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봉직의 생활을 시작한 지 6개월이 흘렀다. 동기들과 간간이 주고받는 근황 속에는 “누구는 벌써 어떤 술식을 했다더라”, “누구는 어디에서 얼마를 받는다더라” 하는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섞여든다. 다른 동기의 빠른 임상 속도나 높은 급여 이야기에 스스로 조급해지기보다는, 이러한 상황이 묘하게 익숙하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또래 친구들과 다른 속도로 살아왔기 때문인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부분의 친구들이 수능 성적에 맞춰 바로 대학에 진학할 때, 나는 N수의 길을 선택했다. 20대 초·중반에 또래들이 군 복무를 마치고 있을 때, 나는 스물아홉이라는 나이에 현역병으로 입대했다. 치과대학 학부 시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시 필기를 준비하던 시기에 누구는 벌써 2회독을 끝냈다는 말이 돌았고, 원내생 실습을 돌 때는 누군가 특정 과의 정해진 점수를 훨씬 상회하는 정도로 채웠다고 하는 식이었다. 그때도 나는 동기들보다 한 템포 늦은 위치에 있었지만, 초조하다거나 다급하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여태 살아오면서 남들과 같은 속도로 갈 수 있었던 몇 번의 분기점이 있었다. 수능 재수를 마치고 정시 지원했던 학교로부터 합격증
2025년 9월 7일, 박영국 교수가 세계치과의사연맹(FDI)의 신임 차기 회장으로 당선됐다는 소식은 우리 치과계에 큰 자부심을 안겨주었다. 2001년 고(故) 청운 윤흥렬 회장의 차기회장 당선 이후 24년 만이며 125년 FDI 역사상 최초의 단독 후보 당선이라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국제 치과계의 압도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그가 이뤄낸 쾌거는, 개인의 영광을 넘어 대한민국 치의학의 위상을 세계에 공고히 한 역사적인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고 윤흥렬 회장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인이 FDI 수장에 오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914년 토선 함석태 선생이 한국 최초의 치과의사 면허 취득 후 1925년 한성치과의사회를 창립하였고 대한치과의사협회는 지난 4월에 치협 창립 100주년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바가 있다. 근대치과의 도입기가 토선에 의해 시작되었다면 세계 무대의 데뷔는 청운이 스타트를 끊었다. 즉 박영국 차기 회장의 당선은 지난 수십 년간 우리 치과계가 학술적, 기술적으로 쌓아온 역량과, 기업과 선후배들이 국제 무대에서 흘린 땀방울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이제는 국제사회에 우리의 역량을 서브해야 하는 전환기를 맞이하였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여자 치과의사 단체는 왜 따로 있는 건가요?” 필자는 현재 대한여성치과의사회 임원으로 활동 중이다. 어느 날 지인인 남성 치과의사분으로부터 위와 같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분은 “남성 치과의사회는 없지 않느냐”면서, 여성 치과의사들이 굳이 따로 모여 활동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말씀하셨다. 그 질문을 들었을 때, 남성의 시각에서는 다소 의아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분리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은 충분히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도 유사한 흐름이 존재한다. 세계치과의사연맹(FDI) 산하에는 Women Dentists Worldwide라는 공식 섹션이 운영되고 있으며, 이는 여성 치과의사들이 직면할 수 있는 여러 현실과 고민에 대한 국제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나는 왜 여성치과의사회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그 계기를 되짚어보니, 아마도 결혼과 출산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던 시점이었던 것 같다. 사실 이 칼럼을 쓰면서도, 이 주제가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여러 번 고민했다. 필자는 이 글을 통해 특정 성별이 우위에 있다거나, 성 평등의 가치를 논쟁적으로 이야기하고
