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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時空) 개념의 지속적인 변화

배광식 칼럼

시공(時空, Spacetime) 개념의 지속적인 변화는 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근본적이고 드라마틱한 개념적 혁신 중 하나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Demo critus, BCE 460년경~370년경)의 시공간(時空間) 개념은 그의 원자론(Atomism)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후대 물리학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는 세계를 이루는 근본적인 요소가 ‘원자(atom)’와 ‘공허(void, 텅 빈 공간)’ 이 두 가지뿐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제시한 공간의 개념은, “세계는 오로지 ‘존재(Being)’만으로 가득차 있다”는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of Elea)의 주장에 반대하며, ‘없는 것(비존재)도 있는 것만큼이나 존재한다’고 선언했다. 여기서 ‘없는 것’이 바로 ‘텅 빈 공간, 즉 공허(void)이며, 공허를 인정함으로써 운동과 변화가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원자들이 이 빈 공간을 다니면서 서로 충돌하고 결합하고 해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게 공간(공허)은 원자의 운동을 담을 뿐, 물질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 무한한 빈 확장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BCE 384-322)는 “사물이 없다면 공간이 없고, 변화가 없다면 시간도 없다”고 하여 시간과 변화의 불가분의 관계에 대해 언급하였다.


데모크리토스의 ‘시간 개념’은 시간 자체에 대한 명확하고 독립적인 정의보다는 결정론적이고 기계론적인 우주관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원자들은 크기, 모양, 배열, 위치 등만 다를 뿐, 영원하고 파괴되지 않으며, 공허 속에서 영원히 끊임없이 움직인다고 보았다. 세상의 모든 변화는 원자들이 공허 속에서 충돌하고 결합하는 필연적이고 기계적인 상호작용의 결과이며, 이는 이미 오래전에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은 모든 만물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궁극의 최소 단위(원자)와 그것이 움직이는 ‘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현대 물리학의 기본 틀을 수천 년 전에 제시한 선구적인 이론이었다.


아이작 뉴턴(Sir Isaac Newton, 1643년~1727년)의 고전 물리학에서는 공간과 시간은 절대적이며 분리된 실체로 간주되었다. 즉 모든 사물이 그 안에서 움직이는 고정된, 움직이지 않는 배경으로서의 절대 공간(Absolute Space)과 우주 전체에서 균일하게 흐르며, 관찰자의 상태와는 무관한 시간인 절대 시간(Absolute Time)으로 보았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년~1955년)의 특수 상대성 이론(1905년)은 3차원 공간과 시간의 한 차원을 융합하여 단일한 4차원 연속체인 시공간(Spacetime)을 도입했다. 이는 모든 관성계에서 물리법칙은 동일하다는 ‘상대성 원리’와 진공에서의 빛의 속도(c)는 관찰자나 광원의 운동상태와 관계없이 일정하다는 ‘광속 불변의 원리’의 두 가지 가정에 기초한 것이다.


이 원리들로부터 시간과 공간은 관찰자의 운동상태에 따라 다르게 측정된다는, 시간팽창(Time Dilation, 빠르게 움직이는 관찰자에게는 시간이 느리게 흐름)과 길이수축(Length Contraction,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의 길이는 운동뱡향으로 짧아짐) 같은 결과를 도출하며, 뉴턴의 절대시간과 절대공간 개념을 폐기하였다.


헤르만 민코프스키(Hermann Minkowski, 1864년~1909년)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수학적으로 분석하면서, 특수 상대성 이론의 모든 수학적 공식과 물리적 현상들이 3차원 공간과 1차원 시간(ct)을 결합한 4차원의 기하학적 연속체로 완벽하게 설명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1908년의 유명한 강연 “공간과 시간”에서, “앞으로 공간 그 자체, 시간 그 자체는 완전히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고, 오직 이 둘의 결합만이 독립적인 실체를 보존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혁명적인 선언을 했고, 특수 상대성 이론에 기하학적 구조를 부여했다.


아인슈타인은 민코프스키의 작업을 불필요한 현학이나 과도한 수학적 장식이라고 일축했으나, 후에 중력까지 통합하는 일반 상대성 이론(1915년)을 개발하면서 휘어지고 구부러진 시공간을 다루기 위해 민코프스키가 제공한 기하학적 언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곧 민코프스키가 제공한 4차원 개념은 아인슈타인이 중력의 본질을 시공간의 곡률로 설명하는데 필수적인 수학적 틀을 제공했으며, 민코프스키의 공헌은 일반 상대성 이론의 성공을 위한 필수적인 전제가 되었고, 그의 수학적 통찰은 20세기 물리학의 근간을 이루었다.


일반 상대성 이론은 시공간의 개념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켜, 시공간은 고정된 배경이 아니라 물질과 에너지에 의해 휘어지고(Curved) 변형될 수 있는 동적인(Dynamic) 실체임을 밝혔다. 곧 질량을 가진 물체는 시공간을 휘게 만들고, 이때의 시공간의 곡률은 중력의 결과이고, 다른 물체는 이 휘어진 시공간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거시세계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일반 상대성 이론과 미시세계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양자 역학을 통합하려는 시도인 양자 중력은 시공간의 본질에 대한 더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일반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충돌점은, 1)시공간 성격의 측면에서, 일반 상대성 이론은 매끄럽고 연속적인 실체(배경)인데 반해 양자역학은 불확정적이고 양자화되어야 하고, 2)결과예측의 측면에서, 일반 상대성 이론은 결정론적이고 정확히 예측가능한 반면, 양자역학은 확률론적이고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다. 또 중력의 측면에서, 일반 상대성 이론은 시공간의 기하학적 곡률로 나타나고, 양자역학에서는 다른 세 힘처럼 중력자(graviton)로 양자화되어야 한다.


현재 물리학은 아인슈타인의 시공간 개념을 미시세계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거나, 혹은 양자역학의 원리에 맞게 시공간 자체를 양자화하여 재정의하는 과정에 있다.


시공간의 개념은 뉴턴의 절대적인 관점에서 아인슈타인의 상대적이고 역동적인 관점으로, 그리고 다시 현대 물리학의 양자적 본질에 대한 탐구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세상이 무엇으로 구성되었는가’의 입장에서 크게 정리하자면 데모크리토스에서 뉴턴에 이르기까지는 세상이 공간(Space), 시간(Time), 입자(Particles)로 구성되었고, 파라데이 및 맥스웰(Faraday Maxwell)에 의하면 공간, 시간, 장(Fields), 입자로 구성되었고,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1905)에 의하면 시공간(Spacetime), 장, 입자로, 일반 상대성 이론(1915)에 의하면 장(Fields), 입자(Particles)로 구성되어 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