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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답사기행(26)]겨울 초입…항쟁의 섬으로 떠나자 강화도

 

가을이 남긴 자리는 낙엽들의 세상이다. 나무가 여름내 그늘을 펼쳤던 아래에는 낙엽들이 곱게 누워있다. ‘가을비는 내복 한 벌’이라고 하는데 늦가을비가 지나간 자리에는 모든 것을 벗어버린 나무들이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앙상한 나무들 아래를 거닐면서 황홀한 단풍으로 현혹됐던 가을여행을 접고 문화와 역사의 향기가 어우러진 여행을 떠나고 싶어지는 것은 욕심일까? 그래서 겨울의 들목에서 역사와 저항의 섬 강화도로 길을 나선다.


나라 안에서 제주, 거제, 진도, 남해에 이어 다섯 번째로 큰 섬 강화도 가는 길은 의외로 멀다. 지도로 보면 지척이지만 오가는 길을 가득 메운 차들이 막아서기에 그래서 멀다. 쉽게 생각하고 길을 나섰다가는 낭패당하기 십상이다. 특히 주말에는 더 심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는 곳이 강화도다.


11개의 유인도와 17개의 무인도를 거느리고 있는 강화도는 오랜 역사의 깊이와 부침을 간직한 섬이다. 그래서 ‘우리역사의 축소판’이라고 말한다. 단군을 참배하는 마니산의 첨성단,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이 살았음을 증명하는 고인돌(세계문화유산지정), 연개소문이 무예를 익혔다는 전설, 몽고침략기 39년간 줄기차게 항전했던 유적, 조선시대 병자호란의 상처, 병인양요·신미양요·운요호사건 등 근대사의 치열한 항쟁의 유적들이 겹겹이 쌓여 있어 어느 곳 하나 쉽게 넘어갈 수 없는 섬이다. 그래서 강화도를 한 두 번 다녀오고서 다 보았노라고 말하는 사람은 껍데기만 보고 온 것이니 다시 보고 오라고 권하고 싶다.


강화읍내에는 고려시대 몽고침략군을 맞아 39년간 항전하고자 했던 궁터가 있다. 고려의 최씨 무신정권은 강화도로 도읍을 옮기고 지금의 강화읍내에 궁궐을 마련했다. 개성의 궁궐처럼 근사하게 만들지는 못했지만 격식과 모양은 비슷했다고 한다. 강화대교가 건너는 해협은 고작 200~300m 다. 그런데 태어나서 변변한 강 한번 보지 못했던 몽고인들에게는 대단히 무서웠던 모양이다. 39년간 건너편에서 노려보기만 할 뿐 감히 건너려는 엄두를 내지 못했으니 말이다. 몽고는 후에 고려와 화친을 맺게 되자 가장 먼저 강화의 방어진지와 궁궐을 부수는 것으로 화풀이를 했던 것이다.


고려인들이 줄기찬 항전을 벌였던 이곳에서 조선시대에는 병자호란(1636)을 맞아 다시 한번 항전의 의지를 다진다. 그러나 고려인들이 몽고제국의 군대를 훌륭히 막아낸 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었던가? 교만하고 경박한 강화도 수비대장 김경징은 “뙤놈 군사가 날아서 이 강을 건너오겠는가?”며 술 마시고 놀기만 일삼다가 강화를 피바다로 만들고 말았다. 이것을 계기로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나와 청군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종묘사직의 신주와 빈궁과 원손을 수행하고 강화로 피신 왔던 김상용은 강화성 서문에 화약을 쌓아놓고 청군을 맞아 자폭하고 말았다. ‘김상용선생 순의비’는 고려궁터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 고려궁터 자리는 조선시대에도 임금이 유사시에 거처할 수 있는 행궁이 있던 자리며, 평시에는 강화유수부의 중심이 되었던 곳이다. 현재 명위헌과 이방청, 최근에 새로 복원한 외규장각, 강화유수부에 있던 동종이 남아 있다. 사람들은 협소한 고려궁터의 흔적에 시큰둥하지만 본래의 모습은 더 크고 넓었으며 현재 민가들이 들어서 있는 지역까지 아울러 살펴보아야 옛 모습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강화의 대표적인 사찰인 전등사로 향한다. 전등사는 삼랑성이라고 불리는 정족산성 안에 있다. 고목에서 떨어진 낙엽이 눅진하게 쌓여 늦가을 정취를 더해준다. 사그락 사그락 밟히는 낙엽소리를 들으면 여행객의 심사는 한층 더 깊고 깊은 곳으로 향한다. 전등사는 고려 충렬왕비였던 정화궁주의 원찰로 알려져 있다.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전해지지 않았지만 고려 원종5년(1264) 삼랑성 가궁궐에 불정도량과 오성도량을 4개월간 시설케 하고 법회를 열었다는 <고려사>의 기록으로 보아서 이곳이 고려의 가궁궐지였으며 왕실과 매우 가까웠던 사찰임을 알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