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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삶>
마약에 빠진 예진아씨
<이정우 목사·기쁨의 교회 담임목사>

드라마 ‘허준’에서 ‘예진아씨’ 역을 맡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탤런트 황수정 씨가 히로뽕을 투여한 혐의로 구속되었다는 소식에 세간이 시끄럽다. 연예인 마약사건이 어디 이번이 처음이던가. 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여느 때의 반응과 상당히 다른 것 같다. 이유는 간단해 보인다. 그가 아주 특별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허준’의 ‘예진아씨’를 통해서 사람들은 그녀가 보여준 단아하고 청순한 고전미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획일적이고 판에 박힌 인조미인이 브라운관을 점령해 가는 이 시대에, 그녀는 사람들에게 우리 여인의 단아하고 청순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예진아씨’가 마약을 하면서 여러 남자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져왔다니 그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이다. 대단히 아쉬워하는 정도를 넘어서 어떤 사람들은 심한 분노나 어떤 배신감을 나타내기까지 한다. “세상에, 깨끗한 줄 알았더니, 청순한 줄만 알았더니, 착한 줄만 알았더니…….” 한결같이 이런 식의 반응들이다. 한 사람의 말이 인상깊다. “우리 할머니에게는 아무래도 이 소식을 알려드리지 말아야 하겠다.” 그렇다. 사람들은 그녀가 끝까지 ‘예진아씨’로서 남아 주기를 원했던가 보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의 캐릭터만을 가진 ‘예진아씨’가 아니었다. 그도 두 가지 내면을 소유한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소설 하나가 생각이 난다. 한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은 낮에는 기쁨이 있었으나, 밤에는 공포와 무서움이 지배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낮에는 너무나도 행복했으나, 밤만 되면 공포에 사로잡혀 살아야만 했다. 낮에는 ‘사랑의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이고, 밤에는 흉악무도한 복면강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랑의 아버지’는 낮이 되면 어김없이 사람들을 방문하여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을 싸매 주며, 희생적인 사랑과 극진한 봉사로 돌봐주었다. 그러나 밤이 되면 복면강도가 나타나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죽이고 절도하고 강간을 일삼는 등 무서운 범죄로 사람들을 떨게 했다. 평화와 공포의 낮과 밤이 그렇게 반복되던 어느 날, 주민들은 회의를 열고 복면강도를 잡기로 결의한 후, 암암리에 무장을 하고 곳곳에 숨어서 마을을 지키기에 이르렀다. 드디어 마을회관에서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면서 “모두 모여라! 강도를 잡았다!”는 큰 소리가 온 동리를 진동했다. 온 동네 주민들이 분개하며 뛰어가 잡힌 강도를 보니 이것이 웬일인가. 그 강도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사랑의 아버지’였다. 영국의 소설가 스티븐슨(R. L. Stevenson)의 유명한 <지킬박사와 하이드> 이야기다. 여기서 스티븐슨은 인간의 내면을 폭로하고 있다. 모든 인간의 내면에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공존하고 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 말이다. 인간에게는 양면성(兩面性)이 있다. ‘한 가지 사물에 서로 맞서는 두 가지의 성질’, 즉 인간의 내면에 서로 조화될 수 없는 두 가지 실상이 실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표리부동’(表裏不同) 즉, 표면적인 것과 이면적인 것이 같지 않을 때마다 새삼스럽게 놀란다. 어떤 사람은 ‘인면수심’(人面獸心)을 들먹이면서, 얼굴의 모습은 사람인데 그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짐승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어렸을 때 성선설(性善說)과 성악설(性惡說)을 놓고 혈전을 벌였던 생각이 난다. 무모한 양자택일을 하려고 했던 어리석던 시절의 해묵은 논쟁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금도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늘 구분하려고 한다. 실상은 두 존재가 우리 안에 함께 있는 데 말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는데도 말이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