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을 하자 피노키오의 코는 어느 쪽으로도 몸을 돌릴 수 없을 정도로 길어졌다. 이쪽으로 몸을 틀면 코가 침대나 창문에 부딪히고, 저쪽으로 몸을 돌리면 벽이나 문에 부딪혔다. 고개를 조금만 들어도 코가 요정의 눈을 찌를 것 같았다.’ - 동화 『피노키오』 중에서 십수 년 전, 저는 ‘피노키오’라는 제목의 TV 드라마를 인상 깊게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드라마를 소재로 글도 기고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드라마의 내용도 제가 쓴 글도 기억 속에서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는데, 얼마 전 우연히 OTT(Over-The-Top)채널을 돌리다가 옛날 그 드라마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잠깐만 맛만 볼까?’ 하는 마음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는데, 어느새 다시 드라마 속으로 깊이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그전에 이미 여러 번 본 드라마인데도 처음 보는 것처럼 새롭게 다가오는 장면들이 많았는데, 아마도 그때의 제가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그리고 미처 느끼지 못했던 작가의 세계를, 지금의 제가 다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같은 작품이라도 책이건, 영화든, 드라마건 세월이 흐르면 다르게 해석되는 것 같습니다. 젊은 날에는 재미로만 보이던 장면이 어느 순간 인
『죽음의 수용소에서』(Man’s Search for Meaning)는 오스트리아 빈의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 1905-1997)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어 1945년 4월 석방될 때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아는 사람은 거의 어떠한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라는 니체의 말을 몸소 증명해 보였다. 1938년 3월 나치 체제가 오스트리아를 점령할 당시, 비엔나 인구의 8%만이 유대인이었으나 비엔나의 개원의와 전문직 의사 가운데 유대인의 비율이 2/3 이상을 차지하였다. 의사는 유대인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전문직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치 정부는 오스트리아 점령 3일 만에 유대인이 다수를 차지하였던 비엔나 의대 교수 197명 중 153명을 전격적으로 해고하였다. 유대인 및 유대인과 결혼한 사람들은 공무원이 될 수 없다는 규정을 들어 학교에서 쫓아낸 바람에, 유대인 의사들은 국외로 망명하거나 강제수용소로 이송되거나, 자살하는 선택지밖에 남지 않았다. 치의학 분야도 예외가 아니어서 갖은 고생 끝에 Gottlieb(구강병리)는 Michigan 대학, Sicher(구강해부)는 Loyo
커뮤니티케어에서의 치과는 단순히 구강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기존의 개념을 넘어, 구강건강과 전신건강 및 사회적 기능을 통합 관리하는 새로운 의료 패러다임이어야 한다. 고령화의 가속화, 만성질환의 증가, 흡인성 폐렴과 영양저하를 포함한 노인성 질환 부담의 증가는 치과 영역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재정립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치과도 독립된 전문 진료 분야를 넘어, 다학제 협력 체계 안에서 환자의 기능과 삶의 질을 관리하는 핵심 구성체로 기능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커뮤니티 구강케어는 치과서비스 범위의 확장을 넘어 치과 진료 패러다임의 구조적 전환을 의미한다. 본고에서는 최근 커뮤니티케어의 도입과 관련하여 치과 진료 개념의 변화, 치과 중재 방향의 재설정, 그리고 다학제 협력 체계 내에서의 치과 역할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커뮤니티케어 도입에 따른 치과 진료 개념의 재정의 전통적인 치과 진료는 치아우식증, 치주질환, 결손 치아와 같은 국소 병변 중심의 접근에 기반해 왔다. 그러나 커뮤니티케어 환경에서는 대상자의 생물학적 상태뿐 아니라 사회적 결정요인, 생활환경, 의료 접근성, 그리고 구강-전신 연관성을 함께 고려하는 통합적 접근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경제
연세 지긋하신 할아버지 환자로부터 필자의 수필집 ‘꿈을 꾸는 수달이’를 읽은 감상문을 받았다. 날림 글씨라 해독하기 어려웠지만 몇 단어를 제외하고 앞뒤 맥락을 유추해서 대부분 이해할 수 있었다. 필자의 글을 쓴 공간적 배경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농촌시골이었던 군위가 대구 신공항 건설계획으로 인해 대구광역시로 편입된 곳이라 팔십 평생 고향을 지킨 할아버지와 공감대가 형성된 것 같았다. 지금 젊은 세대와 끼니 걱정하며 배고픔을 겪었던 우리 같은 낀 세대(대략 60~70세 사이)와 차이가 있겠지만 할아버지의 생각과 흡사하다며 너무 즐거워하셨다. 배움의 기회는 적었지만 두 아이를 키우며 평생 농사지으며 열심히 살아왔다며 자부심을 갖고 계셨다. 네 페이지에 걸쳐 빼곡히 삐뚤삐뚤 써 내려간 글에서 할아버지의 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읽기가 혼란스럽고 집중하기 힘들어 다시 문서로 차근차근 옮겨 써보니 이해가 더 쉬웠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힘든 것보다 묘한 호기심과 즐거움이 함께 느껴졌다. 감상문을 읽으며 오히려 할아버지께 감사하는 마음과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스스로를 다독이고 있다. 할아버지 말씀을 빌리자면, 필자의 책을 읽으면 어떤 장편소설이나 허
