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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답사기행(28)]가야산 해인사

고즈넉한 사찰…그곳엔 비밀이 있다 가야산 해인사
750년 보존 ‘팔만대장경’ 손상없이 원형 유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장경판전’도 볼만

 

삼보사찰이 있다. 불가(佛家)에서 갖춰야 할 세 가지, 즉 불(佛), 법(法), 승(僧)을 갖춘 사찰을 말한다. 양산의 통도사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했기에 불보사찰(佛寶寺刹), 순천 송광사는 큰 스님들이 많이 배출됐기에 승보사찰(僧寶寺刹), 그리고 해인사는 경전을 집대성한 팔만대장경이 있기에 법보사찰(法寶寺刹)이라 한다.


법보사찰 해인사는 가야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고목이 된 벚나무 터널을 지나면 이내 맑고 청명한 계곡이 시작된다. 홍류동(紅流洞)이다. 옛 시인묵객들이 찾아와 아름다운 경치를 노래하고 시원하고 넓게 펼쳐진 바위에다 시를 새겨놓은 흔적이 지금도 생생하다. 재주는 뛰어났으나 시대가 허용하지 못했던 신라의 고운 최치원은 이곳에 들어와 신선처럼 살다가 신선이 됐다. “스님네여 청산이 좋다고 말하지 마소, 청산이 좋다면서 어찌해 산 밖으로 나오시려 하시는가, 뒷날 내 자취를 시험 삼아 보시게나, 한번 청산에 들면 다시는 나오지 않으리니” 이런 시를 남겨놓고 떠났다. 바위 위에 신발 한 켤레, 지팡이 하나를 남겨두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곳에는 ‘농산정’이라는 조촐한 정자가 건립됐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지금까지의 혼란을 정돈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했다. 흩어지고 찢어진 백성들의 마음과 멸망해버린 백제와 고구려 유민을 달래주어야 했다. 이때 수용된 사상이 화엄사상이었다. 이는 모두가 하나인 세상 즉 원융을 말하고 있었다. 화엄학의 종주 의상대사는 소백산에 부석사를 창건하고 화엄사상의 많은 제자를 배출해냈다. 이들은 다시 전국으로 흩어져 화엄사상을 전파하는 사찰을 창건하게 되는데 이를 화엄십찰이라 한다. 기록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최치원이 쓴 ‘법장화상전’에 의하면 태백산 부석사, 원주 비마라사, 가야산 해인사, 비슬산 옥천사, 금정산 범어사, 지리산 화엄사, 팔공산 미리사, 계룡산 갑사, 서산 보원사, 삼각산 청담사 등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해인사는 출발부터 비장한 각오로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의상의 손제자 되는 순응스님이 창건주가 돼 신라 40대 애장왕3년(802)에 창건됐다. 그를 이어서 이정스님이 마무리가 지었다.


해인사는 통일신라말기 희랑스님이 왕건을 도와 고려의 건국에 절대적인 공헌을 함으로써 해인사가 더 크게 확장되는 계기를 맞았다. 희랑스님의 상(像)이 해인사 성보박물관에 전시돼 있는데 치열한 구도자의 꼿꼿한 기품이 느껴진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후원으로 크고 작은 중창을 거듭했으며, 임진왜란 때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으므로 옛 모습을 잘 간직하게 됐다. 그렇지만 1695부터 1871까지 176년 동안 일곱 차례의 화재로 많던 전각들이 소실되고 말았다. 그 가운데 1817년의 대화재는 천여 칸의 건물을 불태웠다고 한다. 그때 마침 추사 김정희의 아버지 김노경이 경상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해인사의 중창을 후원하게 되고, 또 그것이 인연이 돼 김정희는 그의 나이 33세가 되는 1818년 <가야산해인사중건상량문>(伽倻山海印寺重建上樑文)을 쓰게 된다. 붉은빛이 나는 비단에 금니(金泥:금물)로 쓴 상량문은 추사의 젊은 시절 자신만만한 글씨체를 보는 듯 힘이 넘친다. 현재(1월) 해인사 성보박물관에서 특별전시를 하고 있으니 바쁜 걸음 재촉해 다녀올만하다.


해인사 입구에는 성철스님의 부도가 있다. 조상대대로 내려오던 부도 조형방식을 무시한 아니, 성철스님의 뜻을 무시한 돈 냄새나는 현대식 부도가 너른 터전에 있다. 현대 조각 전시물 같기도 하다. 부도로 들어가는 입구 옆에는 많은 비석이 서 있고 거기에 삼층석탑이 있다. 탑은 부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서 세운다. 그런데 이 탑은 전몰장병 위령탑이다. 전쟁으로 죽은 이들을 위한 탑이다. 1966년 경찰에 의해 잡힌 도굴꾼의 품속에는 이 탑에서 나온 지석 4매와 157개의 흙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