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수많은 변수와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갑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예기치 못한 의료사고, 혹은 조직을 뒤흔드는 돌발적인 악재, 갑작스런 건강이상 등 비즈니스 현장과 개인의 삶에는 언제나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불시에 닥쳐옵니다. 거센 풍파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중심을 잡고 위기를 극복해야 할까요? 그 답을 찾기 위해 2천 년 전 로마의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습니다. 노예 출신으로 온갖 역경을 겪었던 그는 자신의 가르침을 집약한 책 “엥케이리디온(Enchiridion)”을 남겼습니다. 그리스어로 ‘손안에 쥐는 것’, 즉 위급할 때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작은 단검’이나 ‘휴대용 지침서’를 뜻하는 이 책은 사변적인 이론서가 아니라 거친 현실을 헤쳐 나가기 위한 가장 실천적인 생존의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에픽테토스는 “엥케이리디온”의 첫 문장에서 삶을 관통하는 가장 본질적인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세상에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과 통제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사물이나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해 우리가 품는 ‘판단’입니다.” 이미 터져버린 사건, 외부의 시장 환경, 타인의
주기적으로 산행을 하는 대학동창들과 모처럼 평일 산행을 하면서 한 친구의 차로 카풀을 해서 다섯 명이 함께 강원도까지 이동을 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남에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근황을 이야기하는데, 양가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친구들과 그렇지 않은 친구들의 이야기 내용이 매우 다르다. 연로하신 부모님의 경우는 치매 등으로 인지능력이 떨어져 혼자 생활하기 힘들거나 거동이 불편하여 스스로 자립적으로 생활하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모두 자택에서 자녀들의 도움을 받아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계신데, 이를 위해 매일 매일 들어가는 자녀들의 노력이 상당하다. 이런 일상적인 노력에 목욕을 한다거나(어르신들은 노인장기요양에서 제공하는 타인에 의한 목욕서비스를 다들 거부하신다) 병원을 모시고 가거나 하는 다른 스케줄이 더해지면 자녀에 며느리 사위까지 동원해야 해결되는 일이 허다하다. 자연스럽게 우리가 늙으면 이런 일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하는 주제로 넘어가고 모두들 우리의 자녀가 지금의 우리처럼 늙은 우리의 돌봄을 책임져주지도 않을 것이고 그러기를 바라지도 않는다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가 전세계 1위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러한 고
최근 ‘덤핑치과’를 둘러싼 문제가 한 치과에서 잇따라 발생한 사망 사고와 맞물려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각종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해당 치과를 둘러싼 논란은 더 이상 치과계 내부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국민적 관심사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아직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다. 특정 사건의 정확한 사실관계 및 사망과 진료 행위 사이의 법적·의학적 인과관계는 수사와 사법당국의 판단 등을 통해 객관적으로 밝혀져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치과계가 분명하게 뒤돌아봐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치과계는 이미 오래전부터 덤핑치과의 폐해를 제기하고 해결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 왔다. 지나치게 낮은 가격을 앞세운 환자 유인알선, 과잉 진료, 충분하지 못한 설명과 부실한 사후관리 등에 대한 우려가 치과계 내부에서 심각하게 제기돼 왔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노력과 대응이 충분했는지 치과계 스스로 냉정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자정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일정한 개선 노력이 이어지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유사한 문제가 반복되는, 이른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이제는 단발적인 대응을 넘어 보다 구조적인 해결책을 고