인공지능은 이제 우리의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사람들은 AI에게 길을 묻고, 정보를 검색하고, 계획을 세우고, 때로는 마음속 이야기도 털어놓습니다. 특히 외로운 노인이나 사회적 관계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AI는 감정적 소모나 부담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ChatGPT나 Gemini 같은 생성형 AI 챗봇을 정보 검색뿐 아니라 정서적 지지와 조언의 도구로도 사용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AI 안부전화 서비스를 통해 고립된 노인들의 생활 상태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기술은 이미 상담, 교육, 돌봄, 의료, 행정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람의 삶을 보조하고 있습니다. 이 흐름은 아마 되돌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AI가 아무리 빠르게 답을 주고, 아무리 다정한 문장을 만들어도 아직 닿지 못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헤아림’입니다. 헤아림은 단순히 정보를 이해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상대가 왜 그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 그 말 뒤에 어떤 시간과 상처와 기대가 쌓여 있는지 짐작하는 일입니다. 사람은 질문을 받을 때 늘 정답만 기대하지 않죠. 때로는 정확한 답보다 “당신이 왜 그렇게 느끼는지
보건복지부 조직도를 살펴본 적이 있는가? 대한민국 보건의료 행정의 총본산인 이 부처는 현재 4실, 5국, 17관, 84과로 구성되어 있다. 다른 부처와 비교해도 상당한 규모이고 예산으로 보면 최상위를 다투는 부처이다. 그런데 이 조직 안에서 치과가 차지하는 자리를 찾아보면, 할 말을 잃게 된다. 국(局)도 없다. 관(官)도 없다. 건강정책국 산하에 구강정책과, 단 하나의 과(課)가 전부이다. 치과의사 면허 관리부터 치과병의원의 관리, 구강보건 증진, 치과의료 정책, 건강보험 수가, 치과위생사, 치과기공사 등 관련 직역 관리까지, 수만 명의 치과의사와 수십만 명의 관련 인력, 그리고 5천만 국민의 구강건강이 달린 모든 행정이 단 하나의 ‘과’의 관할 하에 관리되고 있는 것이다. 골목마다 치과가 있고, 국민이 한 해 실제로 지출하는 치과의료비는 비급여를 포함해 13조원에 달하며, 이는 전체 경상의료비의 약 6~7%에 해당한다. 치과의료기기는 전체 의료기기 생산의 약 30%, 수출의 약 18%를 차지하며, 치과용 임플란트는 2년 연속 국내 의료기기 수출 1위 품목이다. 그럼에도 이를 다루는 행정 단위는 복지부내 가장 작은 조직 단위인 과(課) 단 하나에 불과한 것
얼마 전 지인 의사 선생님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아들이 사랑니 때문에 통증이 있어 치과에 갔는데, 사랑니가 그 앞의 어금니에 영향을 주어 상태가 좋지 않으니 그 어금니를 발치하고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아들은 겁이 나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고, 그 의사 선생님은 요즘 치과계에 덤핑 경쟁 이야기도 들리고 과잉진료에 대한 말도 심심치 않게 들리니 선뜻 그 진단과 치료계획을 믿기가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내게 연락을 해와 의견을 물어왔다. 아들이 거주하는 곳이 부천이라 분당까지 오라고 하기에는 먼 거리라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진료해 오신 믿을 만한 선배님의 치과를 소개해 드렸다. 며칠 뒤 아버지가 결과를 알려주러 연락을 하셨다. 아들이 소개받은 치과에서 진료를 받고 왔는데, 앞의 어금니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맞지만 지금 당장 발치를 할 정도는 아니며 우선 신경치료를 해서 지내볼 수 있겠다고 설명을 들었다는 것이다. 치료 후 경과를 보다가 나중에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그때 발치를 고려해도 늦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 선배님께 전화를 드려 이번 상황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연스럽게 화
