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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 치과의사문인회](소설)황금벌판(끝)/김영진

간밤의 불길한 꿈 때문에
석씨는 잠을 더는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다

 

십년 전만 해도 간척지 논 열 마지기와 맞바꾸자고 졸라대던 건너편 황씨네 야산에는 이삼년 전 무슨 캐슬인가 하는 콘도가 들어서고 그 앞에다 식당건물까지 지은 황씨네는 읍내에 으리으리한 이층집을 새로 지었다.


수 삼년간 석씨가 피땀 흘려 평지로 다듬어준 그 깔끄막이 저 캐슬콘도 기초공사만 멋지게 해 준 꼴이 되고 말았다. 
지금도 가끔씩은 그때 무리를 해서라도 담보를 풀고 간척지 논 열 마지기와 황씨네 야산을 바꾸었더라면 하는 허황된 생각이 들곤 한다.


읍내 고등학교에 통학할 때까지만 해도 모범생이었던 아들 훈이와 딸 진이가 대학에 들어간 후로는 부모의 고뇌와 생활에 대해선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방학 때 며칠씩 집에 머무르는 것 이외에는 도무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이방인에 다름 아니었다. 추석명절이라고 겨우 집에 왔어도 휴대폰과 붙어있던가 하루 종일 컴퓨터와 토닥거리며 지내는 것이 전부였다. 무슨 말이라도 좀 걸어볼라 치면 어쩐지 건성으로 대답하는 것만 같고 마음 한쪽은 보이지 않는 뭔가에 흠뻑 빠져있는 폼이 역력했다.


한가위랍시고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준 동생들이었지만 은행 지점장인 종훈이에게 돈 이야기를 꺼냈던 어제의 일이 영 마음에 걸렸다.
“지금 갖고 있는 전답을 담보로 해서 끌어다 쓴 돈은 원금과 연체이자를 합해 십억 원이 훨씬 넘는다. 자금을 융통할 수만 있다면 한꺼번에 다 갚고 나서 다시 담보로 제공해 융자를 뽑으면 지금보다는 싼 이자를 물어도 된다는데, 너희은행에 도움을 청하면 혹시 안 되겠나?”


“형님, 요즘 금융기관의 사정이 매우 어렵습니다. 담보가 설정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재 융자를 받기가 불가능한지 오래되었지요. 그리고 설령 돈을 구해 빚을 갚는다 해도 갚고 나서 다시 융자를 받을 때는 지금 걸려있는 액수보다 훨씬 적어질게 뻔하지요. 요즘 농지가 똥값인 것을 모르십니까?”
“그나저나 원금과 이자가 너무 밀려서 갚지 않으면 곧 경매가 들어온다니 하도 답답해서 하는 말이다.”


그때 무역회사에 다니는 종혁이가 거들었다.
“형님, 농사나 지으며 살던 때는 지나갔습니다. 경매에 붙이도록 그냥 두시지요. 빚 얻어서 빚을 막으면 곧 망하는 것은 뻔한 이치지요. 정부에서도 논농사를 짓지 말고 휴농 보상금이나 받으라고 하지 않아요? 이제 더는 쌀을 쌓아둘 곳도 없답니다. 공산품 수출하여 모두가 지금처럼 잘 먹고 살려면 농산물개방 같은 것은 하지 않을래야 안할 수 없지요.”


“그럼 나와 네 형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되겠니?”
“이까짓 농사 다 잊으시고 경매처리 된 다음에 서울로 올라오세요. 도시 영세민으로 등록하면 형님이 먹는 소주 값하고 쌀값은 정부에서 그냥 줘요. 의료비도 완전무료라서 입원만하면 먹고 자고까지 사그리 공짜지요. 그리고 어머님을 모시고 사시니 재수 좋으면 영구임대아파트에 들어갈 수도 있어요. 한달에 몇 만원씩만 내면 형님 집이나 매한가지지요.”
그러자 종훈이가 말했다.


“잘사는 동네의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도와드릴게요. 친구가 큰 아파트단지 관리소장으로 있는데, 대형평수라서 팁도 꽤 짭짤하다고 하던데요.”
동생들은 추석날인 어제아침 차례를 올리자마자 길 막히기 전에 서둘러 출발한다고 음복도 하지 않고 휑하니 떠났다. 박씨가 정성껏 만든 차례음식과 석씨가 야산에서 직접 따온 감이나 밤과 같은 과일도 준비했었지만 극구 마다해서 겨우 간척지 쌀 한 포대씩을 사정하다시피 실어줄 수 있었다. 하지만 승용차 트렁크에 넣어준 사십킬로 햅쌀 한 포대씩도 별로 달가와 하지 않는 게 분명했다. 아파트 계단을 끌고 올라갈 일이 걱정이라고 내쉬는 제수씨들의 한숨소리를 듣고 석씨 부부는 황망하기만 했다.


간밤의 불길한 꿈 때문에 석씨는 잠을 더는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다. 새벽이 되어 서쪽으로 기운 한가위 달은 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