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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신재의/대한치과의사협회 설립일을 다시 찾아야 한다


신재의 원장
·대한치과의사협회 협회사 편찬위원


대한치과의사협회는 설립 기념일을 1921년 10월 2일로 지켜오고 있다. 이것은 1981년 4월 25일 경주 대한치과의사협회 대의원 총회 이후 금년이 25번째 일이다.
이러한 대한치과의사협회는 설립 기념일을 정할 때는 여러 가지 고증과 연구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1921년 10월 2일은 일제강점기 조선치과의사회의 설립일이다. 단순히 조선에서 치과의사에 의하여 설립된 의사회를 대한치과의사협회는 설립 기념일로 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는 듯 보인다. 필자도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것은 필자가 일제강점기 조선치과의사회의 설립일을 1921년 10월 2일이라고 발표한 사람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3년 이전까지 일제강점기 조선치과의사회에 관한 연구가 거의 없었다고 하여도 심한 말은 아니다. 이때까지는 일제강점기 조선치과의사회는 설립 날짜나 설립자 등 몇몇 사례가 알려졌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에 관한 관심도 없었다.


2004년 일제강점기 조선치과의사회의 성격이나 활동에 관한 연구를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이 연구에서 일제강점기 조선치과의사회의 설립일을 ‘대한’ 이란 이름하는 대한치과의사협회의 설립일로 하는 데는 큰 무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일제강점기 조선치과의사회의 성격이나 활동이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일본인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조선총독부의 행적을 대한민국의 정식 법통으로 인정하는 결과와도 같기 때문이다.


1945년 12월 9일 광복 후 설립된 조선치과의사회의 성격은 “우리의 손으로 우리 치과계를 건설”에서 보여 지는 바와 같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주적인 성격이 강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치과의사회와는 이름만 같을 뿐이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치과의사회는 압박과 착취 등 일본인에 의한 일본인 치과의사회였다고 우리 선배 치과의사들은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치과의사들은 일제강점기 치과의사들이 당한 고통을 ‘조선치계(朝鮮齒界)’창간호(1946)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서병서(徐丙瑞)(85쪽) “일본 제국주의의 압박과 멸시”, 박명진(朴明鎭)(38쪽) “과거 36년간 일본 제국주의의 악독한 압박과 질고”, 문기옥(文箕玉)(41쪽) “왜 제국주의의 강압적식민정책”, 박용덕(朴鎔德)(43쪽) “일본 침략주의적 구속”, 한택동(韓宅東)(49쪽) “폭악간인 착취적인 일본 파쇼”, 이유경(李有慶)(75쪽) “그 지독한 일본인, 일본 사람들 차별 아래에” 등 이었다.


그리고 치과기재상공인들도 고통을 같이 표현하고 있다. 차문식(車文軾)(80쪽) “압박아래 눈물을 먹어 가며 비참한 생활”, 이덕현(李悳顯)(82, 83쪽) “경제적 착취, 치욕적”이었다.
광복 후 설립된 조선치과의사회의 성격이 자주적이었다는 것은 한국인만으로 이루어진 한성치과의사회를 부활·계승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그 옛날의 치과의사회로서는 최초이던 한성치과의사회는 1920년경(1925년)에 창설되었던 것이다. (중략) 그래서 이 회는 차차 커져서 한국인만으로서의 치과의사회로 태평양전쟁 초기까지 운영되다가 일시 중단되고 8·15 후에 다시 결성되더니 이제 다시 발전되어서 이른바 오늘날의 대한치과의사회라는 법정단체가 된 것이다.


안종서,‘우리나라 치의학계의 금석담’,‘대한치과의학사연구회지’, 1960. 69쪽.
한편 1925년에 조직되었던 한성치과의사회가 일본관헌의 간섭으로 1940년(1942년)에 폐지되었다가 해방 후인 1946년(1945년)에 조선치과의사회로 다시 발족하여 회장에 안종서 부회장에 문기옥 양씨가 피선되고 서울지회로는 한성치과의사회를 부활시키어 회장에 김용진 부회장에 김연권 양씨가 피선되었고 조선치과의학회를 조선치과의사회의 한 기구로 포함시켜 회장에는 박명진 씨가 피선되어 각각 운영하였다.


朴明鎭, ‘한국의 치의학’,‘대한치과의학사연구회지’, 1960. 10쪽.
해방후 1945년 11월에 재경 한국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