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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 치과의사문인회](소설)황금벌판(6)/김영진


 


죽어있던 흙들이 모조리
푸른 생명으로 우르르 살아나
품안에 뛰어드는 듯 했다


하지만 석씨는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뻘밭을 고르고 또 고르며 경운기로 직접 운반한 황토 흙으로 개토를 거듭했다.
그 해에는 봄철 내내 빗물에 염기가 잘 씻겨 나가도록 도랑을 치면서 논둑을 높이고 농기계가 들어갈 수 있게 농로를 돋우었다. 초여름에 접어들자 그토록 척박한 땅에서도 잡풀들이 하나씩 싹트기 시작했다.


무심코 지나치다가 어느 날 불현듯 여기저기 돋아난 잡초들을 본 순간 석씨는 흡사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는 것 같았다. 검은 뻘밭 속에서 피어난 녹색 잡초들은 지칠 대로 지친 석씨에게 한줄기 빛처럼 희망과 용기를 들이부어 주었다. 끝도 없이 뼈를 깎는 것 같았던 지난 칠년간의 온갖 우여곡절이 먼 꿈속의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 동안 죽어있던 흙들이 모조리 푸른 생명으로 우르르 살아나 품안에 뛰어드는 듯 했다.


땀으로 얼룩진 한 해를 넘기고 다음해엔 듬성듬성 모내기를 시도해보긴 했으나 그런대로 추수라고 일컫기에는 이후 사년이란 세월을 더 바쳐야만했다.
다행히 여섯 살 난 딸 진이와 여덟 살이 된 아들 훈이가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자라고 일곱 마리의 소와 스무 마리가 넘는 돼지를 박씨가 잘 거두어 주는 덕에 가사에는 아직까지 큰 어려움이 없었다.


첫 번째 모내기를 하던 해에 농어촌진흥공사 융자금의 이자에 대한 고지서가 나왔다. 매달 사십 만원씩을 내다가 이듬해 말에는 오십 오만 원이 되었다. 첫 모내기를 할 때만 해도 모판에다 이앙기를 사용하는데 오백만원이 넘는 비용이 들었지만 추수는 거의 보잘것없었다. 이자에다 영농비를 마련하자니 새끼 같던 가축들을 속속 팔아 치워야만 했다. 두 번째 모내기를 하고 난 다음 석씨는 눈 덩이처럼 불어나는 비용을 더는 감당할 수 없었다. 농지세를 납부하고 농협에서 간척지를 담보로 얼마간의 영농자금을 빌렸다. 그것으로 일년간 버텼지만 또다시 추가자금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해마다 이런 일이 반복되었다. 간척지에서 농사를 시작한지 오년 만에 추수다운 추수를 했다. 그러나 나락을 수매한 돈으로는 이자만 갚기에도 역부족이었다.


해가 지나면서 점점 농토는 안정되고 수확량은 늘어갔지만 아무리 좇아가도 다가설 수 없는 신기루처럼 원리금의 연체는 거듭되었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석씨는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았었다. 비록 모든 전답과 집이 담보로 잡혀있긴 했지만 이렇게 나락수확량이 점차로 많아지면 한 오년 후쯤에는 이자를 충분히 갚고 조금씩이나마 원금상환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믿었다. 때가되면 지금까지 서럽도록 고달픈 세월만을 감내해온 아내에게 진심으로 보답하고 남다른 호강을 시켜 주리라!


사실 간척을 시작한 후 십여년 간 아내 박씨는 석씨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이자 절벽의 동굴처럼 언제나 아늑하고 포근한 마음속의 둥지였다. 그동안 너무나 고생만시켜 이제는 좀 편안하게 해 주고 싶었지만 아직은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돌아오는 갖가지 고지서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나락 수확량이 두배 이상으로 늘어날 오년 후에는 모든 것이 원만히 해결될 것 같았다. 당연히 논 값과 쌀값도 과거처럼 계속 오름세를 탈것으로 믿었다.


그 후, 강산도 변한다는 십년의 세월이 어느덧 유수처럼 흘러갔다. 어언 반백을 넘긴 석씨의 주름살 깊게 팬 얼굴에는 수심만이 가득했다. 널따란 그네 집 마당에는 밴, 이앙기, 트랙터, 콤바인, 경운기, 건조기 따위가 가득 들어차있지만 일손을 구하기 어려워 할 수 없이 농기계회사나 농협의 융자로 구입한 것들이라서 실제주인은 모조리 다 따로 있는 셈이다.


사십킬로 조곡의 올해 수매가는 오만 원이 채 안되고 그나마 수매량은 극히 한정적이었다. 주판알 퉁겨보나마나 금년 역시 적자농사인 것만은 너무도 뻔했다. 논배미마다 보기 드문 풍작에 잘 익은 벼들이 파도처럼 황금빛으로 너울치고 있지만 석씨의 앙상한 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