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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역사 향기 가득 ‘눈세상’ 오대산

 

청정한 숲 향기 찌든 객 씻어 내려
상원사 가는 길 산사의 정적 ‘만끽’



오대산 가는 길에 눈(雪)이 雪~雪~ 내린다. 눈 내리는 날엔 고향이 생각난다. 따뜻한 아랫목에 목화솜 두터운 이불에 눌려 잠자고 있을때, 아버지의 호통에 화들짝 잠에서 깨어나면 밤새 내린 눈으로 넓은마당과 지붕과 나무들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얼른 싸리비 챙겨들고 외양간, 측간, 샘, 이웃집으로 동생과 나눠 순서대로 쓸었고 강아지는 앞뒤로 뛰며 덩달아 좋아했다. 뒤돌아서면 잠깐 사이에 내린 눈이 우리의 흔적을 일찌감치 지운 상태. 이 날 만큼은 쫌 일찍 일어나도 화나지 않았다.


영동고속도로는 겨우내 눈세상이다. 진부IC에서 빠져 오대산 월정사로 들어간다. 매표소를 지나면 이내 월정사 일주문이 오른쪽에 있다. 일주문은 절로 가는 초입에 있는 문이다. 그런데 월정사 주차장이 일주문을 비껴 좀 더 올라가 있는 탓에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을 걸어서 들어가면 맑고 청정한 숲의 향기가 속진에 찌든 객(客)을 깨끗이 씻어 내린다.


월정사로 들어가는 길. 감동이 가득한 길이다. 창검을 높이 치켜든 기병처럼 시원하게 솟은 전나무들 사이로 발걸음이 절로절로 옮겨진다. 가지마다 눈이 쌓인다. 어린시절 만화영화에서 자주 보았던 크리스마스트리가 연상된다. 오대산에는 소나무보다 전나무가 많다. 고려말의 선승이었던 나옹이 오대산 북대암에서 수행을 하며 비지국을 끓여 매일 월정사의 부처님께 공양하고 있었다. 마침 눈이 많이 와서 조심조심 내려오고 있는데 소나무 위에 쌓여 있는 눈이 떨어져 국그릇을 쏟고 말았다. 그 바람에 소나무는 괘씸죄에 걸려 오대산에서 추방당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전나무가 많다고 한다. 실제로 상원사 마당에서 서서 주변 산을 둘러보면 실감이 난다. 전나무숲길이 끝나는 곳에 사천왕문이 있다.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비로소 월정사 경내다.


오대산은 예부터 문수보살 성지로 알려져 있다. 선덕여왕 3년 당나라로 구법(求法)을 떠난 자장이 중국의 청량산(오대산)에서 노승으로 화현한 문수보살을 만나 세존이 입던 금점가사 한 벌과 발우 하나, 불두골 한 조각을 받았다. 그리고 우리나라 동북방 명주땅에 오대산이 있어 그곳에 1만 문수가 상주하고 있으니 가서 만나라는 권유를 받는다. 자장이 귀국해 가져온 진신사리를 여러 곳에 봉안하고 오대산에 이르러 문수의 진신을 보고자 사흘을 기다렸으나 보지 못했다고 전한다. 자장이 이곳에 머물렀던 때는 사흘에 불과하므로 이때 절이 창건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후 신라의 두 왕자 보천과 효명이 이곳에 머물며 수행을 했다. 효명은 성덕왕(702~737)이 됐으니 그가 머물던 오대산일대에 많은 지원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어 삼국유사 ‘대산 월정사 오류성중’에 의하면 신효 거사가 자장이 사흘간 묵었던 곳에 거하며 문수를 친견했다 하고, 이어 강릉 굴산사의 두타 스님은 신효가 머물던 곳에 다시 암자를 세우고 살았다하며 수다사의 유연이 점차 사세를 확장해 대찰을 이뤘다고 전한다.


월정사 마당에는 팔각구층석탑(국보 제48호)이 고색창연한 기품으로 솟아 있다. 고려시대의 작품이다. 처마마다 풍경을 달아 바람에 화답하는 소리가 아름답다. 월정사의 전각들은 6·25 전쟁에 모두 불타버렸다. 근년에야 중창불사를 어느 정도 마무리했다. 그러나 지금도 기계톱 소리는 고요한 산사의 정적을 깨고 있어 산중사찰을 찾는 이에게는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어느 때나 월정사에서 기계소리 멈추고 산새소리, 독경소리로 가득 채울런가?


용금루 아래로 내려가 상원사 가는 길로 걷는다. 눈은 발목까지 빠진다. 상원사로 가는 길은 계곡을 따라 이어진 평탄한 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찰에서 부도전(스님들의 묘탑)을 좋아한다. 이끼 낀 고승들의 묘탑을 보고 있으면 “삶과 죽음이 여기에 있는데, 여기엔 삶과 죽음이 없다”(生死於是 是無生死)는 부안 내소사 해안 스님의 부도에서 본 글귀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