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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삶- 한마음선원 주지 혜원 스님]비록 작은 법을 들어도

부처님이 기원정사에 계실 때, 제자 중 마하 반특가 주리 반특가란 형제가 있었다. 반특가 형제는 모든 면에서 완전히 달랐다. 특히 형 마하 반특가는 지혜롭기로 소문난 데 비해 동생 주리 반특가는 천하의 바보로 3년이 지나도록 계율 한 줄 외우지 못했다. 지금도 남방불교 스님들은 일과에 계율을 독송하는 시간이 있는데, 부처님 당시에는 책이 없었던 터라 반드시 암기해서 독송해야 했다. 그런데 주리 반특가는 3년 동안 한 줄도 외우지 못했으니 보다 못한 형 마하 반특가가 꾸짖어 말하기를, “계율을 지닐 수 없으면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거라.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했다.


형에게 쫓겨난 주리 반특가는 차마 집으로 가지 못하고 대문 밖에서 엉엉 울었다. 그것을 부처님이 지나가시다 보고 물으셨다.
“주리 반특가여, 왜 울고 있느냐?”
“부처님, 저는 바보라서 계율이 외워지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계율을 외울 수 있겠습니까?"
“걱정 말아라, 주리 반특가여. 자신이 바보인 줄 아는 사람은 이미 바보가 아니다. 참으로 바보는 자기가 바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다.”


부처님은 주리 반특가에게 빗자루를 주시며 ‘털고 닦아라’ 라는 짧은 글귀를 외우게 하셨다. 그런데 주리 반특가는 ‘털고’를 외우면 ‘닦아라’를 잊고, ‘닦아라’를 외우면 ‘털고’를 잊었다. 그런 그를 두고 모두들 구제불능이라고 했지만 부처님은 묵묵히 지켜보셨다. 사실 주리 반특가는 전생에 뛰어난 학자였으나  남을 업신여긴 과보로 이생에 바보의 몸을 받은 것이었다. 
“털고, 다음엔 뭐였지? 아, 닦아라. 닦아라, 다음엔 뭐였지?”
주리 반특가는 이런 식으로 기원정사 안을 샅샅이 쓸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순간,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며 털고 닦으라고 하셨던 부처님의 뜻이 이해되었다. 즉, ‘털고 닦아라’는 탐진치(貪嗔癡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 삼독(三毒)을 털어내고 본래 청정한 마음을 드러내라는 것이었다.  번뇌의 근원인 아상(亞相 나다, 내가 했다, 내가 잘났다는 ‘나’라는 상)을 여의고 전체의 내가 되라는 것이었다.


부처님께서 팔만대장경을 설하신 뜻은 결코 경전 공부에 있지 않다. 팔만대장경 중에서 다만 한 구절이라도 그 뜻을 깊이 이해하고 깨달아 나와 더불어 뭇 중생에게 이익 되게 하라는 것이다. 그러자면 주리 반특가와 같이 스스로 어리석음을 깨닫고 끊임없이 ‘나’를 털어내고 닦아야 할 것이다. 
지난 하안거가 끝나고 신도들의 체험담을 들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이 “못나고 어리석고 가진 것 없는 자신을 보았다”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나밖에 모르고 나만 잘난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란 것이었다. 물질에 집착하고 작은 일에 성내고, 그러면서도 그것이 잘못임을 몰랐으니 그야말로 주리 반특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특이한 것은 그렇게 못난 자신을 보고 나니 그제야 주변이 보이더라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 몸이 아팠던 한 보살은 자신의 고통에 미처 보지 못했던 가족의 고통을 보았다고 했다. 자신으로 인해 가족들이 얼마나 힘들어하고 얼마나 아파하고 있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독불장군과도 같은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그 스트레스로 인해 항상 몸이 아팠던 보살은 남편이 자상한 사람으로 바뀌길 바랐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 공부를 하다보니 나로 인해 상대가 있고 상황이 벌어진 것을 알았다고 했다. 따라서 내가 바뀌면 상대도 바뀌고 상황도 바뀔 것인데, 먼저 상대를 바꾸려고 했으니 시작부터 잘못되었음을 알았다고 했다.    공부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한 가지 사실이라도 깊이 느끼고 깨달아 전체의 ‘나’로서 자신과 주위를 이롭게 하는 것이다.


법구경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온다. 

 

이른바 법을 가지는 사람이란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작은 법을 들어도
이것을 몸소 닦아 행해서
잘 지켜 함부로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