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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답사기행(29)]여주 신륵사

황포돛배 떠있는  남한강변 종소리


“정자에 오르면 남한강의 유장한 물줄기가 탁 트여 신륵사를 찾는 맛을 더해준다”
고려 말의 지성이자 당대 민심의 귀의처였던 나옹화상이 ‘밀양 형원사(瑩源寺)로 떠나라’는 명을 받은 것은 갑작스런 일이었다. 양주 회암사 중창불사가 어렵사리 끝났고 귀천을 가릴 것 없이 헤아릴 수 없는 백성들이 큰 스님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생업을 마다한 채 몰려들고 있었다. 사신을 보내 산문을 닫아도 소용없었다. 그래서 떠나라고 했다고 하나 나라가 어지러울 때는 조그만 집회도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물며 원근을 마다 않고 몰려드는 구름 떼 같은 백성들을 제어하기란 여간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라에서는 이것이 국가 변란의 무서운 전조로 생각했는지 모른다.


스님의 나이 57세. 피곤하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회암사를 나선 나옹화상은 남한강을 이용해 남쪽으로 내려갈 요량이었다. 그러나 길을 나선지 얼마나 되었을까 스님은 서둘러 신륵사로 들어갈 것을 종용했고 결국 이곳에서 입적하게 된다. 오색구름이 주변을 둘러 싸 신이한 광경이 펼쳐졌다고 한다. 나옹화상의 갑작스런 입적과 신기로운 일들은 입소문을 타고 퍼져 나갔고 그의 열반지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당시의 신륵사는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만 있는 남한강변의 조그마한 사찰이었다. 나옹화상이 이곳에서 입적하므로 신륵사는 일신 변모의 계기를 맞이한다.


조선왕조에 들어서 불교가 억압을 받는 동안 잠잠했던 신륵사는 서울 대모산에 있던 영릉(세종대왕릉)을 이곳 여주로 옮겨 오면서 다시 주목을 받는다. 왕릉 수호사찰을 새로 건립하는 것보다 기존의 신륵사를 이용하게 되면서 왕릉의 원찰로 당당히 다시 일어서게 된다. 임진왜란때 500여 승군을 조직하여 싸웠으며, 이때 화려했던 전각들이 잿더미로 변했으나 현종12년(1671) 무렵부터 조금씩 중창 불사한 것이 지금에 이른다.


여주 읍내에서 여주대교를 건너면 오른쪽으로 모래사장 넓은 강변에 신륵사가 자리하고 있다. 넓은 주차장과 각종 도자기를 판매하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 곳을 지나면 곧 신륵사 일주문에 닿는다. 일주문은 최근에 만들어 어색한 모습으로 서 있는데 이런 경우 ‘생뚱맞다’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륵사 경내에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있을 정도로 어수선 했다. 절로 가는 길이라면 나무숲 아래를 걷는 맛도 있어야 하는데 흙먼지 펄펄 날리는 무미한 길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어수선한 주변을 정리하고 나무를 군데군데 심어 숲을 조성하려는 폼이 보인다. 아직 세월이 더 흘러야 나무그늘을 드리울 수 있을 듯 하다. 나옹선사가 남한강의 아홉 마리의 용을 제도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구룡루를 지나면 신륵사의 본전인 극락보전이다. 극락세계를 주관하는 부처인 아미타불도량 극락보전은 고풍스런 모습으로 당당하게 앉아 있다. 기둥과 덤벙주초(다듬지 않은 주춧돌), 벽화, 법당내부 등 구석구석에 세월의 흔적들이 스며 있어 볼수록 감칠맛이 난다. 법당 앞에는 썩 볼품은 없지만 그래도 보물 제225호로 지정된 다층석탑이 있다. 다른 탑에서 볼 수 없는 용과 구름 조각이 수작으로 평가되어 보물로 지정되었다. 흔히 볼 수 있는 화강암이 아니라 대리석 재질로 되어 있다. 적묵당의 굴뚝은 보물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기와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 특이한 모습이라 눈이 들어온다.


극락보전 왼쪽으로 돌아가면 맞배지붕을 한 조촐한 명부전이 있다. 가운데 앉은 지장보살과 좌우에 열 명의 시왕, 문간을 지키는 금강역사가 편안하면서도 단호한 표정으로 찾는 이들을 맞이한다. 명부전·지장전·시왕전으로 불리고 있는 이곳은 죽은 이를 위한 공간이다. 지장보살의 가호를 힘입어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기원하는 곳이라 하겠다. 열 명의 시왕에게 심판을 받으며 그 중에 대장 시왕이 염라대왕이다. 이곳은 불교의 지장신앙과 중국의 도교가 함께 혼용된 공간이라 하겠다. 명부전 옆에는 스님의 묘탑이 부도 2기가 찾는 이 없이 외로이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