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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주의지구촌기행] 캄보디아의 대학살극

 


폴랜드의 아우슈비츠를 찾은 사람들의 국적은 다양하다.

 

그 곳에 끌려온 유태인들은 독일뿐 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이젠 전쟁의 흔적이 완전히 씻겨진 유럽에서는 관광명소로 둔갑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유태인에 가해진 나치의 대학살극은 이젠 두 민족간의 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끔찍했기에 나치의 전 인류에 대한 엄청난 죄악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우슈비츠 외에도 지금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아시아의 한 구석에서도 끔찍한 대학살극이 벌어졌다. 이곳이 유태인 대학살극과 다른 것은 이 민족간에 벌어진 것이 아니라 동족간에 벌어진 골육상쟁이란 것이다.


영화제목인 ‘킬링필드’로 잘 알려진 캄보디아의 대학살극은 1975년부터 4년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인구의 10%가 넘는 무려 150만명이 넘는 캄보디아의 국민들이 희생됐다고 한다.    
폴폿이 이끄는 크메르루즈로 캄보디아 공산정권이 수도 프놈펜을 점령하면서 재빠르게 벌어진 공산혁명은 캄보디아 전국을 공포의 분위기로 몰아갔다.

 


인간의 잔학성이 극에 이른 상황에서 더하고 덜하고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캄보디아의 대학살극에서 주목받는 것은 그 만행의 주체가 15세 안팎의 어린이들을 앞세웠다는 점이다. 크메르루즈의 혁명정부는 이미 자본주의 사상에 젖은 기득권층은 재교육이 효과적이지 못하니 아예 말살시켜야 하고 아무것도 머릿속에 입력된 것이 없는 어린이들을 처음부터 공산주의 사상으로 무장시켜야 한다는 혁명세력의 논리는 엄청난 파괴력을 가져와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가방 끈의 길이가 문제가 아니라 가방을 든 사람은 끈이 길고 짧음을 떠나 모두 청산대상이 된 것이다.


킬링필드 영화 속에서 본 체크무늬의 머플러를 목에 두른 사람들과 유난히 군복을 입은 사람들, 팔 다리가 잘린 불구가 된 사람들이 많은 프놈펜 거리를 지나면서 다소 긴장도 되지만 시장 바닥에서 만난 상인들, 시골길에서 만난 농부들을 직접 대하면 이처럼 온순하고 순박한 사람들이 어떻게 끔찍한 대살상극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토바이의 소음소리가 귓전을 때리는 프놈펜시내를 빠져나가 처옹엑이란 조그만 마을을 찾아가면 킬링필드의 현장을 찾아 볼 수가 있다.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위령탑 주위로 여기 저기 파여진 웅덩이는 불과 30년 전에 대학살극이 벌어졌던 곳이다.
지금도 주변의 땅을 신발 뒤축으로 파헤치면 희생자들의 옷가지 등의 유품과 함께 유골조각, 치아 등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을 정도다.


위령탑의 가운데 유리로 만든 유골보관함은 여러 층으로 나뉘어 있는데 어느 하나도 온전한 형태의 것은 없고 총격과 흉기에 의해 손상된 흔적이 너무나 뚜렷하게 남아 있어 당시의 참혹한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한쪽 구석에 설치된 게시판에는 이곳에 파묻힌 유골들이 대량 발굴될 당시의 흑백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마치 영화선전을 위해 영화 속의 장면을 전시한 것처럼 보일 뿐 이것이 현실이었다고 믿기에는 너무나 끔찍한 장면으로 가득 차 있다.


이곳을 안내한 현지 안내인은 자신의 친척 어른 9명중에서 6명이 희생당했다고 하면서 자신이 불과 다섯 살 때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설명을 하는 그의 눈에는 더 이상 나올 눈물 마저도 말랐다고 하며 쓴웃음을 짓고 만다.
여러 웅덩이를 둘러보는데 한 아이의 엄마가 울면서 끌려가고 그 옆에는 크메르루즈 혁명군이 어린 아이를 커다란 나무에 둘러 내리치는 그림이 눈에 띄는데 차마 믿기가 어려운 상황이라 과장된 그림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프놈펜 시내의 한 고등학교였던 툴슬랭은 크메르루즈 혁명군치하에서 이른바 사상범들을 위한 수용소로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된 채로 개방되고 있다.
폴랜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단순한 유태인의 노동력 착취에 이어 노동력이 상실된 노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