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나라에 도착하면 그 나라의 물가가 궁금하게 된다. 미국이나 일본·유럽 등의 경우는 우리나라의 원화와 직접 환율을 계산해 환전하면 되지만 우리나라와 경제교류가 적은 나라를 여행하려면 한국에서 미국 달러나 유로화로 환전한 후에 현지에서 그 나라의 화폐로 환전하게 되므로 환율계산도 복잡해진다. 

터어키를 여행할 때의 일이다. 처음 터어키를 방문한 1990년대 초만 해도 터키 리라의 환율은 미화 1달러에 무려 60만 터키리라에 달했지만 당시에는 인플레가 심해 2000년에 방문할 때에는 무려 160만 리라까지 폭등한 적이 있었다.

공항에서 단돈 200달러만 환전해도 무려 3억2000만 리라! 주머니가 두둑해지고 마음도 뿌듯해진다. 마치 강남의 아파트 한 채라도 하나 거머쥔 기분이 들게 된다. 하지만 공항에서 시내까지 택시비로 2000만 리라를 지불하고 게스트하우스 1박에 3000만 리라, 터키탕 사우나에 300만 리라, 길거리에서 코카콜라 한 병에 100만 리라를 지불하면 그야말로 “돈을 물쓰듯 한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게 된다.

터어키의 리라가 처음 채택된 1940년대만 해도 환율이 미화 1달러에 1.5 리라였다고 하니 불과 반세기만에 환율이 100만 배 뛰었다는 계산이다.
터어키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100만 리라(700원 정도)만 해도 동그라미 숫자가 무려 6개나 되니 터어키에서 돈을 지불할 때마다 동그라미 숫자를 세는 것도 이방인들한테는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다.

아직도 터어키의 박물관이나 유적지의 입장권은 급격한 화폐가치의 하락에 따른 물가상승을 쫓아가지 못해 물가 상승 전에 발행햇던 소액의 입장권을 몇 장씩 묶어 판매하고 있다.
터어키는 이러한 통화제도가 유럽연합(EU) 가입에 장애가 된다고 느낀 듯 동그라미 여섯 개를 떼어내는 화폐개혁안을 내년 1월 1일자로 단행한다고 한다. 

 인도의 화폐에는 재미있는 문구가 적혀있다. “GUARANTEED BY THE CENTRAL GOVERNMENT" 일부러 이런 글이 실려 있는 것이 이상하지만 인도가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할 만 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 글의 아래에는 인도를 처음 여행하는 사람들한테는 인도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신뢰를 의심하게 만들 수 있는 또 하나의 문구가 적혀 있다.
“I PROMISE TO PAY THE BEARER THE SUM OF TEN RUPEES."

 얼마나 신용이 없는 나라면 상품권도 아니고 화폐에 이런 글이 실릴까 하는 쓴웃음이 나올법하다.
그러나 아무리 지는 태양이라도 대영제국의 역사를 자랑하는 신사의 나라 영국의 10파운드 화폐에도 비슷한 글귀가 적혀 있다.

“I PROMISE TO PAY THE BEARER ON DEMAND THE SUM OF 10 POUNDS."
인도의 루피에 적혀진 글귀보다 이것을 먼저 보았다면 영국이 얼마나 신사적이고 신용이 있는 나라이면 돈에도 이런 글을 다 적을까하는 생각을 해Y을 테다.

아마 인도는 영국의 지배를 오래 받아왔고 그 영향이 도처에 남아 있기에 영국화폐의 관례대로 이런 문구가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아마 다른 영연방국가의 화폐에서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두 가지 사례를 보고 우리의 선입관이 지구촌을 이해하는데 얼마나 장애가 되는지 알 수 있다.
“ 얼마나 신용이 없으면…(인도 루피) ”
“ 얼마나 신용이 좋으면…(영국 파운드) ”

일반적으로 통화의 단위는 1, 5, 10, 50 과 같이 열 배 단위로 늘어나며 중간에 5 단위로 구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