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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수필)의료분쟁 가능 환자와의 대화/박용호


박 용 호
·강서구 박용호 치과

 

개원초기에 기계와 직원과 환자들이 돌아가면서 속을 썩이니 머리가 아팠다. 아무래도 경험이 없고 미숙했던 탓이었으리라. 그 중에서도 진료결과가 안좋은 환자와의 마찰은 두렵기도 하고 나의 실력에 한계와 회의를 느끼게 했다. 오죽했으면 앞으로도 몇 십 년간 개업해야 한다는 것이 지겨워 빨리빨리 세월이 가서 은퇴할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치기 어린 생각이 든 적도 있다.
처음에는 환자를 원망하였지만 결국 모든 것이 내 탓이고, 나의 욕심 때문이라는 것을 서서히 깨닫는 것이 개업의 구력이었다. 내가 그때 거기에 있었고, 그 환자가 왔었고, 치료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므로 모든 일이 발생된 것이 아닌가.


어떤 진료가 후회된다면, 스피노자가 “모든 것은 필연적이다. 우연이란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 우연이라는 것은 우리의 인식의 부족에서 오는 착각이다.”라고 말한 점을 기억하자.
그 동안 의료분쟁으로 번질 뻔한 일을 참 많이 겪었다.(지금도 계속 겪는 중이다) 발치창의 지혈이 안된 환자가 밤새 고생하다가 대학병원에 가서 응급처치를 받고 그 다음날 찾아와서 따지길래 소정의 금액을 주고 마무리한 일. 신경치료 중에 치아가 부러진 일, 엉뚱한 치아를 잘못 삭제한 일, 발치후 힘들게 틀니를 해주었더니 보름후 며느리가 진료차 찾아와 어머니가 돌아가셨노라고 해서 놀란 일,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순조롭로게 마무리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치 못하면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고통스러우며 우울증에 빠진다. 만약 부인이나 가족과도 원만하지 못하면 이 세상에 홀로인 듯 느끼기도 한다. 친구와 선후배가 있다지만 다 자기 생활 바쁜 세상에 말하고 들어줄 이도 없어 보인다. 술도 못하고 특별한 취미라도 없다면 그때의 느낌은 정말 외롭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수 있다면야 얼마나 좋은가.


생각해 보면 이런 무의식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다양한 ‘자아 방어기제’를 사용해온 듯 하다. 초기에는 단연코 ‘억압’과 ‘억제’가 주종을 이루었다. 억압이란 자신의 의식세계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욕망, 충동, 생각들을 무의식 속으로 찍어눌러 집어넣는 것인데, 흔히 성적 충동과 공격적 충동을 느낄때 이 억압의 기제를 사용한다고 한다.


한번은 틀니를 제작해준 당뇨병 환자가 도저히 잇몸이 화끈거리고 아파서 틀니를 사용할 수 없다고 계속 불평을 해왔다. 몇 달 동안 조정을 해주었지만 속수무책이어서 대학의 구강내과로 보내서 처방을 받게 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급기야는 남편이 같이 와서 틀니를 다시 해주든지 환불해 달라고 떼를 썼다.(사실 맞는 말이었다) 미러를 잡았던 나의 손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사실은 화가 나서 한번 때려주고 싶은데 까운 입고 차마 그러질 못하니 신체화 증상으로 표출된 것이었다.


‘억제’는 의시적으로 창피당한 기억이나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전에는 치과에서 불쾌한 일을 당하면 집에 와서 꿍하니 말도 안하고 있었다. 그 말을  하면 그 장면이 다시 연상되어 더 불쾌해질것 같아서였다. 그러면 눈치 빠른 아내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면 그제서야 털어놓곤 했었는데, 말을 하다보면 마음이 풀어지는 경우가 많아 이제는 적극적으로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부정적인 방어기제에 반하여 긍정적이고 건강한 방어기제도 많다. ‘공감’이나 ‘유머’ ‘승화’ 같은 방어기제이다. 예를 들면 한 여고생이 앞니에 한 레진이 일년도 안되서 떨어졌다고 까탈스럽고 짜증난 어투로 말했다. 그전 같으면, “왜 그렇게 딱딱한 것을 씹었니, 조심하지 않고…”하고 나를 합리화 시키는 타박성의 질책을 했을 법도 한데, 이제는 좀 나이를 먹으니 딸같은 생각이 들어 “미안하구나, 나도 그렇게 빨리 떨어질 줄 몰랐다.”하고 ‘공감’하게 된다. 그런데 이 ‘미안 하구나’같은 간단한 소리가 전에는 잘 안 떨어졌다. 미안하다고 하면 자기의 잘못을 인정해서