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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수필)몽고반점/최단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영롱하다. 한 학기 동안의 강의를 끝내고 기말 시험을 막 끝낸 참이다. 속마음은 많이 섭섭했지만 가벼운 미소를 띄우고 학생들을 하나하나 눈여겨 본다. 그들도 미소 짓는 낯으로 나의 시선을 받는다. 한동안 말 없이 총명한 눈망울들을 보노라니 강의실이 꽤 조용해진다. 순간 묘한 긴장감이 감돌다 사라진다.


나는 문제를 적었던 흑판을 말끔히 지우고 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글을 썼다.
한문을 쓰는 나의 필체가 꽤 달필에 속한다고 자부하는 터라, 학생들이 나의 글씨체를 나름대로 음미하는 것을 느끼면서 마음을 가다듬어 공들여 글씨를 썼다.
정성을 들여서 그런지 내가 쓰고도 마음에 든다. 몇몇 학생들이 노트에 임서하는 모습도 보였다.
회자정리(會者定離)! 인생은 누구나 만나면 또한 반드시 헤어진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스승과 제자로 학기 초 만났지만 이제 헤어질 시간이 된 것이다.


내가 대학 다닐 때의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교양과정에서 인류학을 배웠는데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다만 그 과목을 강의하던 교수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를 뿐이다. 물론 그 분의 성함을 잊은 지 오래다. 아니 강의를 마치면서 바로 잊었을 것이다. 전공이 아닌 교양 과목이기도 하고, 매력있는 교수님도 아니었던 때문인가 싶다.
그러나 열심히 강의하시던 조금은 엉성한 그 모습만은 아직까지 기억에 생생하다.
아마 먼 훗날 이 학생들에게 나도 그런 모습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철학 개론이 필수 교양과목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영문고 학생들인 이 강의실에서는 내가 인류학을 듣던 거나 별반 차이가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오랫동안 기억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의 바람은 오히려 다른 데에 있다.
내가 그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그들의 순수하고 학구적인 태도를 본 받고 싶다.
진솔한 그들의 마음을 배우고, 정감 어린 그들의미소로 세파에 찌든 나를 씻어내고 싶다. 벌써 나의 마음이 그들의 순수함으로 조금씩 씻겨지는 것을 느낀다.


나는 느릿한 어조로 몽고반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의 친구인 K박사가 호주로 취업 이민가서 시드니의 종합병원에 근무하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마침 그곳에 와 있는 교포가 출산을 하게 되었는데 k박사가 자연히 담당의사가 되었다.
아침 일찍 출근하여 그 아기를 보려고 신생아실로 들어서면서 k박사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병원장을 비롯하여 의사, 간호사까지 수십명이 모두 거기 모여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K박사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더라는 것이다. 무슨 변고가 있지 않고서야 까운 입은 사람들이 이렇게 모두 모여있을리가 있겠는가. 허겁지겁 사람들을 비집고 아기 가까이로 가서 보니 좌중들은 오히려 경이로운 눈초리로 아기를 내려다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백인 사회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것, 의학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몽고반점을 직접 보는 행운(?)을 지금 그들은 맛보고 있는 것이었다.
산부인과 과장이 막 태어난 신생아를 번쩍 들고 양쪽 엉덩이에 선명하게 그려져 있는 푸르스름한 반점을 가리키며 이것이 바로 ‘몽고반점"이라고 설명하고는 , K박사도 아마 어렸을 적엔 이 몽고반점이 있었을 거라고 농담을 걸어오며 즐거워 하더라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우랄 알타이 언계(言系)에 속하면서 몽고계열로 분류된다. 몽고계열의 민족은 신생아 엉덩이에 반드시 푸른 반점이 있고, 이것이 자라면서 없어지는 특이한 징표를 갖고 있다.
뚜렷한 인생관을 토대로 세계관을 정립해야 할 대학시절에 철학을 공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일생을 좌우할 자기 철학을 스스로 다듬어야 할 젊은이에게 있어서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으랴. 몽고반점을 가지고 태어난 우리는 우리의 문제도 몽고반점을 지닌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우리의 철학, 우리의 인생, 우리의 의식을 우리가 확립해야하는 것이다.


“여기 있는 학생들은 틀림없이 몽고반점을 가지고 태어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