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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삶>
일등정신이란 고정관념
<이정우 목사·기쁨의 교회 담임목사>

“엄마 나 최우수상 탔어요.” 학교에서 돌아오는 딸애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내와 나는 뛰어나가 자랑스런 딸아이를 환대(?)했다. 딸애는 책가방에서 큼지막한 상장을 꺼내 보였다. ‘교내 글짓기 대회 최우수상’이라는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여간 기쁘지가 않았다. 그 정도 가지고 뭐 그렇게 호들갑이냐고 핀잔할 지 모르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 아이는 태어나면서 병치레가 많았다. 수술도 많이 받았고 이런저런 치료를 계속해왔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몸이 약하다. 아내와 나는 이 아이를 보면서 늘 맘 아파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아이의 장래를 생각하며 공부를 잘 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학능력이 그렇게 뛰어난 것 같지는 않았다. 특히 수학은 영 질색이란다. 다행히 우리는 이 아이에게서 좋은 재능을 발견하였다. 문학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를 유독 좋아해서 책 읽는 것을 제일 즐거워했다. 입학 전에 시를 몇 편 썼는데 메타포를 사용하는 게 제법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그래 이것저것 하는 것 보다 한가지를 잘하면 돼. 한가지만 집중해서 일등하도록 하면 되지 뭐….’ 그 뒤로 가능한 한 책을 사줄려고 힘써왔다. 형편이 닿지 않는 요즘엔 아내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읽힌다. 이쯤 하면 기뻐하는 이유를 이해할 것이다. 그런데 난 요즘 이 일등주의가 목의 가시처럼 거북스럽다. 얼마 전 한 동기 목사로부터 안부전화가 왔다. 교회개척해서 1년이 되었는데 어떠냐고. 좌충우돌하며 고생하고 있다고 했더니 다짜고짜 이렇게 충고했다. “이 목사, 이 목사가 제일 잘하는 것을 해. 요즘엔 교회도 특색이 있어야 해. 이것저것 하려고 하지 말고 그 지역에서 일등 할 수 있는 것을 해….” 알았노라고 대답했으나 영 개운치가 않았다. 과연 한 인간이나 집단이 이런 식으로 존재해야 된다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얼마 전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읽었다. “일등 혹은 이등이 되지 못하는 사업은 과감하게 버려라”는 말로 세계 경영인의 표상이 되었던 잭 웰치 제너럴일렉트릭(GE)회장이 그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자신의 ‘일등주의’를 스스로 비판했단다. 그는 85년 주주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의 목표는 세계에서 가장 경쟁적인 기업이 되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우리는 일등이나 이등을 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회장은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하는 사업에 자본을 낭비할 수 없다”면서 “그런 사업을 바로잡거나 매각하지 못한다면 결국 퇴출될 것”이라며 무분별한 사업확장이 주류였던 당시 세계기업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이러한 그의 일등정신은 GE를 세계 초일류기업을 만드는데 중요한 이념이 되었으며 한국의 삼성그룹을 비롯한 세계의 많은 기업들이 GE의 일등정신을 벤치마킹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올해 말 은퇴를 앞두고 주주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서 그는 “우리는 수년간 일등정신을 잣대로 경영을 해 왔고 그로 인하여 성공을 즐겨왔지만, 일등이라는 잣대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의 사업 영역을 좁히는 교활한 관료주의를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다. 일등이 아니면 안된다는 고정관념이 스스로 시장을 좁히는 자기 합리화를 낳고 결국 가망성 있는 사업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병폐를 불러왔다는 게 잭 웰치 회장의 자기 반성이다. 우리의 삶은 곧잘 시장원리에 의해 지배당한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적으로, 인생을 시장원리의 토대 위에서 계획하고 꾸려나간다. 자기자신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자식들까지도 그 싸움의 전사로 훈련받아 일등이나 이등이 되기를 강요한다. 그 고정관념이 인생을 얼마나 협소하게 만드는 지도 모른 체, 가망성 있는 다른 행복의 가치들에 손을 대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병폐인 줄도 모른 체…. 어쩌면 그래서 사람들은 가장 귀한 영혼의 문제조차도 심각하게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지내다가 황혼을 맞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