남북전쟁 전후 명중률과 관통력이 높은 라이플(Rifle: 강선 총)이 나오고 자동화기(Machine gun)까지 보급 되자, 보병들은 참호(Trench)를 판다. 참호 진을 돌파하려면 공격에 앞서 대포의 일제사격(Salvo)이 필요한데 적진의 초토화는 사실상 어렵고, 사격의 주목적은 땅에 묻은 전화선을 잘라 통신을 차단함으로써, 단위부대로서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데에 있었다. 일차대전 때 시작된 전투방식은 6·25 남침에도 답습되는데, 까맣게 피복한 전화선을 삐삐선이라고 불렀다. 잘려진 낡은 선, 유출된 새 선 할 것 없이 삐삐선이 지천으로 널렸는데, 손재주 뛰어난 우리 국민이 이것을 그냥 버릴 리 없다. 예쁘게 엮어 가볍고 튼튼한 바구니는, ‘가구’라는 이름으로 주부들 장바구니로 많이 팔렸다. 주말이면 장보러 나서는 어머님 뒤를 나는 가구를 들고 쫄래쫄래 따라다녔다. 10남매에 치과직원까지 식구가 스물에 가까우니까 손이 큰 손님으로 인기가 많아, 여기저기 들르다보면 두어 시간이 금방 간다. 마지막 목적지는 지금은 없어진 원동 초등학교 앞 ‘풍미당’ 빵집. 주 메뉴는 도우넛이지만 입 짧은 어머님은 두 번째 메뉴인 가께우동을 즐기셨다. 점점 무거워지는 가구를 들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이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학교에서의 교권 회복에 관한 내용인데, 드라마적인 요소로 가상의 정부 기관인 교권보호국에서 파견한 인물이 통제불능의 학생들을 소위 ‘참교육’하는 과정을 그렸다. 논란 속에서도 많은 시청자들이 이 내용에 통쾌해 하였고, 일부 현직 교사들의 격한 공감이 있었다. 그런데 전근대적 분위기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던 필자에게는 이런 분위기가 이상하기만 하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그려진 70년대 말 학교 풍경은 폭력이 난무하고, 학생들이 일방적인 피해자로 억울함을 겪는다. 드라마에서 교권 보호국의 역할을 일선 교사들이 폭력을 불사하며 감당하였고 이런 분위기는 8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이에 반해 학생인권 조례 등의 조치를 필두로 학생 인권을 강화하는 사회적인 변혁이 일어난 것이 2010년대 초반이다. 그리고 청탁금지법인 김영란법이 2016년에 발효되었다. 그 결과 요즘 학생들은 소풍과 운동회가 없는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다. 불과 10년만에 학생 및 학부모가 교사의 생사이탈을 결정하는 사회가 되었다. 최근까지 피해자였던 학생들을 이제는 타도해야 할 잠재적 가해자로 몰아간다. 이러한 변화의 분위기는 너무나도 생소하다. 물론
안녕하세요, 평론으로 처음 인사드립니다. 대한노년치의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는 이유로 집필위원 추천을 받은 게 아닐까 싶어, 노인치의학을 공부하고 학회 활동을 하면서 들었던 생각들을 기회되는대로 나눠보려 합니다. 올해부터 돌봄통합지원법이 시행됐다. 15조 보건의료 항목에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의 방문진료(1호)와 나란히 6호로 ‘방문구강관리’라는 여섯 글자가 들어 있다. 다른 항목들은 근거 법령과 제공 주체가 또박또박 적혀 있는데, 6호만 정의도 주체도 없이 덩그러니 있다. 궁금해서 입법 과정을 뒤져봤다. 2023년 12월, 보건복지위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된 관련 법률 5건에는 방문구강관리라는 말 자체가 없었다. 그런데 이듬해 2월 29일 본회의에, 정춘숙·전재수·신현영·최영희·최재형·최종윤 의원과 남인순 의원이 각각 발의한 7건을 통합 조정한 대안이 상정돼 그대로 통과됐다. 즉 이 여섯 글자는 마지막 통합·조정 단계에서 새롭게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누구의 제안이였을까, 어느 의원의 혜안이었을까, 아니면 부지런히 뛰었던 치과위생사협회의 성과였을까, 여기저기 물어봤지만 아직 시원한 답을 못 찾았다. 사실 비슷한 궁금증을 10년 전에도 가진 적이 있었다. 당시 치
인류의 기술사에서 거대 언어 모델(LLM)이 촉발한 초기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은 텍스트와 이미지 중심학습에 기반해 대화창에서 단순한 질의응답을 처리하는 수동적인 ‘도구’에 머물렀다. 그러나 2026년 현재 AI 산업은 이러한 패러다임을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시켰다. 지시를 받아 검색하거나 문장을 요약하던 수동적 비서는, 스스로 계획을 수립해 컴퓨터와 현실 세계를 직접 제어하는 ‘실행형 에이전트(Agentic AI)’로 변환된 것이다. 이제 알고리즘은 물리적 신체를 얻어 현실 산업 현장으로 내려왔으며, 단일 감각에 의존하던 지능은 오감을 동시에 인지하는 통합형 구조로 진화했다. 2026년 현재 인공지능 기술과 산업을 관통하는 5대 핵심 축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에이전틱 AI(Agentic AI)의 지배와 실행형 패러다임 정착으로, 최근 AI 생태계의 가장 극적 변화는 생성형 AI에서 ‘에이전틱 AI’ 혹은 ‘행동 지향형 AI(Action-oriented AI)’로 완전히 이행됐다. 과거 인공지능이 질문에 답변 제공의 지식의 보고였다면, 현재 에이전트는 사용자의 설정 목표(Goal) 달성을 위해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실행하는 디지털 노동력에
