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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NCI/단국치대영화동아리]영화세상/공포영화 ‘가발’


“가발을 만든 머리카락에는 그 머리를 기르며 품었던 기억과 애증, 슬픔이 깃들어”


영화 ‘가발"은 한마디로 참 무섭다. 치렁치렁 시커멓게 늘어뜨린 머리카락, 익숙하면서도 섬뜩하다. 저 멀리 고전 설화에서부터 ‘전설의 고향’류 괴담의 주인공, 최근에 이르러선 ‘링’ 시리즈로 대표되는 산발의 사다코까지, 예나 지금이나 풀어헤친 검은 머리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한 품은 망령들은 예외 없이 머리를 길렀다. 원한을 말할 땐 여지없이 그것을 풀어헤쳤다. 머리카락은 어느새 공포의 아이콘이 됐고 공포영화의 관습이 됐다. 늘상 빗고 쓸고 손질하는 익숙한 내 몸이면서 몸에서 떨어져 있을 때에는 한없이 이물감을 느끼게 하는 낯선 것. 더구나 머리에 얹혀 있을 때의 모습 그대로 분리된 가발이란 형태만으로도 기이함을 주는 대상이었다.


1천만 원이 사용됐다는 정교한 가발 제작기, 삭발을 감행했다는 주연배우의 투혼도 그 위에 얹혔다.


허나 정작 ‘가발"은 가발이라는 소재에 집착하는 영화가 아니다. 가발에는 이야기가 있다. 가발을 만든 머리카락에는 그 머리를 기르며 품었던 기억과 애증, 슬픔이 깃들어 있다. 머리카락 주인의 간절한 소망은 이뤄지지 못했고 그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가발은 한을 품었다. 그 머리가 다른 이에게 씌워지면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처음 가발을 받은 건 백혈병 말기 진단을 받은 환자 수현(채민서)이었다. 항암 치료 과정에서 머리카락이 모두 빠지고 바싹 말라가는 그에게 지나칠 만큼 헌신적으로 돌봐주던 언니 지현(유선)이 가발을 선물한다.


가발을 쓰기 시작하면서 수현의 모습이 변한다. 힘없고 소극적이었던 성격이 갑자기 밝아지고, 언니의 남자 친구에게 접근할 만큼 대담해지고, 얼굴도 조금씩 달라진다. 잠시 가발을 빌려쓴 지현의 친구도 평소와 달리 제 욕망과 분노를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내 가여운 동생은 내가 알던 이전의 그가 아니고, 내 불쌍한 친구도 이전의 모습이 아니다. 그저 단순한 변화만도 아니다. 예측할 수 없는 그들의 행동은 점차 파국을 만든다.


언니와 동생, 언니의 애인, 그리고 가발의 원주인이 기묘한 구도를 이루면서 한때 사랑했던 이들은 점차 서로를 미워하고 두려워하고 증오하게 된다.


‘가발"에서 느낄수 있는 진짜 공포는 인간의 내면에 잠들어있던 분노와 욕망이 표출되면서 느끼는 공포심이다. 그렇다고 섬뜩한 이미지적인 공포장면이 안나오는 것은 아니다. 관객의 내면에 숨어있는 공포에 잔혹하고 끔찍한 공포이미지가 적절히 배합되어 극한의 공포심을 일깨우는 것이다.
영화 ‘가발"은 처음부터 익숙한 장르의 장치들로 관객을 자극하려는 의도 없이 대신 공포심을 갖게 되는 인간들의 심리와 관계를 이루는 데 공을 들였다. 그 결과 ‘가발"은 기존의 공포영화와는 달리 자신만의 호흡을 가진 공포영화가 되었다. 기존의 공포영화의 틀을 살짝 비틀어 만든 ‘가발"은 관객들에게 극한의 공포를 느끼게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