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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삶-한마음선원 주지 혜원 스님(조계종 중앙종회의원)자식농사

 

 

세상에 가장 어려운 농사가 ‘자식농사’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자식 키우는 것이 힘들다는 뜻이리라. 그런데도 사람들을 보면 너무 쉽게 자식을 낳고, 또 아무 생각 없이 자식을 키우는 것 같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식처럼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 없단다.  


선원에 오는 신도들 중에도 자식 문제로 고민하는 경우가 꽤 많다. 공부를 게을리 한다든지, 나쁜 친구와 어울린다든지, 외모에만 신경을 쓴다든지 등등. 들어보면 세상의 모든 자식들은 부모를 거스르기만 하는 듯하다.


그런데 이런 자식들의 부모를 보면 똑같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렇게 공부를 안 해서 어떻게 대학에 가겠냐느니, 나쁜 친구와 어울리더니 못된 짓만 배웠다느니, 외모에 신경 쓰는 것의 반만 공부에 신경 쓰라는 등등, 입만 아픈 잔소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이 있다. 금은 금대로 모이고, 깡통은 깡통끼리 모이고….
과일가게에 가도 사과는 사과대로, 배는 배대로 놓고 팔고 있지 않은가.


부모와 자식도 마찬가지이다. 내 차원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 바로 자식이다. 따라서 ‘저 녀석 때문에 내가….’ 라는 생각 대신 ‘혹시 나 때문에 저 녀석이?’ 라는 생각으로 바꾼다면 자식농사 지을 자격은 충분히 갖추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거기에다 지극한 마음은 일체만물만생과 통한다는 믿음으로 자식을 위해 마음을 내며 따뜻하게 대하는 연습을 하다보면 자식에 대한 관념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식 또한 달라질 것이니 더불어 차원이 높아지는 도리가 아니겠는가. 


얼마 전, 우리 선원에 다니는 한 선생님이 대중들 앞에서 발표한 내용을 잠깐 소개하겠다.
지난 대학 입시에서 그가 근무하는 학교의 학생이 최고 대학에 최고의 성적으로 합격했다고 한다. 그러자 학교에서는 현수막을 내걸자, 공로상을 주자는 등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며칠 후, 그 학생의 어머니가 찾아와 교장선생님에게 묻더라는 것이다.


“저는 공로상 안 줍니까?”   
조금 황당한 마음에 연유를 물으니 다음과 같이 말하더란다.


“저는 결코 우리 아이보다 일찍 잔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아이가 공부하면 그 곁에서 조용히 일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행여 작은 소리라도 나지 않을까 조심하고 또 조심했지요. 뿐만 아니라 아이의 빨래는 세탁기로 빨지 않고 꼭 제 손으로 빨고, 주스도 믹서로 갈지 않고 꼭 제 손으로 갈아 먹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가 성적이 떨어졌을 때도 다그치지는 대신 경계를 잘 극복할 수 있게 마음 내며 그저 묵묵히 지켜보았습니다.”


그런 정성으로 키운 아이가 마침내 입시 시험을 볼 때였다고 한다. 수학 시험의 첫 문제에서 막혀 암담해 하고 있는데, 문득 엄마 얼굴이 시험지 위로 스쳐지나가더란다. 순간, 눈앞이 환해지며 문제가 풀리더라는 것이었다.  
자식을 키우려면 적어도 이 정도의 정성과 노력은 들여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서도 집착은 하지 않아야 하니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 바로 부모노릇이다.
사실 부모자식간의 모든일은 공부다. 마음공부 재료인 것이다.


부모노릇 하는 사이에 이런 일도 겪게 하고 저런 상황도 닥치게 해서 내 자식이다, 내가 낳았다, 내가 해주었다는 마음을 내려놓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내려놓다 보면 철이 나게 되고, 철이 나게 되면 비로소 진짜 자식농사꾼의 모습을 갖추게 되리라.
어쩜 자식이란 “내 자식 내가 잘 길러야지"하는 집착이 모습을 바꿔 내 앞에 자식으로 등장한 내 부모 조상일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