국내에서만 지내온 내게 유창한 영어 회화는 평생의 숙제였다. 몇 해 전, 인천 송도 뉴욕대 한국 캠퍼스에 근무하는 환자분께 영어 회화를 연습할 친구를 소개해 달라 부탁드렸고, 유타대학교에 근무하는 후배 제임스 박을 소개받아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제임스는 사실 영어 회화를 연습해 보겠다고 만난 친구였지만 한국말이 더 편한 교포였다. 몇 차례 만나다 보니 어느새 영어 공부라는 목적은 잊고 한국 사회의 안타까운 점에 대해 대화하며 공감하고 있었다. 어느 날 나는 예상치 못한 그의 푸념을 듣게 되었다. “한국 생활은 너무 각박해요. 서로를 돕고 더불어 사는 것이 기본인 유타 사람들과 달리 다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라 저는 솔직히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쉽게 무시할 수 없었다. 어릴 적부터 유타주에서 자란 제임스의 눈에는 한국 사회가 유타에서 보던 따뜻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각자도생의 사회로 비쳤던 것이다. 제임스는 이어서 숫자를 이야기했다. 유타주는 미국 내에서도 기부·봉사활동 참여율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주민의 절반이 넘는 50%대가 나눔에 참여한다고 한다. 반면 한국의 참여율은 8%대에 머물러
5월 연휴에 강원도 원주에 있는 ‘뮤지움 산(SAN: Space Art Nature)’을 다녀왔다. 산속에 감춰진 뮤지움은 노출 콘크리트의 미니멀한 건축물의 대가이며 빛과 물과 바람을 인간 삶에 가장 창의적으로 적용하는 건축가인 ‘안도 타다오’가 설계하였다. 4월 7일부터 12월 6일까지 전시하고 있는 작품은 숯의 작가로 알려진 이배의 개인전 ‘En attendant: 기다리며’이며 한국 작가 개인전은 개관 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1956년 경상북도 청도에서 태어난 이배 작가는 작품 활동을 위해 1989년 프랑스 파리로 이주했다. 당시 물감이 비싸 드로잉 재료를 찾던 중 슈퍼마켓에서 바비큐용 숯을 찾아 재료비를 아끼게 되었다. 이후 숯을 이용하여 작품 활동을 하면서 ‘숯’이라는 단일 매체에 파고들며 한국의 전통성을 국제 현대 미술에 접목시켜 2018년에는 프랑스 문화예술 훈장 기사장을, 2023년에는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받았다. 미술관 입구에서 맨 처음 만나는 작품은 8m로 쌓아 올린 7톤의 숯 기둥인 ‘불로부터’이다. 4년 전 큰 산불이 난 강원도 고성의 화재 현장을 보고 이 재앙으로부터의 회복과 치유의 염원을 담았다고 한다. 전시장 로비에는 ‘붓질’ 1
“요즘 젊은이들과 왜 이렇게 말이 안 통할까?” 이 생각을 안 해본 기성세대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필자는 최근 인공지능을 좀더 심도 있게 사용하게 되면서, 인공지능을 다루는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몇 가지 개념을 접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내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알아서 알아듣기를 바라는 사람인가.”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오케스트레이션, 하네스 엔지니어링 — AI 시스템을 설계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쓰는 이 용어들은, 사실 “서로 다른 존재가 협업하도록 만드는 기술”에 관한 것이다. 그 핵심은 상대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내는 신호를 다시 설계하는 데 있다. 세 가지 용어를 짧게 풀어보고, ‘업무’와 ‘관계’ 두 층위로 나누어 진료실 협업을 들여다보자. 세 가지 개념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AI에게 작업을 시킬 때 입력하는 지시문을 정교하게 다듬는 작업이다. 같은 요청이라도 목적과 형식, 제약조건을 구체적으로 적어주면 결과물의 질이 크게 달라진다. 즉, ‘무엇을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결과를 좌우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오케스트레이션 여러 AI(또는 여러 역할을 맡은 프로그램)가 하나의 일을 나누어 처리할 때,
최근 주식 시장의 흐름을 요약하는 가장 뜨거운 단어는 단연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입니다. 포모란 나만 소외되거나 뒤처지고 있다는 공포감과 극심한 불안을 느끼는 심리적 고립 장애를 뜻합니다. 신문 헤드라인마다 “나만 또 벼락거지 될라… 다시 번지는 주식시장 포모 증후군”, “불장에 번지는 대학가 포모… 학자금 대출까지 주식판으로” 같은 문구들이 연일 지면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의 시장은 광풍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어 보입니다. 새해 첫 거래일에 4,200대에서 시작한 주가지수가 불과 5개월 남짓 만에 거의 2배인 최고 8,400포인트를 돌파했으니 말입니다. 고등학생들까지 주식 투자에 뛰어든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더니, 얼마 전에는 팔순이 훌쩍 지나신 저의 사촌 누님에게서도 전화가 왔습니다. 젊은 시절 부동산 투자로 자산을 일구시고, 지금은 은행 예금 이자로 여유롭고 평온한 노후를 보내고 계신 분입니다. 평정심을 유지하며 평생을 살아오신 분조차 연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를 보며 심리적 동요를 느끼신 모양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지금이라도 삼성전자 주식을 사야 하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