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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주의 지구촌 여행 돌아온 파라오 람세스1세

미이라로 만든 육신 내세에 영생 얻는다


지난 주 해외토픽 뉴스에 따르면 람세스(Ramses I)1세(재위 BC 1293-1291)의 미이라가 고향을 떠난지 140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영생의 세계를 항해하기 위해 미이라로 보존된 람세스1세가, 뜻하지 않게 약탈돼 1860년 이집트를 떠나서 미국과 캐나다의 박물관 생활을 전전하면서 타의에 의해 장기간 외유를 하고 돌아오는 셈이다.


 화제의 미이라는 고대이집트의 신왕국 제19왕조의 시조인 람세스1세의 것이니 지금부터 약 33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워낙 오래된 일이기도 하고 역사와 신화, 소설 사이를 오가며 대중에게 소개된 탓에 정확할지 모르겠지만 당시의 상황을 몇 년 전 번역소설로 인기를 끌었던 크리스티앙자크의 소설 ‘람세스’에 근거를 두어 알려진 대로만 말한다면 영화 ‘십계’에서 율브린너가 맡은 역할이 람세스2세이니 그의 할아버지가 되는 셈이고 당시 신전건축공사가 벌어진 곳은 룩소가 된다.


 이제 고대 이집트의 문명의 유물인 람세스1세의 미이라는 21세기 첨단문명의 상징인 제트비행기를 타고 원하지 않았던 내세에서의 외유를 끝내고 곧 카이로로 돌아가 카이로박물관에서 그의 후손들한테 한 달간 귀국인사를 마친 후 그의 고향인 룩소에 다시 정착하게 된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문명의 역사유적은 크게 무덤과 신전으로 구분된다. 이집트 국토를 남북으로 가르는 나일강을 중심으로 동쪽은 산 자들의 도시로 많은 신전들이 세워졌으며 나일강 서쪽은 죽은 자의 도시로 무덤이나 장례와 제사를 지내기 위한 장제전 등이 세워졌다. 고대 이집트왕국의 불멸의 통치자 파라오들은 자신들의 재임 중의 중요한 사업의 하나가 스스로의 무덤을 준비하고 또 하나의 세계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스스로 파라오를 살아 있는 신으로서 영생을 생각했기에 죽음이란 육신의 것으로만 한정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신의 육신을 미이라로 만든 것은 내세에도 영생을 얻어 영원한 항해를 준비하려는 뜻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어느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후의 세계를 그려보는 것도 그렇고 감히 평민들은 가까이 할 수도 없었고, 파라오와 사제들만 드나들 수 있는 신전에서 이들의 역사는 미스테리를 양산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들의 중에서 현재의 유명세는 그들 생전의 업적과는 큰 관계가 없는 것 같다. 이집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 나라의 역사이니 이집트의 역사에서 가장 공을 세운 파라오들을 존경할 법도 하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로서는 그 보다는 미이라와 관련된 미스테리에 더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고대이집트 신왕국 제18왕조의 비운의 소년 파라오 투탕카멘을 들 수 있다.


 투탕카멘이 태어날 때는 아메노피스4세(Amenophis)가 다신교인 기존의 종교체제를 뒤흔드는 큰 변혁을 시도해 혼란에 빠진 시기였다. 그는 당시까지 섬겨온 여러 이집트의 신들을 다 버리고 오직 태양의 신 아텐(Aten)만 섬기고 자신의 이름도 아크나텐(Akhnaten)으로 바꿨다. 그러나 당대의 실력자였던 제사장들과의 대립에서 결국은 아크나텐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9살의 투탕카멘이 대를 잇게 됐다.


 투탕카멘의 출생 자체도 미스테리 투성이다. 투탕카멘의 선왕인 아크나텐의 두 번째 부인의 소생이란 얘기도 있지만 그는 딸만 두었다는 설도 있어 아크나텐의 조카라는 설과 아크나텐의 아버지인 아메노피스3세의 아들이란 얘기도 있다.


 이런 혼란은 당시 왕족들 사이에서 근친결혼이 성행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늘날의 혈연관계와 당시의 혈연관계를 설명하는 어휘가 일대 일로 대응이 되지 않기에 생긴 혼란이 아닐까 싶다. 투탕카멘도 오늘날의 족보로 치자면 자신의 이복동생뻘 되는 안케세나문(Ankhesenamun)공주와 결혼을 했다.


 나이 어린 투탕카멘이 파라오에 오를 때의 이름은 유일신 아텐 신의 이름을 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