김동석 원장 ·치의학박사 ·춘천예치과 대표원장 <세상을 읽어주는 의사의 책갈피>, <이짱>, <어린이 이짱>, <치과영어 A to Z>, <치과를 읽다>, <성공병원의 비밀노트> 저자 사람은 누구나 편안함을 추구합니다. 편한 옷, 편한 관계, 편한 일상, 그리고 가능한 한 불편한 순간은 피하고 싶어 하죠. 하지만 가끔은 그 편안함이 우리를 점점 더 얕고 약하게 만들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곤 합니다. 예전엔 퇴근길에 작은 책방에 들렀습니다. 종이책 특유의 냄새를 맡고, 무겁고 투박한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표지를 만지작거리며 고민했던 시간. 어떤 책을 고를까 망설이던 그 짧은 불편함이 어쩌면 나를 깊이 있는 세계로 이끌어주던 출입구였는지도 모릅니다. 요즘은 다릅니다. 원하는 책 제목을 검색하고, 몇 번의 터치만으로 그 책은 내 손에 쥐어집니다. 심지어 요약본이나 서평을 보며 “굳이 다 읽지 않아도 되겠네”라고 생각하게 되죠. 더 나아가 책 자체를 읽는 대신, 짧고 자극적인 릴스나 영상에서 지식을 얻습니다. 빠르고 간편하고, 심지어 재밌기까지 하니까요. 하지만 생각해봅니다. 그렇게 편해
제목은 원래 건축학개론 영화 포스터의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를 조금 변형해보았습니다. 건축학개론 같은 영화든 히어로가 나오는 영화든 주인공은 모두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런 영화를 볼 때 주인공의 시점에서 힘든 감정을 느끼나 내가 실제 주인공이 아니기에 관객의 시점에서 그 감정을 이입해서 봅니다. 그래서 그 무서운 슬래셔 무비와 같은 공포영화를 봐도 우리가 패닉에 빠지지 않는 것은 우리는 실제 그 주인공이 아니라 관객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사실 나는 내 육신 그 자체가 아니라 외계생명체인데 우연히 기억을 잃고 떨어져서 지구상을 헤매다가 우연히 기억을 잃은 채 지금의 이 육신에 깃든 존재라는 설정입니다. 마치 ‘별에서 온 그대’의 김수현과 같이 태곳적 오래부터 살아왔고 언젠가 다시 고향인 우주로 돌아가야 하나 그러한 기억이 없고 이 육신에 잠시 머무는 존재라고 합시다. 고향인 우주는 기억이 안나나 내가 실제 내가 아니고 이 육신도 내가 잠시 빌려 쓰는 존재이면 나는 현재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요? 마치 제 두 눈의 안구에 맺히는 스크린을 보는 관객이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지금 칼럼을 쓰기 전에 고민하면서
ISO/TC 106(국제표준화기구 치과기술위원회) 61차 총회가 9월 14~19일까지 서울에서 열린다. 2013년 인천 총회에 이어 한국에서 두 번째 열리는 총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치과계 모두가 한마음으로 응원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한 국가적인 행사가 아니라 글로벌 치과 표준을 만드는 글로벌 실무이기 때문이다. 350여명의 전문가들이 모여 제출된 50여 편을 토의, 심의 하는데 이 중 30%인 15편을 한국이 제출했으니 한국대표단의 그간 노력이 단연 돋보인다. 충전 및 수복재료, 보철재료, 용어 및 코드, 기구, 장비, 구강위생용품, 치과임플란트 등 치과임상 및 구강위생을 위한 생활용품까지 표준을 정하게 되며 제정된 국제표준은 모든 나라의 인허가 기준 및 시험 방법이 된다하니 한국의 제출안건이 심의 통과되어 한국의 기술, 제품이 국제표준이 되면 국내 치과 산업발전의 보이지 않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이번 총회는 한국 치과 기술이 세계 표준을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무대다. 이미 임플란트, 디지털 장비 등 여러 분야에서 우리의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지만 국제 표준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우리의 기술을 표준으로 만드는 것은 또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H 교수는 개발 중이던 항암 바이러스 치료제의 면역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2022년 1월 자신에게 직접 주사하는 “자기실험”을 실시했다가 약사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1심에서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지만, 항소심에서 지법은 공익 목적과 안전성, 비영리성 등을 인정해 무죄를 선고했고, 검찰이 상고하지 않아 확정됐다. 법원은 이 자기실험이 임상시험 규
