진정한 강자가 누구인지 드러나게 되는 것이 우리 인생과 같다고나 할까. 화려하지는 않지만 겨울의 이땅을 지키는 이들, 이들 중 하나가 바로 “주목(朱木)”이다. 주목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무다. 너무 흔해 잘 표시 나지 않는 친구다. 하지만 혼자 있길 좋아하고 어둡고 습한 곳에서도 잘 자란다. 나무에도 MBTI가 있다면 ‘E’가 아니라 ‘I’에 가깝다고 할까? 반면 이 나무의 내공은 감히 다른 나무는 흉내조차 낼 수 없다. 평균 수명이 천년이라고 하니 조선시대 아니 고려시대부터 대한민국을 지켜온 나무들인 것이다. 성경에서 가장 오래 산 인간인 창세기의 ‘무드셀라’가 969세까지 살았다고 하나 주목의 평균 수명에도 못 미치는 숫자이다. 주목의 별명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다. 시인 피기춘의 『주목이여, 그대에게 약속하네』라는 시의 “살아 천년, 죽어 천년 / 주목의 삶으로 세상에 향기 놓세.”라는 구절에서 나온 말이다. 실제로 강원도 정선군 두
얼핏 신비한 약물의 이름처럼 들리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입시를 관통하는 적나라한 신조어다. 2026년 3월 중순, 학회 발표를 위해 대만을 찾은 나는 가오슝의 시내를 걷고 있었다. 학회 사람들과 기분 좋게 저녁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가는 밤 10시쯤이었다. 환하게 불이 켜진 빌딩의 벽에 중고등학생 아이들의 사진이 붙은 커다란 광고판이 보였다. 자세히 가서 보니 어느 학교 누가 영어 혹은 수학경시대회에서 몇 등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수분 후 비슷한 색깔의 체육복을 입고 시커먼 백팩을 맨 아이들이 건물에서 쏟아져 나왔다. 밖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기다리던 수많은 어른들은 부모들이었나 보다. 아이들을 하나씩 태우고 총총히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보통 내가 대만하면 떠올리는 건 반도체, 대만해협과 중국, 그리고 펑리수 과자 정도지만 그날은 거기서 대치동을 봤다. 자동차가 오토바이로 바뀐 것 빼곤 무엇이 다른가? 이런 익숙한 도시의 밤풍경을 한국과 대만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2021년 정부의 강력한 사교육 금지정책 이전까지 베이징과 상하이의 학원가에는 아이들을 데리러 나온 부모들의 차량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학군지의 코딱지 만한 집이 천가방(天价房, 하늘을 찌르
군의관 복무를 마치고 사회로 나올 준비를 하던 무렵, 나는 스스로에게 꽤 오래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치과의 본질이 뭔가.” 사실 답은 알고 있었다. 예방하고 보존하고, 개입은 최소한으로. 살릴 수 있는 치아는 살려라. 모르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흔들리는 게 문제였다. 예방을 내세워 개원한 병원, 병원 안에 예방시스템을 만든 병원들이 있어 왔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 사라지거나 방향성을 수정하곤 했다. 정말 우리나라에서 예방과 보존적인 진료만으로는 치과 운영이 어려운 걸까. 임플란트 없이는 매출이 나오지 않는 걸까. 주변에서 들리는 ‘현실’은 생각보다 차가워 보였다. 뜻이 맞는 선배, 동료들을 만났고 2025년 8월 신논현에 병원을 열었다. 임플란트, 발치 치료 없이 이 살리는 진료에만 집중하는 병원이다. 개원하면서 이것저것 시도해 봤다. 환자가 여러 번 오가는 번거로움을 줄여보려 했고, 언제든 올 수 있게 매일 늦게까지 문을 열었고, 상담부터 수납까지 원장이 직접 챙겼다. 오랜 고민의 결과라기보다는 다양한 시도의 결과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지금 남아있는 것들은 해보니까 괜찮았던 것들이고 없어진 것들은 해보니까 아닌 것들이었다. 개원 준비를 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