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겨울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순연(純然)한 시간의 흐름으로
그 계절의 가운데에 닿을 수만 있다면
부당했던 순간들,
마음 속에 얼어버린 분노도
식탁 위 마른 찻잎 몇 줌에 섞어
물 끓기를 기다리는 넉넉함 속에
녹여낼 수 있겠지요.
바람은 대문을 흔들고
문밖엔 한창 정정한 햇살
생명들은 숨을 죽이고
다향(茶香)을 맴돌아
절망한 자가 모처럼 회귀하는
해마다의 이 계절에
이대로 침잠하라
침잠하라
찻물이 식기를 기다리며
나를 다스리는 시간.
·본명 : 김영호
·88년 서울치대 졸
·대한치과의사문인회 총무이사
·전 가톨릭대학교 치과학교실 교정과 교수
·1999년 시대문학 시부문 등단, 시대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