진료실에서 구강 검진 중 혀나 잇몸에서 비정상적으로 딱딱한 덩어리를 발견하면 우리는 즉시 생검을 통해 악성 여부를 확인한다. 그런데 최근 단국대학교 MRC 김해원 교수님 연구팀이 2024년 Advanced Science지에 발표한 혁신적인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딱딱함’ 자체가 단순히 암의 결과가 아니라 암을 더욱 악화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기존의 수술, 방사선, 항암치료와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으로, 암 조직을 물리적으로 ‘부드럽게’ 만들어 치료하는 개념을 제시한 것이다. 연구진이 규명한 구강암의 악순환 메커니즘을 살펴보면, 먼저 구강암으로 전이된 상피세포가 Sonic Hedgehog(SHH)라는 신호 단백질을 분비한다. 이 신호를 받은 주변 섬유모세포들은 활성화되어 콜라겐과 콜라겐 교차결합을 형성하는 LOX(lysyl oxidase) 효소를 대량 생산한다. 그 결과 조직이 점점 딱딱해지고, 놀랍게도 이렇게 딱딱해진 조직 환경은 다시 암세포를 자극하여 GLI2라는 전사인자를 핵으로 이동시켜 암세포의 증식과 침윤을 더욱 촉진한다. 마치 악순환처럼 암세포가 조직을 딱딱하게 만들고, 딱딱해진 조직이 다시 암세포를 악성화시키는
▶▶▶이용권 원장(청주 서울좋은치과병원 임플란트센터장)이 본지 3036호부터 치과의사의 희로애락을 담은 ‘털보의사의 치과 엿보기!’ 만화를 연재한다. 이 원장은 서울치대를 나온 구강악안면외과 전문의로 앞서 본지에 ‘만화로 보는 항생제’를 연재한 바 있다. ※ 이미지 클릭 후 드래그하면 고해상도 보기 가능합니다.
대한치과의사협회 자재·표준위원회에서는 국제표준화기구 치과기술위원회(ISO/TC 106)에서 심의가 끝나 최근 발행된 치과 표준을 소개하는 기획연재를 2014년 2월부터 매달 게재하고 있습니다. 환자 진료와 치과산업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이아몬드 회전 기구는 치아 조직이나 수복물을 삭제하고 형성하는 데에 널리 사용되는 핵심 치과 기구이다. 이에 따라 다이아몬드 기구의 재료, 치수, 성능 및 식별 기준에 대한 명확한 표준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며, 이러한 내용을 포괄적으로 제시하는 표준이 바로 한국산업표준 KS P ISO 7711-1:2021(치과 ─ 다이아몬드 회전 기구 ─ 제1부: 일반 요구사항)이다. 본 표준은 2021년 제2판으로 개정된 ISO 7711-1을 기반으로 국제표준과 기술적 차이 없이 작성된 한국산업표준이다. 특히 ISO 7711-3:2004(그릿 크기 및 색상 코드에 관한 규정)를 통합하여, 다이아몬드 회전 기구에 대한 총괄적 기준을 제공하고 있으며, 2025년에는 시험 하중에 대한 추록이 발행되었다. <적용범위> - 이 표준은 디스크형(Disk)을 제외한 모든 다이아몬드 회전 기구에 적용되며, 다음의 사항을 포괄한다
한국 치의학의 눈부신 발전 뒤에는 임상 현장의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짙은 법, 바로 치의학 기초교실의 위기다. 최근 심층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치과대학의 기초교실은 인력과 구조적 문제로 인해 융합 연구가 취약하고, 미래를 이끌 후속 세대 육성에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 서울대 기초학교실 교수요원이 50명이 안되고 타 대학들은 20명을 넘지 않는다. 대부분 2~5인 교실로 운영되고 DDS/PhD의 비율이 낮다. 구강마이크로바이옴, 조직재생, 정밀의학 기반 응용 연구로 확장하고 있지만 기초 연구가 임상과 단절되는 경향이 있고 기초교실의 미래인력 부족으로 미래 세대 육성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최근 임플란트 등 한국 치과 산업 제품의 수출이 하향세를 보이고 있는 현실은 우리에게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과연 임상 실력만으로 세계 치의학을 선도할 수 있을까? 임상 현장의 발전이 기초 연구의 든든한 지원 없이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위기를 극복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해외 선진국의 사례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과거 한국의 번영을 가져왔던 Fast following 전략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