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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그리운 금강산 (둘)/이병태

2004년 7월 23일 토요일.


북측의 사정 때문에 온정인민병원 치과 방문은 무산되었다.
저녁 식사 후 금강산 해상호텔 레스토랑에서 필리핀 악단의 연주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옆자리에서 김윤규 사장은 금강산 골프장 후원 인사들과 친목과 화합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맥주를 한잔, 두잔 비우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남북치의학교류협력위원회’의 사업을 추진하는데 장막이 드리운 것을 생각하니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김병찬 박사한테 말했다.


“여보 내일 오전에 만물초(만물상은 일제가 만든 신조어)를 올랐다가 오후에 나갑시다.”
뜻하는 모든 것이 제대로 되면 좋지만 안 되는 일이 허다함으로 참고 지나갈 도리뿐이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째지고 터지는 듯한 악대의 연주를 듣기만 했다. 신청곡 쪽지가 오길래 ‘오 대니 보이’와 ‘체리 핑크 만보’를 적어냈다.
이 두곡은 작고한 길옥윤 선배가 강남에서 창고라는 레스토랑을 할 때 내가 들어가 눈에 뜨이기만 하면 즉석으로 연주해 주던 추억이 있다.


조금 있더니 김윤규 사장에게 마이크가 가고 노래를 하게 되었다
“여러분, 민족화합을 위해 그리고 금강산 사업을 위해 이렇게 오셔서 감사합니다. 노래하나 불러 올리겠습니다. 현대아산 사가(社歌)를 부르겠습니다. 여러분 ‘그리운 금강산’을 다함께 부르시죠.”
그는 ‘그리운 금강산’을 가수 못지않게 잘 불렀다.
아울러 나는 그의 재치에 놀랐다.

 

그리운 금강산
일찍이 지도로만 본 금강산이다. 설악산 북쪽 미시령 동쪽 기슭에 금강산 화암사 그리고 6·25전에 말사 신흥사의 본사였던 건봉사를 찾으며 가보고 싶은 금강산을 그리워했을 뿐이다. 치의예과에 들어와 선배들을 따라 처음 열린 설악산을 갈 때는 휴전 직후라서 군 검문소도 여러 곳 이었고 등산 장비가 모조리 군수품이라서 뺏기거나 조사를 받기 일쑤였다.
1960년 설악산에 가는 것만도 지금은 알프스나 킬리만자로만큼 멀고 어렵게 느껴질 때였다. 그러니 당시는 금강산은 꿈속에도 못 그리는 산이었다.


1962년 여름.


‘그리운 금강산’이 한상억 시(詩) 최영섭 곡(曲)으로 태어났다. KBS 국제방송이 6·25전쟁 12주년을 기념하여 한상억에게 의뢰, 한 달간의 작업 끝에 서시(序詩)와 서곡(序曲) ‘동해의 여명’ 간주곡 ‘정선 아리랑 주제에 의한 환상곡’ 그리고 산, 강, 바다를 주제로 각각 3편씩 11편으로 된 연작시 ‘아름다운 내 강산’을 완성했다. ‘그리운 금강산’은 이중 한 작품이다.


이 대연작시를 최영섭(당시 33세)씨가 50분짜리 칸타타 ‘아름다운 내 강산’을 만들었다.
그해 12월 국립극장에서 6·25전쟁 12주년 기념으로 KBS 교향악단이 연주했다. ‘그리운 금강산’은 폭발적인 감성을 일으켰고 드디어 고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그 후 남북예술단 교류 때 1985년 9월 21일에는 평양대극장에서 소프라노 이규도가 
열창했다. 이제 이 곡은 민족이 부르는
가곡이 되었다.

 

그리운 금강산.
거기 비로봉(1638m)에 올라
조국산하를 바라볼 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