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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상/DENCK]밀리언 달러 베이비 자기와 싸우는 인간승리 드라마

작품·감독·여우주연상 등 수상

 

예전부터 보고싶었던 밀리언 달러 베이비[M$B].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인터넷 동영상으로나마 보게되었다. ‘M$B’는 당연히 "100만 불짜리 베이비"겠지만 이 말은 ‘1센트짜리 물건을 파는 가게에서 찾아낸 100만 불짜리 물건"이라는 의미이다. 시궁창 속에서 찾아낸 보석이란 뜻으로 생각한다.
프랭키 던(클린트 이스트우드)은 허름한 복싱 체육관을 운영하는 왕년의 복싱계 스탭. 그의 직업은 이른바 컷맨(Cutman)이다. 복싱 경기 중 상대의 주먹에 눈가가 찢어지거나 코뼈가 내려앉을 경우 시합진행에 지장이 없도록 지혈 등 응급처치를 해주는 스탭을 말한다. 이제 이미 나이가 들대로 든 프랭키는 아무런 가망성도 보이지 않는 체육관을 지키고 있다. 조금 싹이 보이는 선수 하나를 다른 매니저가 데려가 버린다. 이제 그에게 남겨진 것이라곤 도저히 링에는 못 올라가볼 것 같은 그런 젊은이뿐.


어느 날 한 여자가 찾아온다. 매기 핏쳐제랄드(힐러리 스웽크). 그녀의 나이는 이미 31살. 도대체 그 나이에 왜 권투를 배우려고 할까. 그것도 이젠 늙어빠진 프랭키에게 말이다. 매기는 프랭키보다 훨씬 더 험블한 삶을 살아왔음을 이내 헤아리게 된다.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며 손님이 먹다 남은 음식을 강아지에게 먹일 거라며 싸가지고는 그걸 먹으며 한 푼 두 푼 돈을 모아 권투를 배우는 것이다. 프랭키는 이 여자에게 권투를 가르치게 된다. 링에서 이기는 법과 선수로 살아남을 수 있는 복싱계의 불문율을 전수하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평이한 헝그리 복서의 성공담일 것이다. 하지만 매기의 주먹이 상대를 다운시키며 승승장구할수록 관객은 그 여자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고 있고, 그 여자가 얼마나 더 행복하여지는지, 그리고 프랭키가 얼마나 더 행복감을 느끼는지 결코 알 수 없다. 단지 불행한 삶, 내지는 행복하지 않았던 과거를 지녔던 이들 두 주인공이 대안 가족으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너무나 평이로운 노선을 따라가던 영화는 급격하게 파국을 맞게 된다. 이 영화는 최근 아카데미를 휩쓰는 그런 블록버스터와는 한참이나 떨어져있다. 복싱 경기 씬은 스펙터클 하지도, 선수의 이마에 흐르는 땀이나 피가 CG를 통해 그럴듯한 핏덩이로 장식되지도 않는다.


이 영화를 보면서 곽경택 감독의 ‘챔피언’이 계속 떠올랐다. 여전히 미국에서도 역시 복싱은 헝그리 스포츠이며 ‘돈"으로 상징되는 신분상승의 지름길이란 것이다. 물론 그 이면에는 사각의 링에서 스포츠맨십으로 상대를 제압하며 자기와 싸우는 인간승리의 드라마라는 것이다. ‘챔피언’에서 복잡다단한 심경을 가질 수 밖에 없듯이 이 영화에서도 적지 않은 영혼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그것은 복싱에서 바로 이어지는 안락사에 대한 종교적 판단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불운했던 이승의 삶을 마감하는 자나, 마지막까지 행운이 주어지지 않는 나이든 컷맨의 비운이 깊은 울림을 준다.


이 영화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딸이 카미오로 등장한다. 힐러리 스웽크가 어렵게 번 돈으로 힘들게 자신의 어머니와 가족을 찾았지만 뜻밖의 대우를 받고는 쓸쓸하게 돌아올 때 주유소에서 만나는 트럭에 앉은 꼬마 여자애이다. 74살 먹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손녀가 아니라 딸이란 사실을 알고선 매우 놀랐다.


제 77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등 알짜배기 부문을 싹쓸이했다. 아무도 만들고 싶어 하지 않던 영화를 75세 노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마침내 모두가 보고 싶어 하는 영화로 만들어낸 것이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딱 맞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