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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답사 기행(20)]지리산 바래봉

초원위에 펼쳐진 철쭉 꽃무리


나무없는 정상에는 ‘붉은 철쭉’ 물결
동편제 창시 ‘송홍록 생가’ 둘러볼만


지리산은 그 품의 넓이와 깊이를 현장에서 가늠하는 것은 무리다. 그래서 지도를 펴놓고 요모조모 따져보는 것 밖에 도리 없다. 지도를 펴놓고 보면 지리산 국립공원 울타리 내에서도 가장 북쪽에 해당하는 남원시 운봉면, 인월면, 산내면 사이로 길게 자리한 덕두산-바래봉-세걸산-정령치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5월이면 철쭉이 만들어내는 붉은 기운으로 산이 불타오른다.


운봉면 국립종축원에서 시작하는 산행길 초입은 목장길의 시작이다. 바래봉(1165m)은 목장 안에 있다. 바래봉 철쭉의 특징은 5월 초순에서 중순까지 언제나 꽃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5월 초순에는 목장 초입의 드넓은 평지에 꽃이 피고, 등산로를 따라 조금씩 개화(開花)시기가 올라가 중순에는 바래봉 ~ 팔랑치로 이어지는 곳에 꽃무리를 이룬다.


길은 멋없다. 내리치는 햇살을 가릴만한 나무 한 그루 없다. 길은 다른 산에 비해서 가파르다고 할 수 없지만 목장을 관리하던 사륜구동차들의 통행로라 산행을 하는 묘미는 없다. 그래서 더 힘들다.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산의 8부 능선에 이르면 철쭉꽃이 무리지어 나타난다. “여긴가 보다!” 하며 감탄하며 카메라 셔터를 열심히 눌러대니 산위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더 밝아 보인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예요!” 제대로 된 꽃밭을 보려면 아직 좀 더 가라 권한다. 정상 부근은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다.


정상 조금 못 미처 오른쪽 팔랑치 방향으로 20여분 더 가니 “우와!” 하는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진다. 봉우리 하나를 몽땅 덮어버린 철쭉이 붉은 꽃망울을 터뜨렸다. 산철쭉이다. 산철쭉은 연분홍을 띤 철쭉과 달리 색이 더 붉다. 잡목들 하나 없이 붉은 산철쭉과 푸른 양탄자처럼 깔린 초원뿐이다.
일부러 조성하지 않고서는 이렇게 될 수 없다. 꽃밭에 들어갈 수 없도록 등산로를 잘 다듬어 놓았다. 나무 층계를 따라 봉우리를 올라서니 팔랑치로 이어지는 능선은 환상의 철쭉 정원이다. 둥근 꽃무리가 여기 저기 일부러 조성해 놓은 것처럼 수 놓여 있다. 초록 캔버스 위에 점을 찍어 놓은 듯 꽃무덤이 눈앞에 펼쳐진다. 능선을 따라 초원위에 꽃다발을 놓아 둔 것처럼 덤성 덤성 꽃무덤이 이어진다. 누가 이 산정에 철쭉만 남기고 모두 없앴을까?


산정 철쭉정원의 조성자는 목장 주인 소(牛)들이다. 이놈들이 여기저기 풀을 뜯으면서 몸에 좋은 풀과 잡목은 다 먹어 치우고 꿀을 빨던 벌이 기절한다는 독이 있는 철쭉만 남겨 놓았다. 여기서는 소들의 재주가 사람 이상이다. 능선의 끝은 내 시야에 잡히지 않는다. 내려오는 길은 발아래 펼쳐지는 운봉의 소담한 들녘이 싱그럽고 아름다워 오르는 것처럼 지루하지 않다.
운봉에서 인월 가는 중간 비전마을에 황산대첩비와 동편제를 창시한 송홍록의 생가가 함께 있다. 오래 묵은 소나무가 만들어주는 길을 따라 들어가면 이성계의 황산대첩비가 있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은 대형화되면서도 그 횡포가 극심했다.


1376년에 침입한 왜구가 공주를 점령하고 방화 약탈을 횡횡하다가 최영 장군에 의해 홍산에서 대패했고, 다시 침입한 왜구의 무리가 금강하구에서 최무선에 의해 격파 당하자 기존에 있던 왜구들과 합세해 지리산 일대로 들어와 약탈을 자행했다.


고려 조정에서 몇 차례 군사를 동원했으나 많은 피해를 입고 있었다. 급기야 조정에서는 왜구를 물리치고 용맹을 떨친 바 있던 이성계를 삼도순찰사로 임명해 토벌을 명했다. 왜구와 고려군은 이곳 운봉에서 일대 격전을 벌였는데 왜구가 험지에 자리 잡고 버티자 이성계가 직접 산 위로 올라가 지휘하니 군사들이 용기백배해 싸웠다. 그러나 우두머리인 아지발도는 15세 소년으로 온 몸을 단단한 갑옷으로 무장해 죽일 수 없었다. 이에 신궁으로 이름난 이성계는 활로 아지발도의 투구를 쏘아 떨어뜨렸고 그 순간 동생 이지란이 활을 쏘아 죽였다. 장수를 잃은 왜구는 우왕좌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