보철이나 보존치료 같은 치과치료나 구강악안면외과 수술이나 다 같이 민첩하고 정교한 손기술을 필요로 한다. 훌륭한 외과의사가 되기 위하여 필요한 요소도 비슷하며, 다양한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손재주라고 여겨지고 있다. Luscan 등(2023)은 의사, 환자, 수술실 간호사 등 총 1,620명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훌륭한 외과의사에게 필요한 중요한 자질을 ① 손재주(dexterity, 54%), ② 세심함(meticulousness, 18%), ③ 공감능력(empathy, 18%) 이라고 응답하였다. 이에 반하여 무능력한 외과의사라고 할 수 있는 경우의 대표적 특징을 ① 거만함(arrogance, 39%), ② 변덕스러움 (temperamental, 31%), ③ 서투름(clumsiness, 17%)으로 꼽았다. 즉, 훌륭한 외과의사와 무능력한 외과의사는 주로 수술의 기술적인 숙련도에 의하여 구분된다는 것이다. 수술의 숙련도나 손재주가 좋으려면 타고나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연습으로 좋아질 수 있을까? 여러 연구들에 의하면, 둘 다가 맞을 수 있지만 아직도 완벽하게 증명되기 어렵다. 학생들에게 맨 처음 관절경이나 복강경 실습을 시키면 일부 학생들은 많은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구강노쇠(oral frailty)는 단순한 구강 불편의 문제를 넘어 전신 건강, 삶의 질, 그리고 예후까지 좌우하는 중요한 임상 지표로 주목받고 있다. 구강노쇠는 식사, 의사소통, 사회적 활동, 영양상태와 밀접하게 연결되며, 결국 근감소증, 노쇠, 기능저하, 입원, 폐렴, 사망위험 증가로 이어지는 연속선상에 위치한다. 이는 치아 수 감소에 국한된 개념이 아니라, 저작, 연하, 발음, 구강위생, 구강건조 등을 포함하는 다차원적·다학제적 기능 저하 상태이며, 일본의 구강기능저하(oral hypofunction) 개념과 궤를 같이한다. 이러한 구강노쇠는 “불가피한 노화 현상”이 아니라 진료실에서 신속한 선별과 비교적 단순한 중재로 개선 가능하다. 그러므로 임상에서는 조기 인지, 원인 기반 유형화 및 즉각적 개입이 중요하다. 이에 구강노쇠를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그에 따라 진료실에서 즉시 적용 가능한 중재 전략을 통합적으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저작기능저하형: 씹을 수 있는 구조 우선 회복 저작기능저하형은 치아 상실, 의치 부적합, 교합력 저하, 잔존 치근, 동요치, 통증, 점막 병소 등 구조적 문제에서 시작된다. 이 유형의 본질은
평생 따라 다니는 유일한 친구가 그림자다. 누구나 갖고 있지만 그림자가 있어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런 그림자가 내겐 두 개다. 사실 하나이지만 복시로 인해 두 개로 보인다. 필자는 젊었을 때부터 안질환의 하나인 부동시(양안 심한 시력차)로 조금 불편하게 살아왔지만 그런대로 적응하면서 잘 지내왔다. 주로 왼쪽 주안이 역할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불편을 느끼지 않는데 야간에 빛이 퍼져 다소 불편을 느낄 정도이고 안경을 착용하기 때문에 그런대로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예전 대학시절 현역신검 받으면 양안시력 차이 1.0 이상인 부동시는 군 면제란 말을 들었다. 군 면제 받으려고 안간 노력을 하는 사람을 보며 많은 생각의 차이를 느꼈다. 국가를 위해 군복무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특히 의사나 치과의사의 경우 군의관이나 공중보건의로 병역특례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군기피하는 사례를 보며 측은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당시 내 주위에서 군 면제 받으려고 암암리 빽을 쓰거나 허위진단서로 기피하는 사례가 주위에 있었다. 그리고 신검 당시 과체중으로 면제 받기 위해 검사 당일 계속 물과 콜라를 먹으면서 체중을 늘리려는 모습이 안쓰러움을 떠나 불쌍해보였다. 군대 가고 싶은
2026년 3월 현재, 중동에서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군사행동과 이란의 보복이 맞물리며 전쟁이 확전되는 양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충돌은 이미 수 주째 계속되고 있고,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과 주변 인프라를 둘러싼 압박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미국과 이스라엘도 추가 타격 가능성을 공공연히 언급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사태는 전쟁이 더 이상 한 지역의 비극에 머물지 않고, 곧바로 세계 경제와 일상생활을 흔드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전쟁이 일어나는 근본 원인은 단 하나가 아닙니다. 흔히 사람들은 “누가 더 나쁜가”만을 묻지만, 실제 전쟁은 안보 불안, 역사적 기억, 영토와 해상 통로, 자원, 경제 제재, 정치 지도자의 계산이 겹치면서 발생합니다. 특히 국가는 자신이 공격받기 전에 먼저 움직여야 한다고 믿기 쉬운데, 이런 사고방식은 상대에게도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이죠. 그 결과 한쪽의 방어는 다른 쪽의 위협으로 보이고, 결국 상호 불신이 전쟁으로 번지게 됩니다. 이번 중동 위기에서도 군사 충돌 그 자체뿐 아니라 호르무즈 해협, 에너지 수송, 역내 동맹 구도, 핵시설과 기반시설 문제가 모두 얽혀 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