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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 치과의사문인회](소설)황금벌판(3)/김영진

 

 

 

 


가을걷이를 끝내고 석씨는 군청을 방문하여 간척사업의 인가 절차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마침 제 삼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고 있었고 국토확장과 식량증산의 목적으로 간척사업이 적극 장려되고 있는 시점이었다. 그리고 새로 발족된 농어촌진흥공사로부터 자금과 기술에 대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용기를 얻은 석씨는 그날 밤 자신의 계획을 아내 박씨에게 털어놓았다.
“여보, 진등개와 구정개를 막아서 간척을 해 볼 생각이오. 한 십년쯤은 고생을 해야겠지만 일백오십 마지기가 넘는 논을 기필코 만들어 볼 결심이오. 관청에서도 허가를 내 준다 하오.”
“당신이 하고 싶으시다면 조금이라도 젊어서 시작해 보시지요. 당신만큼 성실한 사람이 한다면 안 될 일이 뭐가 있겠어요?”


“하지만 큰일을 벌여놓으면 아무래도 당신과 태어날 아이들에게 소홀해 질까봐 걱정이오. 더구나 어머님의 건강도 시원치 않으니 영 마음이 놓이지 않는구려.”
“저도 젊잖아요. 뱃속의 아기는 제가 맡아서 낳고 기를 테니 집안일일랑 걱정 마시고 한번 꿈을 펼쳐 보세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 않아요?”


“고맙소. 내 나이 사십 줄이 되면 당신을 더 이상 고생시키지 않고 부자 소리를 꼭 듣게 해 주겠소. 간척을 시작하면  좋은 일 나쁜 일 다 생기겠지만 나를 믿고 한 십년만 꾹 참아주구려.”
간척사업 신고서를 군청에 접수시킨 다음 허가를 받기까지는 꼭 넉 달이 걸렸다. 높은 사람을 접대하는 일에 익숙하지 못했던 석씨는 처음으로 관청의 담당자들과 읍내 색시집에 가서 밤늦도록 술도 마시고 화투도 쳐 보았다. 노란봉투 속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오백 원짜리 지폐다발까지 그득 채워서 건네곤 했지만 그런 날이면 괜한 가슴이 뛰어 잠들지 못하고 밤새 몸만 뒤척이곤 했다.


간척 허가를 받자마자 봄부터 석씨는 경운기로 건너편 황씨네 야산의 돌덩이를 갯가로 운반하기 시작했다. 황씨는 애물단지인 돌덩이들을 파내 끌어가는 석씨가 한없이 고마웠다. 돈 한푼 받지 않고 아무 쓸모없던 야산을 밭떼기라도 부칠 수 있게 조금씩 평지로 골라가는 석씨가 마냥 미덥기만 했다. 시간이 갈수록 더욱 무안해진 황씨는 행여 들킬세라 멀리서 석씨의 작업을 슬금슬금 훔쳐볼 뿐이었다.


뻘 입구에 쌓아놓았던 돌멩이 더미는 품앗이 꾼 들을 들여서 썰물을 탈 때 진등개에 쏟아 부었다. 원래 뻘 바닥이 무른지라 몇 달을 계속했어도 거의 헛일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석씨는 한편으로 부지런히 농사를 지으면서도 이 일을 쉬지 않고 계속했다. 그 해 초여름에는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어 소를 한 마리 팔아야만 했지만 바다를 조금씩이나마 막아가고 있다는 보람이 소를 팔았다는 서운함보다 더욱 컸다.


그리고 장마가 끝난 다음엔 날물 때 부쩍 얕아진 진등개의 밑바닥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몸은 한없이 고달팠지만 물이 썰면서 진등개의 넓이가 종전의 몇 배로 넓어진 것을 본 석씨는 참으로 기뻤다. 넘쳐흐르는 보람으로 온 몸이 뿌듯해 왔다.
“여보. 성공이오. 내 예상대로 진등개 밑에 토사가 쌓여 갯벌이 넓어지고 있소.
이제 일년만 더 고생하면 진등개는 몽땅 뻘 바닥이 될 것이오.”
“정말 수고하셨네요. 삼촌들도 형님이 너무 고생하신다며 걱정들이 크던데 이 소식을 빨리 전해야 되겠어요.”


“되지도 않을 일을 꾸밀 형이 아니라고 꼭 전해 주구려. 하하하…”
삶이란 이런 것인가! 뼈를 깎는 고통의 뒤에 따르는 열매란 이렇게 단 것인가!
아내와 단란한 자리를 마련한 석씨는 오랜만에 돼지고기 김치찌개에다 막걸리를 두 주전자나 들이키면서 즐거워했고 젖먹이를 안고 있던 박씨도 남편의 성공예감으로 어린애처럼 마냥 행복에 겨웠다.


연재중인 황금벌판 제2회(9월 15일자)의 앞부분이 일부 누락되었습니다. 누락된 부분을 이번호의 3회 연재분에 추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