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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답사기행(34)]백제 무녕왕릉


백제, 무녕왕릉


공주를 대표하는 곳 무녕왕릉
볼것없다는 백제의 옛고도에
인식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공산성 산책로를 따라 가는 길은
울창한 숲과 고적이 어우러진
남녀노소 트레킹 코스로 적합


여행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자 문화유산을 찾아나서는 답사객으로서 가장 뻔질나게 드나드는 곳이 몇 있는데 손가락에 꼽으라면 이렇게 순서를 매길 수 있다.
첫째가 역사와 항쟁의 섬이면서 우리 역사의 축소판 강화도.
둘째는 백제의 영혼을 만날 수 있는 공주와 부여.


셋째는 옛 건축의 아름다움과 절집의 걸작으로 꼽히는 부석사와 소수서원.
넷째는 전통으로의 회귀가 가능한 안동.
다섯째가 자연과 문학과 문화유산의 절묘한 조화가 돋보이는 오대산과 봉평일대.
이 순서는 서울에서 하루에 다녀올 수 있는 거리의 간단성에 기인한 면도 있지만, 우리문화의 다양성을 엿볼 수 있는 곳으로 적절하기 때문이다.


문화유산답사의 어려움은 사라져버린 옛날을 회상하는데 있다. 자신이 경험한 바를 회상하기도 어려운데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의 자취를 더듬어 본다는 것은 더 어렵다. 그러나 경주와 같이 그때의 역사를 증언할 풍부한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일부나마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백제의 고도(古都)에 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남겨진 것은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그 위에는 전혀 다른 시대의 것이 복원되어 있다. 그래서 백제로의 여행은 미로를 찾아 퍼즐을 맞추는 답답한 심정에서 출발한다.


백제를 찾아가는 마음가짐 또한 화려함 보다는 온화함을, 거대함 보다는 단아함을 기대해야 한다. 무너진 옛터에 다시 추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우며, 기와를 얹어야 하는 쉽지만은 않는 여행길이 된다. 이렇게 철저하게 망가지게 된 연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전쟁을 통해 망해버린 국가이기 때문>이며, 또 <백제사(百濟史) 700년 중 대부분의 세월인 500년을 보낸 도읍지가 불행하게도 개발의 바람이 가장 거셌던 지금의 서울> 이라는 것이다. 백제는 강성했던 500년의 역사를 지금의 서울(엄밀히 이야기하면 지금의 송파구과 하남일대)에서 보내고, 고구려의 강습에 의해 급히 쫓겨 가다시피 하여 자리 잡은 곳이 공주다.


백제가 공주로 오기 전 아주 먼 옛날에 금강 가 연미산에는 암곰이 한 마리 살고 있었다. 오랫동안 배필이 없어 고민하던 차에 강을 건너 나무를 하러 온 나뭇꾼을 잡아 가정을 꾸렸다. 먹이를 구하러 나갈때는 큰 바위로 동굴을 막아놓고 다녀오니 나뭇꾼은 도망할 재간이 없었다. 어느덧 아이가 둘이나 생겼다. 곰은 마음이 놓였다. 이제 남편도 정을 붙이고 살겠지! 하며 안심하고 동굴을 문을 열어두고 나갔다 돌아와 보니 남편은 이미 강을 건너고 있었다. 곰의 슬픈 울부짖음은 소용없었다. 급기야 자식을 껴안고 강에 뛰어들어 죽고 말았다. 그 후 강은 알 수 없는 일로 사람들을 데려갔다. 사람들은 곰을 위해 사당을 지어놓고 매년 제사를 지냈다. 그 사당을 곰사당이라 불렀다. 곰사당이 있던 나루를 곰나루(아마 백제인들은 고마나루라고 불렀을 것이다)라 불렀으며 이것을 한자로 쓰게 되니 웅진(熊津)이라 했다. 유장하게 흐르는 금강변 오래된 솔숲에는 작은 곰사당이 복원되었다. 하늘을 향해 울부짓는 돌곰의 표정이 슬프다. 지금이라도 남편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듯하여 곰사당 앞에 서면 측은한 마음이 앞선다. 곰나루 공사를 하던 중 모래사장에서 깊숙한 곳에서 그 옛날 백제인들이 섬겼던 돌로 만든 곰이 출토되어 박굴관에 있다. 이렇게 전설과 현실이 거짓말처럼 맞아 떨어질때가 있는데, 허황된 전설이 아닌 사실로 살아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공주로 내려온 백제왕실은 피난 온 입장이기에 큰 힘을 쓸 수 없었다. 개로왕이 고구려 군대에게 피살된 후 웅진에서 문주왕이 즉위 했으나 해구에 피살되었고, 이어 즉위한 삼근왕 역시 3년의 재위를 끝으로 사망했다. 이어 즉위한 동성왕은 다시금 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