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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 치과의사문인회](수필)가래떡/김 영 진

김 영 진

·수필가, 필명 김겸인, ‘동방문학’등단
·프레야 영진치과의원


나는 눈이 내리는 날을 좋아한다. 특히 어슴푸레한 밤하늘에 하얀 수를 놓으며 흩날리는 무성한 눈발은 미지의 세계에서 쏟아지는 은하수같이 나의 마음을 소년처럼 마냥 설레게 하곤 한다.
삭막하고 분주하기만 한 메마른 서울 생활 중 보기 드물게 펑펑 눈이 쏟아지는 오늘, 밤눈을 반기기 위해 덕수궁 돌담길을 홀로 걷는다. 비스듬한 돌담 안에 말없이 서서 빈 가지 가득히 흰눈을 포옹한 아름드리 느티나무들은 한사코 요란하게 헝클어진 저 건너편 서울 거리의 야경을 거부하고 있는 듯 하다.


막 내린 눈 위로 점점이 남겨지는 발자국들은 오십년을 넘기며 걸어온 기나긴 세월의 그림자에 알알이 박혀있던 잊혀진 추억들 속으로 스르르 잠겨들게 만든다.
30여 년 전, 모교인 이리 남성고 교정에는 유달리도 히말라야시다 나무가 많았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로 변해 버렸지만 교정에서 교문에 이르는 약 100여 미터의 길을 따라 양쪽으로 히말라야시다가 심어져 있었고, 눈만 내리면 그 가지 위엔 부러질 듯 흰눈이 쌓이는 것이었다. 겨울날, 밤늦게 야간 수업을 마치고 높다란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눈 쌓인 히말라야시다 사이를 지날 때는 언제나 신비한 동심의 세계에 젖어들곤 했다. 눈더미 아래 어둑한 가지 밑에는 누군가가 꼭 숨어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백설의 낭만이 내 곁을 떠난 적은 결코 없었던 것 같다. 치과대학이 더부살이를 하던 붉은 벽돌 의과대학건물 뒤쪽의 히말라야시다 숲과 널따란 교정에 쌓이던 흰 눈은 매년마다 기다려지던 혼자만의 축제였다.


치과의사 시험을 보던 81년에는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다. 객차 한 칸을 전세 내어 서울로 향하던 철길 연변에는 마치 이불을 덮은 것처럼 온 천지가 두루뭉술하게 눈에 묻혀 있었다. 김이 서린 채 연신 땀을 흘리던 특급열차의 차창 밖으로 새하얀 은세계가 끝도 없이 흘러 지나갔다.
시험 전 이삼 일간 단체로 묵었던 유리창마다 비닐을 덧붙인 허름한 여인숙과, 긴장에 떨고 추위에 지친 채 허기를 달래던 여인숙 앞의 싸구려 해장국집과, 시험 장소인 이화여자대학교로 향하던 길은 빠짐없이 두껍게 얼어붙은 눈으로 온통 빙판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난방마저 들어오지 않던 으스스한 시험장의 유리창 너머 나뭇가지 위에 쌓여있던 잔설도 이 밤 저 느티나무 가지에 핀 눈꽃과 다름이 없었다.


오늘처럼 눈이 내리는 밤만 되면 나는 예외 없이 가래떡을 찾는다. 오늘밤에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래떡을 찾을 것이다. 한적한 겨울밤에 우연히 집밖에 나왔다가도 눈만 내리면 무조건 가래떡을 내놓으라는 나의성화에 실로 황당해 하는 사람은 내 아내다.
긴긴 겨울밤의 야참으로써 적당하기도 하지만 가래떡에는 한편의 설화처럼 아련한 사연이 깃들어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꿈속 같기만 한 그 겨울날의 시련을 겪은 후로 어언 40여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그날, 설날에 쓸 가래떡을 빼기위하여 한 말이나 되는 쌀을 머리에 이고 떡 방앗간에 가시는 어머니를 따라 나선 것이 오후 두세 시쯤이었을까? 무려 이십 여리를 걸어서 방앗간에 도착하니 이미 여러 사람들이 줄을 서있어 우리차례를 기다리는데 밖에선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눈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얼마간을 더 기다리다가 꽤 깊은 밤이 되어서야 겨우 가래떡을 받아들고 집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어두움과 함께 온 천지를 뒤덮으며 하염없이 내리는 눈 때문에 무거운 떡을 머리에 인 어머니와 겨우 일곱살 밖에 되지 않았던 나는 곧 방향감각을 잃어버렸던 듯싶다.
끝없이 펼쳐있던 논밭 사이의 좁은 농로에 눈이 많이 쌓이자 어디가 길이고 논바닥인지 도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손전등도 없었지만 아마 있었더라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농수로에 빠져서 엎어지고 자빠지면서도 억척스레 떡 짐을 챙기는 어머니는 흰옷까지 입으셔서 그랬던지 꼭 눈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